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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건희 Jan 21. 2022

미안하게 해서 미안하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2000년인가? 서울 출장에서 만났던 군인, 이전에 만났던 청소년. 그 때 기록을 꺼내서 쓴 이야기. 시간이 지날 수록 내 부끄러운 점만 커진다.


#

서울에 일이 있어서 오후에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간사님’ 하며 부른다. 돌아보니 군인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용민(가명)이다. 예전 간사라는 호칭으로 활동했던 민간단체에서 용민이는 청소년기에 밴드 활동을 했었다. 보컬을 맡아 노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대 휴가 마치고 귀대한다고 했다. 차 안에서 노트북 켜고 할 일이 조금 있어서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서울 고속터미널에서 내려 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하다가 용민이가 묻는다.


"후배들이 간사님 말 잘 들어요?"

이전에 활동했던 청소년들을 만나면 묻는 질문 중에 하나다.

"그렇지, 뭐"


"간사님, 전 관장님보다 간사님이 편해요."

"맘대로 부르렴. 간사, 선생 너 부르고 싶은 데로 부르면 된단다."


용민이가 대뜸 한마디 한다.

"간사님, 예전에 밴드 활동할 때 간사님 속 많이 썩였던 것 같아요"

하며 배시시 웃는다. 


이 말을 듣고 밖으로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한마디 했다.

‘그래 인석아, 이제 아니 다행이다. 너 때문에 마음 아팠던 기억이 많다.’ 


속으로만 구시렁거리고 그냥 웃어 주었다. 귀대한다니 마음도 괜히 '짠' 했다. 식사 마치고 지하철역 앞에서 헤어졌다.


간사님 말 잘 들어요?


전에 단체에서 활동했던 10대들이 나이 들어 가끔 만나곤 한다. 군대에 가거나 어려운 일 있을 때나 결혼 등 특별한 일이 있으면 찾아온다. 그때 마나 나를 보며 간혹 미안해하는 청년들이 있다. 청소년 시기에 이 친구 때문에 내가 마음 아파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만 “간사님 말 잘 들어요.”라는 질문 듣는 순간 내가 너무 ‘내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오버하지는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청소년들에게 미안해하도록 하는 그 어떤 일을 하지 않았나?’ 나 자신에게 반문을 하게 됐다.


청소년들이 나에게 미안함을 갖도록 하는 환경과 틀을 내가 만들었다는 생각까지 미치니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한다고 입으로는 주장하고 있었지만, 돌이켜 보니 과거의 나는 청소년의 변화를 추동한다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으로 유도했던 일들이 많았다. 


청소년들과의 대화나 회의 가운데에서 수평적 관계나 소통이라고 주장했지만 기성세대가 가지는 옳다고 여기는 몇 가지 가치나 사회적 통념을 강조하기에 급급했다.


나를 만나는 청소년들의 행위나 이야기를 내 틀에 맞추려 노력했다. 그러한 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혼자서 아파하고 힘겨워했다. 이러한 모습들을 가까이 있는 청소년들이 봤을 것이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청소년들에게도 옳은 것으로 비추어졌겠고 이를 어기거나 불편해하는 10대들은 당연히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형식적인 민주적 과정을 거쳤으니 그것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을 수도 있겠다.


기성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옳다고 여기는 기준들이 있다. 그 기준에 맞추어 청소년들에게 제안하고 교육할 때에 그것을 거부하거나 저항할 때 잘 못 되었다고 알려주거나 화를 낸다. 


등교거부를 하는 청소년, 대학을 거부하는 청소년, 취업에 대한 고민보다는 작가나 음악가 등 어른들이 생각하는 직업이 아닌 다른 진로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였다. 단체 내 후배들이 학교를 결석하거나 하면 몇 개 동아리 선배들은 후배들을 혼내는 일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규율이고 좋은 일이라고 여겼었다.


대화나 토론, 회의 과정에서 나오는 내 안의 문제도 보인다. 입으로는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이 아니고 청소년들과 어떻게든지 수평적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했지만 과연 그랬을까? 


기관의 사업 계획에 맞추어 청소년들의 활동을 꿰어 맞추는 일들이 있었다. 타 지역과 연합해서 가는 법인의 리더십 캠프 등은 임원들은 모두 참여해야 한다면서 회의에 안건으로 밀어 올렸다.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개별 청소년에 대한 이해를 구하면서 논의하기보다는 일단 기준으로 설정된 행사에 참여하는 과정을 회의하면서 단체에 함께 하는 일이니 당연히 가야 한다고 했다. 


유도하고 결정한 일들


더 문제는 나의 대화 방법이다. 나름 의사소통기술도 공부했고 '강사질'까지 할 정도이니 대화 중 치고 빠지는 기술 연마되어 있었다. 청소년들과 대화하면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약속을 ‘유도’하고 결정한 일이 꽤 있다. 그들을 공감하고 소통한다고 했지만 그 과정이 청소년들의 생각과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하기보다는 내가 생각했던 어떤 일들을 이루어가는 과정으로 몰아가는 일들도 있었다. 그것도 청소년을 위한다는 맹목적인 신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들이었다. 생각해 보니 청소년들 관계에서 내가 반성할 일이 많아 보인다.


내 속 마음까지 몰랐던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약속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던 것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회의 결과에 책임을 지지 못했을 때 당연히 미안함이 있었을 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미안함을 더 가졌던 것만 같다. 


나는 약속을 어겼거나 결과에 대해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을 때 분명 나무라거나 짜증 또는 용서 등을 했을 테니. 실상 내 가슴을 열어 보면 앞에서 열거했던 것처럼 내 기준으로 생각하는 올바름에 전도되어 청소년들을 몰아갔던 일들이 많았는데 말이다.



귀대하는 용민이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미안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너 때문에 마음 아파했던 것을 내가 너무 많이 보여 줬다. 미안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마음 아파했던 것이 외적으로 보이는 너의 문제 때문만이 아닌, 내가 주장했던 일들이 잘 안 되어서 내 기준에 아파했던 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속 썩었던 것도 너 때문이 아닌 결국은 너희들이 선생이라 칭했던 내가 너무나 부족해서란다. 용민아, 미안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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