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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Dec 13. 2022

비몽사몽 속에 벌어진 도하 쇼크

정몽준의 FIFA 부회장 낙선으로 시작한 취재 일정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개최국인 카타르. 개인적으로 2011년 1월에 거의 한 달 가까운 일정으로 체류했었다. 그해 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아시안컵 취재 때문이었다. 중동 지역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 머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전이나 그 이후에도 중동 지역에서 이렇게 장기간 머문 적은 없었다.


인천공항을 떠난 카타르항공을 타고 도하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각으로 1월 6일 새벽 5시가 넘었을 때였다. 도하로 오면서 피로가 쌓였고, 비행기에서 편하게 잠을 자지도 못해 비몽사몽 한 상태로 도하 땅을 밟았다.


밝아오는 도하 거리


난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와 셔틀버스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미디어 전용으로 블록을 한 호텔에 머물 경우 공항-호텔 간 셔틀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이 무료 셔틀버스는 대회 내내 이어졌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도하의 호텔 3곳을 미디어 호텔로 정했는데 내가 예약한 곳은 라마다호텔이었다. 트윈 룸을 잡았는데, 나보다 한 살 아래인 타 사 동료 기자가 2일 먼저 도하에 들어와 투숙 중이었다. 그래서 난 빨리 호텔 방에 들어가 샤워하고 한숨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호텔에 도착했고 동료가 머무는 방에 들어갔다. 짐 정리하고 샤워를 하려고 할 때 동료가 내게 말을 건넸다.


형. 얼른 준비해. 좀 있다 정(몽준) 회장 선거 가야지.
무슨 선거?
FIFA 부회장 선거 말이야. 이번에 하잖아


그 말을 들은 뒤에야 선거가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대륙별로 부회장과 집행위원 등을 선출해 집행위원회를 구성한다. 정몽준 회장은 1993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FIFA 부회장도 지냈다. 그는 2011년 1월에 5번째 FIFA 부회장 선거에 나섰던 상황이다. 한국으로서는 국제 축구계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그의 당선이 중요했다.


호텔 내부에는 아시안컵을 알리는 현수막이 펼쳐 있었다


선거는 도하에 위치한 쉐라톤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진행됐다. AFC는 아시안컵 취재 신청을 받으면서 총회 신청도 같이 받았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 총회는 취재 신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총회장에 출입이 제한됐고 호텔 로비 내 카페에 앉아 결과를 기다렸다.


대한축구협회 직원 일부도 같이 카페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분위기는 정몽준 회장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삼삼오오 농담을 주고받으며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조영증 기술교육국장은 자신이 뛰었던 1980년 아시안컵의 추억을 얘기하기도 했다.



조영증 당시 기술교육국장은 기다리는 동안 자신의 아시안컵 경험담을 들려줬다


1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주위가 웅성거렸다. 그리고 중동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에서 환호 소리가 들렸다. 왜 그럴까 하고 가보니 TV 앞에서 총회 모습이 나오는 화면을 보며 웃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느낌이 불안했다. 대한축구협회 직원도 서둘러 총회장 안으로 향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왔는데 예상과 정반대여서 모두가 깜짝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정몽준 회장이 상대 후보였던 요르단의 알리 빈 후세인 왕자에게 20-25로 패한 것이다. 정몽준 회장이나 대한축구협회는 30표 정도의 득표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빗나갔다. 정몽준 회장은 중동 지역표가 경쟁 후보에게 몰표로 이어졌다고 봤다.



솔직히 당시 이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아시안컵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나 외에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보니 짧은 시간 동안 자료를 찾아 기사를 허겁지겁 작성해 한국으로 보내고 한숨을 돌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선거 준비를 안일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중동 지역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고 평소에는 서로 아웅다웅하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아랍’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친다. 분명 중동 지역에 우호 득표는 나오지 않을 공산이 컸다. 게다가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도 서로 으르릉거리는 사이다. 협조는 절대 없다. 그렇다고 정몽준 회장이나 대한축구협회가 동남아시아지역에 공을 들였던 것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낙선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자리를 서둘러 정리하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대표팀이 도하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대표팀 외에 조별리그에서 같은 상대였던 호주와 북한도 시간차를 두고 도착할 예정이었다. 대표팀 입국뿐만 아니라 호주, 북한 등 같이 취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박지성을 앞세워 도하에 입국한 대표팀


이미 정몽준 회장의 낙선으로 정신은 ‘멘붕’ 상태였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카페인에 의지한 채 비몽사몽 한 몸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몇 시간을 대기한 뒤 대표팀과 호주, 북한 선수단의 입국을 차례대로 취재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조광래 감독(현 대구FC 대표이사)에게 누군가가 정몽준 회장의 낙선에 관해 물었다. 도하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조광래 감독은 전혀 알지 못한 상황이었다. 조광래 감독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표정을 지은 기억이 난다.


호주 선수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호주의 상징과도 같았던 팀 케이힐의 이름을 소리치며 질문했다.


How do you think about Ji-sung Park?


처음에 그는 박지성의 이름을 잘못 알아듣다가 몇 차례 소리치니까 그제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박지성은 좋은 선수다”라고 답했다. 당시 호주 대표팀을 이끌던 홀거 오지크 감독, 성남일화 소속이었던 사샤 오그네노브스키에게도 짧은 코멘트를 들으며 기사에 실었다.



뒤이어 북한 선수단이 왔다. 그러나 정대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남한 기자들과 인터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일교포 출신 선수들은 예외다. 그래서 당시 북한 선수단의 주 인터뷰 대상은 정대세, 안영학 등 재일교포 선수들이었다. 정대세가 보이지 않자 안영학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나중에 합류할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우승을 조국의 품으로!


정몽준 회장의 낙선으로 시작한 도하에서의 첫날은 북한 선수들을 만나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온종일 식사라고는 샌드위치 하나 먹은 것이 전부였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근처 맥도날드에 가서 언제나 그렇듯이 빅맥세트를 주문했다. 그런데 양이 한국에서 먹던 것의 1.5배 수준의 큰 사이즈였다. 


나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와그작 먹고, 아시안컵 취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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