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건희 Mar 21. 2022

이웃의 삶을 만날 때 진로가 보인다

사람들의 직업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한 과정을 만나는 것과 같다

마을과 지역사회에서 진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청소년을 주체로 세우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진로를 찾도록 돕는 일이다. 교사 또한 학교에서의 교육과 함께 마을의 이웃과 학생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이때 고려할 점 중 하나가 이웃의 전문적인 체험이 기술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 학년제 이후 진로체험이 유행처럼 번졌고 기업과 다양한 기관을 직업 체험처로 찾아서 청소년이 경험해 보는 활동을 독려했으나, 진로교육인지 단순 직업 훈련인지 불분명한 단편적 체험 활동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체험을 했다. 당사자인 청소년에게 진로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자유 학년제 이후 전국의 관련 기관에서 바리스타 직업체험이 유행일 때가 있었다. 직업체험 하면 떠오르는 게 카페였던 모양이다. 학생들 모아 카페에 가서 커피를 모두 내렸다. 커피 내리는 간단한 기술과 커피 향을 맡는 것을 제외하고 남는 게 무엇이 있는지 볼 일이다. 바리스타뿐만 아니라 셰프, 사진작가, 여행가, 유튜버, 댄서 등 청소년의 진로를 위한 직업체험은 학원이나 직업훈련소처럼 기술을 숙달하는 게 아니다. 짧은 체험 시간에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기에는 이미 불가능하다. 기술보다는 관련 전문가들이 현재의 직업을 갖기까지 삶에서 매번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 볼 일이다. 삶의 공간에서 어떠한 선택을 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이었지 등 본질적인 이야기를 듣고 알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바리스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이유가 있는지, 커피를 볶고 내리는 일을 행할 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커피콩이 어느 나라에서 왔고 무역은 공정한지 등 그 일의 본질을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커피 내리는 단편적 기술을 잠시 체험하는 일도 도움이 되지만 진로활동은 기술적 체험이 중심이 아니다. 


기술만을 배우고 싶으면 직업훈련원이나 학원에 등록에서 집중해서 배워야 한다. 진로활동은 훈련이 아니다. 훈련은 똑같이 따라서 하는 것을 뜻한다. 군대에서 훈련 한다고 할 때 조교가 나와서 시범을 보이고 그대로 행하면 잘 했다고 칭찬받는다. 직업훈련소에서도 훈련 교관이나 교사가 시범을 보이고 똑같이 하도록 해서 검정에 통과하면 자격증을 받게 된다. 진로 활동에서도 훈련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 있지만, 직업인의 전문적 기술이 직업체험의 목적은 아니다. 전문가를 만날 때 단편적인 체험과 함께 삶의 철학과 역사에 집중하면서 일을 선택한 이유와 즐거움,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청소년에게 전문직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삶을 만나는 공간으로 자신이 사는 마을만큼 좋은 곳은 없다. 도심의 한 부분일 수도 있고 동네라고 이름 지어진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마을에 주민들이 청소년에게 가장 훌륭한 진로 선생님이다. 


이웃의 삶을 통해서 조금은 더 가치 있고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삶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어야 진로 활동이 된다. 우리가 사는 마을은 직업체험의 장일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 내는 곳이다. 직업인은 우리 사회와 격리되어 있지도 않고 마을이라는 삶의 공간에서 녹아 있는 우리 이웃이다. 청소년 진로체험 활동은 이러한 이웃의 역사와 문화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청소년 몇 명이 빵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최근 마을에서 유명해진 동네 빵집을 찾았다. 빵집에서 청년 두 명을 만났는데 공동대표라고 했다. 서너 평 되는 빵집이었는데 하루 만든 빵을 모두 팔면 시간 관계없이 문을 닫는 곳으로 SNS에 안내되어 유명해진 곳이다. 


군산 월명동에 오존 빵집의 두 청년 대표


작은 소도시에 두 청년이 빵집을 개업한 이유가 있었다. 과거에 한 청년은 서울의 유명 빵집에서 일을 배우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었고, 한 청년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두 청년 모두 서울에 올라가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몸과 마음은 너무나 지치는데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고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여겨졌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고민만 커진 때에 친구였던 두 청년이 의기투합해서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만들기로 했고 지방에 내려가기로 했다. 


여행 중에 만난 멋진 도시라고 여기는 지역에 삶의 터를 옮기고 빵집을 열었다. 계획대로 열심히 건강한 빵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과 ‘정’을 나누면서 일 년에 한 두 달은 자신들만의 휴가를 보내며 살고 있다. 몇 년의 노력으로 자리를 잡고 자신들이 꿈꾸는 나름의 삶을 일구고 있다고 했다. 이런 청년들의 삶을 청소년들이 만나서 듣고 질문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것과 유명 프랜차이즈점에서 빵 만들기 체험만 하고 나오는 청소년의 진로활동의 결과는 다를 것이다. 빵에 담긴 의미와 빵을 만드는 사람들의 역사를 만나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군산에 가면 장동헌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카페미곡’이라는 커피 전문점이 있다. 카페미곡은 미곡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어 낸 지역의 독특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커피 전문점이다. 


장 대표는 본래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다가 어려움을 겪고 힘겨움을 극복해 보고자 커피를 선택했다. 커피를 공부하면서 미국, 네덜란드 등 해외로 나가 전문적 지식을 쌓았다. 스스로 커피의 맛을 찾아가고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와 같은 원두의 주산지를 방문하면서 커피 공부를 했다. 


커피는 삶의 질과 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유럽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질 높은 커피 소비량도 늘어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도 커피 소비량은 많아지지만, 커피 질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커피를 만나면서 깊이 공부하게 되었고, 커피를 통해 지역을 보고 커피 교육을 하며 사회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바리스타로서 한국대회뿐만 아니라 아시아, 세계대회까지 각종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에서 열리는 진로콘서트에 초대되어 들려준 커피의 이유와 5H 운동에 청소년과 지역 시민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는 커피를 통해 건강(Healthy), 행복(Happy), 하모니(Harmony), 정직(Honesty)과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인간적인(Humanity) 내용이 커피를 중심으로 추진하는 5H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치를 기반으로 장애인들의 재활과 청소년의 진로지원을 위한 커피 교육도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장동헌 대표


청소년에게 진로교육 하면서 "걷는 게 중요하지 않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나눌 수 있음에 큰 감사가 있다"라는 장동헌 바리스타의 이 말에 삶의 많은 부분이 함의되어 있다. 삶에서 걷고 뛰고 나아가지만, 반드시 넘어지는 때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무엇을 갖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관계에서 나눌 수 있음에 만들어지는 ‘감사’를 알아간다는 것이다. 


사업을 하다가 무너지면서 커피를 만나고 바리스타를 하면서 그가 만난 삶은 커피를 통해 역경을 이기고 나누며 변화시키는 삶에 맞추어져 있었다. 어쩌면 우리네 진로는 자기 삶의 여행에서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닌, 부딪치고 넘어지는 아픔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관건은 아닌지. 장 대표와 만난 청소년들의 진로활동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했다.


진로활동은 청소년 개개인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하도록 지원하는 일로서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상황을 헤쳐 나가는 지혜와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의 삶을 만나고 사람과 관계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관계를 돕는 이들이 마을에 삶을 사는 우리의 이웃이다. 단순히 청소년들의 직업 소개를 위해 잠시 만나서 소개해 주는 일을 넘어서 모든 세대가 함께 마을에서 통합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청소년의 진로의식은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세심한 관찰과 배려, 대화를 통해서 자라난다. 지역 사람들 곧 이웃의 지속 가능한 관계가 영향을 미친다. 청소년 진로활동은 가능한 이러한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크리에이터나 아이돌 등 이전과는 다른 직업 순위가 올라와 있는 상황이라면서 잘 알지 못하고 현실과 괴리된 하늘 붕붕 떠다니는 이상한 이야기는 그만해야 옳다. 청소년들의 현재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 체험이라면서 청소년에 대한 삶의 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프로그램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이벤트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바리스타뿐만이 아니다. 그 어떤 직업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삶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직업을 만난다는 것은 개인이 삶의 한 과정을 만나는 것과 같다. 곧 청소년 직업체험은 사람의 역사를 만나면서 청소년 자신의 가슴 안에 남는 게 무엇이며 고민과 즐거움 기쁨은 무엇인지 자신이 느끼는 성찰의 과정이다. 그 가슴에 즐거움, 기쁨, 어떤 기대에 대해 담당 선생님과 부모, 청소년활동가나 지도자들은 그들과 대화하기도 하고 해석하면서 청소년의 마음을 보려는 노력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