세부에서의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
세부 여행에서 오랫동안 특별히 기억에 남을 것은 아마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샹그릴라 리조트는 종합적으로 참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전용 해변이었다. 체크인 한 첫날 오후,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수인이를 꼬셔서 바다로 갔다. 이미 수영장에 꽂힌 우리 딸은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수인아, 우리 바다 가까우니까 저기 한 번만 갔다가 오자. 그리고 다시 또 수영장 와서 놀면 돼. 다녀만 오자."
그렇게 설득을 해서 바다에 갔지만 오래 놀지는 못했다. 일단 한번 수가 틀리니 재미가 없는지 신발에 들어가는 모래가 싫다며 얼른 가자고 했다. 해변에 왔는데 모래가 싫다면 어쩌란 건지...
진짜는 다음날 오전이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이번에는 바로 바다로 갔다. 신발도 모래가 덜 들어가는 신발로 바꿔 신고 갔다. 그리고 물에 들어간 순간 우리 가족은 정말 "우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물고기가 정말 정말 많았다. 해변 가까이에 은빛 물고기가 엄청 많이 모여서 다니곤 했는데 그곳으로 가면 비린내가 살짝 날 정도였다. 조금 더 나가니 물고기들이 조금 뜸해지면서 대신 다양한 물고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옥토넛에서 배운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도 있었다.
"아빠 전 바다가 제일 좋아요!"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봤어요!"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바다 싫어요. 수영장 가요."라고 하던 수인이는 금방 태세 전환돼서 굉장히 잘 놀았다. 스노클링도 시켜봤는데 아직 좀 무리인지 그건 못했지만 그렇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보더라도 얼마나 물고기가 많은지 즐기기엔 충분했다. 원영이도 처음엔 조금 무서워하는 듯했지만 튜브도 타고 물고기도 보고 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더 좋은 곳은 많다. 하와이 오아후 섬의 하나우마베이나 괌의 리티디안 해변이 더 깨끗하고 물고기들도 더 예쁠 거다. 하지만 이렇게 리조트 바로 앞의 전용 해변에 나가기만 해도 다양한 물고기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니, 이것만으로도 샹그릴라는 우리처럼 아이와 함께 온 가족에게 천국이었다.
이곳의 해변은 인공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모래는 보라카이인가에서 가져왔다고 했고, 물고기를 많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끔 다니면서 물고기 밥을 뿌려놓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나가면 특정 몇몇 포인트에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모여서 바닥의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투숙객에게도 물고기 먹이를 그냥 나눠주기도 했다. 그걸 뿌리면 해변가로 물고기들이 무서울 정도로 몰려들었다. 아무렴 인공이면 어떠랴. 이렇게 좋은 해변이 있는데. 리조트가 잘 정비된 시설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오는 곳이라고 본다면 샹그릴라는 해변까지 완벽했다.
낮에는 눈부시게 푸른 하늘 아래 하얀 해변이 보기만 해도 기분 좋더니, 해 질 녘에는 타는듯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이 좋아서 어두워질 때까지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딸과 아들에게도 이 해변이 특히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3박 4일 내내 리조트 안에만 있었지만 둘째 날 오후에 슈퍼마켓 쇼핑을 하러 잠깐 밖으로 나갔었다. 원래는 세부 시티로 가려다가 너무 멀기에 그냥 그랩을 불러서 막탄 섬 안에 있는 조금 큰 로컬 쇼핑몰로 갔다. 가면서 본 리조트의 밖은 너무나도 달라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리조트의 경비가 상당히 삼엄한 편이라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샹그릴라 리조트 안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돌아오는 길엔 비가 내렸다. 좋지 않은 환경의 도로는 금방 신발의 절반 정도까지 차서 찰랑찰랑 물바다가 되고, 차는 극도로 막혀서 그랩조차 잘 잡히지 않았다. 힘겹게 잡아서 사람과 차량을 뚫고 간신히 리조트로 돌아왔더니 완전히 지쳐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려고 나 혼자 잠깐 리조트 바깥 바로 앞 카페에 나갔다 온 것을 제외하곤 정말 내내 리조트에만 있었다.
남프랑스의 니스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휴양만이 있는 곳이 아닌, 오래된 도시 속에 눈부신 바다와 휴양이 자연스레 포함된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부 같은 곳에 오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잠시 잊고 살던 세계의 빈부격차가 다시 한번 떠오르게 된다. 다낭, 사이판, 괌, 푸껫 등을 가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세부의 막탄 섬은 리조트의 안과 밖의 차이가 극심했다.
다음번에 세부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땐 지금보다 더 커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수인이에게(원영이는 여전히 어릴 테니) 이런 모습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할까? 세계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어떻게 잘 설명해줄지 고민이 된다.
물놀이를 하다가 숙소에 들어와서 잠시 쉬면서 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원영이가 정말 크게 외쳤다.
"아빠!"
깜짝 놀라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었지만 아내도 똑같이 들은 걸 보면 정확하게 아빠라고 한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처음이었다.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엄마"만 자주 하는 원영이가 드디어 처음으로 아빠라는 말을 했다. 얼마나 감격적인지. 앞으로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이 듣게 될 그 단어지만 처음은 이렇게나 감격스럽다. 그래, 많이 많이 불러주렴.
수인이는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했다고 아내에게 우기곤 한다. 수인이가 매우 어릴 때 광양 할머니 집에서 우연히 나온 그 단어는 분명히 아빠와 비슷한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원영이는 엄마 껌딱지라 늘 엄마에게 붙어 있으며 엄마라는 단어만 말하기에 살짝 섭섭하긴 했다. 하지만 드디어 원영이도 아빠를 한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세부의 샹그릴라 리조트는 내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평생 아껴주며 잘 키워줄게 원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