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호흡 부족으로 발생한 고지대 감기
12년 전 열린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앞두고 대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고지대였다. 월드컵이 열리는 9개 도시 중 5개 도시의 고도가 1,000m 이상이었다. 수도인 요하네스버그의 고도는 1,753m다. 한라산이 해발 1,947m이니 남아공 월드컵은 한라산이나 설악산 높이의 도시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셈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높은 곳에서 몇 날 며칠을 지낸 적이 없었다. 한라산, 설악산 꼭대기를 올라가 본 적도 없다. 여태껏 산 정상에 오른 것은 어렸을 때 도봉산(해발 740m)이 전부다.
그래서 높은 곳이니 ‘호흡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차로 2시간 거리로 축구대표팀의 베이스캠프였던 루스텐버그(당시 기사를 쓸 때는 러스텐버그, 루스텐버그를 혼용했다)에 주로 묵었는데, 루스텐버그의 고도는 1,233m다. 참고로 운동 생리학적으로 고지대 적응에는 2,200~2,500m의 고도가 최적이지만 최소 1,200m 정도만 되어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표팀은 루스텐버그의 로열 바포켕 스타디움에서 훈련했는데, 이 경기장은 월드컵 때 경기가 열린 경기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훈련하던 선수들은 고지대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무래도 호흡이 문제였다. 익숙하지 않기에 호흡을 편하게 못 한 것이다.
고지대가 얼마나 힘들지 직접 경험해보려고 운동장을 뛰어보기도 했다. 분명 숨이 차오르는 것이 평소보다 빠르고 불편했다. 그 고지대에 나도 곤욕을 치렀다. 루스텐버그와 요하네스버그에 오가는 일정을 소화하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목에 가래가 심하게 생겼다. 매일 가슴이 아플 정도로 기침했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종합감기약을 먹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종일 수시로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자, 내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 기자들도 걱정했다.
그러다 한 선배 기자가 송준섭 박사에게 진료받아보라고 했다. 현재 강남제이에스병원 대표원장인 송준섭 박사는 오랫동안 축구대표팀 주치의로 활동했고, 당시에도 선수단과 함께하고 있었다. 정형외과 전문의지만 당장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사였다. 그래서 선수단 훈련 때 잠시 송준섭 박사를 만나 증상을 얘기했다.
호흡을 편하게 못 해서 그런 거예요. 며칠 뒤에 고도가 0m인 포트 엘리자베스에 가면 나아질 겁니다
감기가 아닌 호흡에 문제라니? 쉽게 이해는 안 됐지만, 고지대이니 당연히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송준섭 박사는 다음 날 나를 위해 약을 몇 알 챙겨왔다. 약은 먹었지만, 기침, 가래가 완화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정을 소화했고 남아공 입국 8일이 지난 1월 13일 포트 엘리자베스로 향했다.
포트 엘리자베스는 고도가 낮다. 그래서 비행기는 계속 고도를 낮춰 비행했다. 우리와 함께 일정을 소화하며 가이드를 맡았던 남아공 교민 박요셉 씨는 “비행기가 높게 떴다가 계속 내려가는 식으로 비행한다”고 설명했다.
1시간여를 비행한 뒤 포트 엘리자베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포트 엘리자베스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정을 소화하던 중 생각해보니 기침, 가래가 사라졌다. 평소대로 호흡을 다시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컨디션을 회복하자 취재 및 기사 작성하는 데도 힘이 생겼다. 고지대 적응의 어려움을 직접 느끼니 아찔했다.
고지대와 함께 남아공 출장 기간 기자들이나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관계자들의 화두는 자블라니였다. 자블라니는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로 ‘마구’로 불렸던 축구공이었다. 감독, 선수들의 인터뷰나 경기 모습을 통해 예측하기 어려운 자블라니에 대한 기사를 계속 썼던 일이 떠오른다. 공인구에 대해 이토록 깊이 있게 쓰고 취재했던 기억이 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