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에 대한 내적 성찰 과정은 진로교육의 시작이고 끝이다.
학교에서 안내한 학생 진로캠프에 참여했습니다. 참여한 학생들이 산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에 도착하고 짐을 풀자 담당 선생님이 운동장에 모이라고 했어요.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레크리에이션을 하더군요. 강사님이 갑자기 저와 친구들 몇 명을 무대로 나오라고 하더니 춤 배틀을 시키는 거예요. 정말 하기 싫었어요. 춤을 전혀 못 추거든요. 음악 크게 틀어 놓고 춤을 안 추면 바보 취급하는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눈 감고 머리만 엄청나게 흔들었어요. 공동체 놀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당황했어요.
공동체 활동이 끝나니 강당 같은 곳으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진행자가 이번 캠프가 ‘진로’가 주제라면서 우리의 진로를 돕기 위해서 캠프를 한다는 소개를 하시더니 무슨 검사지를 주고 빨리 쓰라고 했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홀랜드’라고 하는 직업 선호도 검사지였어요. 열심히 풀었어요. 내용에 맞추어 여덟 개 조가 되었고요. 우리 조의 지도자 선생님이 저보고 레크레이션 등 MC 쪽에 소질이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요. 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내가 사회자나 레크리에이션 진행에도 소질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잠시 했어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 시간에는 유명 강사라고 소개하시는 분이 강연하셨어요. 세상에 영향력을 넓히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입시 공부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라면서 모두 좋은 대학 가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셨어요. 강사님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학교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 잘 봐서 좋은 대학 가라는 거였어요. 그럼 성공할 수 있다는 주제였던 것 같아요.
다음날 오전 근처 저수지에서 8명씩 조를 만들어 고무보트에 타야 했어요. 점심 식사 후 오후에도 야외에서 무슨 게임을 하게 했어요. 밤이 되었어요. 야영장에 모아 놓더니 장작으로 불을 피워 놓고 캠프파이어가 시작됐어요. 진행자가 공동체 놀이라면서 저희를 이리 뛰고 저리 뛰게 하더니 갑자기 조용한 음악이 흘렀어요. 양초에 불을 붙여서 모든 학생에게 나누어 주시더군요. 마이크 잡고 진행하시는 선생님이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당황했어요. 어머니가 고생하신다는 등 분위기 다운되는데 이건 뭔가 싶었어요. 갑자기 울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분위기. 괜히 슬퍼야 하는 도통 무슨 분위기인지 이해가 안 됐어요.
마지막 날 오전에는 인생에 비전선언문을 쓰라고 하더니 발표를 시키는 거예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강사님이 리더십 좋아지려면 나와서 발표도 해야 한다고 해서 우리 조 대표로 제가 나가서 발표까지 했어요. 솔직히 조금 짜증 났어요. 한참 생각하다가 어제 검사지에 방송 MC 운운해서 그거 하겠다고 한마디 하고 창피해서 얼른 제 자리로 들어왔어요. 2박 3일 간의 학생진로캠프는 끝났어요. 보트 탔던 것과 숙소에서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베개 싸움하고 놀았는데 가장 재미있었어요. 이거 빼고 이 캠프에서 진로에 대해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그런데요. 3일간이나 참여한 이 캠프가 저의 진로를 어떻게 돕는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학교에서 진로캠프 다녀온 청소년의 이야기다. 요즘도 이런 캠프를 청소년시설에서 하는지 모르겠다만 이전부터 이어진 학생진로캠프의 유형 중 하나라고 했다. 교사나 청소년 활동, 상담 기관에서 일하는 선생님들 대상으로 강의하다가 이 사례 안내하면 대부분 웃으며 몇 분은 비슷한 프로그램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학생진로캠프라고 참여했는데 진로와 어떤 관계인지 청소년이 “뭐 하자는 건가요?”라는 독백처럼 들리는 이야기가 현실에서 청소년의 진로교육과 닮아 있다. 청소년 진로활동 또는 진로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일단 참여 청소년들에게 홀랜드(Holland)등 검사지를 돌리고 직업 유형을 나누어서 대화하게 한다. 프로그램비가 여유가 있으면 유명 강사 불러서 이야기 듣게 하고 마지막에 비전선언문 또는 자기 사명서 비슷한 것을 쓰게 하고 발표하게 한다.
우리나라 진로교육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진로교육이라 하면 심리 적성검사로 이해되는 데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얼마나 많은 진로검사지 받는가. 진로 검사지는 홀랜드 뿐만 아니라 매년 학교에서 안내하는 것, 노동부에서 만들어진 것뿐만 아니라 상담 기관에 만들어진 검사지 등 넘쳐난다.
방과후아카데미나 지역아동센터, 교육복지지원사업 대상의 청소년들일수록 더 많은 검사지를 받게 된다. 복지기관 등 학교 이외 기관에서 진행하는 진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설문지나 검사지 주고 관련 통계를 낸다고 표시해 달라고 하면 청소년들은 “분포도를 중간으로 해 줄까요? 왼쪽으로 빼줄까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청소년 진로 관련 연구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진로 활동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상당수가 진로검사지 쓰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진로와 직업’ 교과 시간은 자습시간이 되고 있으며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체험학습은 단순 견학이나 일회성 행사 위주로 이루어져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진로교육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진로코칭, 청소년진로학습 등 청소년진로와 직업 관련한 사업과 프로그램들은 사교육 시장에도 넘쳐난다. 사교육업체에서 진로프로그램, 진로코칭 등으로 개발된 프로그램들은 판매된다.
강사를 목적으로 하는 수강생들이 고액을 내고 수강하면 업체에서는 자격증을 부여한다. 강사들은 업체에서 만들어진 검사지 측정 방법과 키트 해석과 단편적인 프로그램 기술을 배우게 되고, 학교나 기관에서 만나는 청소년들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진행한다. 업체는 자격증 주면서 수익 올리고 이후에 수강생들에게 검사지, 키트, 프로그램을 팔아서 장사한다. 업체의 민간자격을 취득한 강사들은 회사의 프로그램이나 검사지 등을 구입해서 학교나 복지기관 등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강사비를 받는다.
진로는 직업과 진학 등 우리 삶을 관통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직업체험을 통해서도 직업 당사자인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안에서 진로에 대한 자기 성찰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직업체험은 단편적인 체험과 기술에 매몰되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면 현재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청소년 진로교육이나 프로그램은 모두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안에서도 청소년들의 직업과 진학을 포함한 긍정적인 진로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이들이 있다. 다만 청소년은 학생이라는 위치만을 강조하며 진학에 목을 매고 있는 구조에서 진로활동은 형식적 교육이나 프로그램으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종합해 보면 청소년과 관련된 기관에서 진행되는 진로활동의 가장 큰 문제는 진로를 위한 단위 프로그램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본질에 집중하지 않는 데에 있다. 청소년진로교육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에 대한 성찰이 내재해 있기보다는 직업이나 진학을 위해 기술적인 접근을 한다. 단순한 검사지를 통해 무슨 직업을 가지면 좋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경쟁 관계를 강화하면서 자기계발에 집중하게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진로활동이나 교육의 문제에 질에 있다.
진로교육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 진로활동 시간뿐만 아니라 매 수업 시간에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만들어 내는 공간에 있다. 교육과 활동의 과정에 매번 선택하는 근거를 성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가?” 하는 내적 성찰 과정은 진로교육의 시작이고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