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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건희 Jul 10. 2023

변희재와 진중권, 내 신념을 의심해야 해

끊임없이 자기 신념을 의심하는 것이 참여의 시작이고 과정인지도

불과 몇 년 전까지 변희재 씨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극우적인 인사로만 알고 있었다. 진중권 씨는 진보논객으로 이전 토론배틀 했던 ‘사망유희’에서 변희재에게 완패할 때도 그가 어떤 조작을 했겠거니 생각할 정도로 신뢰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진중권 씨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 상당수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 있다. 나 또한 그의 발언을 이전과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오히려 최근 변희재 씨가 나오는 방송에서 발언하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많아졌다.


이상 한 일이다. 몇 년 전까지 ‘진중권, 노회찬, 유시민’ 세 분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찾아서 들었지만, 변희재 씨 글이나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싫었다. 현재는 이전과 다르게 변희재 씨의 방송을 보아도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이전과는 많이 바뀌었다. 왜 그럴까? 진, 변 두 분이 바뀌어서 그럴까? 이분들은 이전과 비슷한 논리로 여러 방송에서 정치적 주장을 하고 다닌다. 바뀐 거라면 그들이 지지했던 정당이 섞여 버린 것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완전히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이들도 오락가락하는데 두 논객 모두 이전에 지지했던 정당의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일이 많아졌다.


시키는 일을 하면 자신의 책임이 없어지거나 반감이 된다. 선택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서다. 기관, 조직에서 일하면서 점차 승진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결정’하는 일이다. 생각해야 하고, 그 생각 이면의 근거와 논리가 나름 합당해야 하며 이후에 책임도 져야 하는 일이다.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과정에 하나다. 그런데 정치와 정책에만 오면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진영이 나뉘어 있어 이미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어느 순간 갖게 되어버린 ‘신념’에 따라 ‘선택’은 정해져 버린다. 그 신념 또한 자신의 가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원래 지지했던 정당이나 지역 정치인이 무조건 우리 편인 것이다. 그것이 신념일까?


기존의 것을 변화시키면서 진보라고 하면 좋겠고, 기존의 것을 지키면서 국가 중심으로 애국으로서 보수라고 하면 그나마 이해된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 그저 내가 우연히 태어나서 사는 지역에 따라, 또는 누구와 가깝거나 부모나 이웃이 그 정당을 지지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들이 주장하는 막연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이다. 자신도 모른 상태에서 태어난 지역과 사람에 얽혀 자신의 진영이 결정되었다. 거기에서 만들어진 신념 또한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생각도 좌우로 진영도 나눠서 정해져 있는 세상이다. 청소년들에게도 성인들이 교육하거나 안내하는 정치적 논리가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야 할 일이다. 내 고향이 대구이고, 내 고향이 광주이며, 내 고향이 부산이나 군산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정치적 신념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어떤 이는 대중이 ‘진, 변’과 같은 논객의 주장이나 논리를 그대로 믿고 따른다고 여긴다.  논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혀’에 의해 대중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신념’에 들어맞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면 타자를 공격한다. 자신이 가진 신념을 강화시켜 줄 사람을 찾을 뿐이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강정책이 무엇인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막연한 프레임에 갇혀서 자녀나 가르치는 학생에게 은연중에 자신이 가진 이상한 고집을 전파하고 그대로 투영할 뿐이다.


나는 사람의 신념이 두렵다. 몸에 폭탄을 붙이고 테러하는 사람들의 신념, 일본의 천황폐하 만세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살인하며 할복하는 신념, 나치를 추앙하고 8백만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한 신념, 종교적신념으로 가스라이팅 하면서 사람을 조종하며 성폭행 당해도 천국간다고 믿으며 자녀의 삶까지 파괴하는 자들까지. 그 중심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확신하는 인간의 신념이 있다. 


내가 믿고 있는 신념이 논리적인가, 정의로운가, 평화적인가 등 끊임없이 의심하며 살지 않는 한 나 또한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좌빨, 극우라고 통칭하며 적을 만들어 낼 게 아니다. 누군가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 내용이 시민을 괴롭히고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면 싸워야 할 뿐, 내가 가진 정치적 신념은 벗어 던질 일이다. 지역주의, 세대 갈등, 진영논리 등 지겹고도 지겹다. 


청소년에게 정치는 똥물이니 묻으면 큰일 난다고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신념을 키우는 일이다. 청소년은 정치활동을 경험해야 한다. 단순히 어떤 정당을 지지하고 반대하고의 의미가 아니다. 학교에서 학생회활동, 학생자치활동을 실제 진행되어야 하고, 그들에게 학습권 뿐만 아니라 학교 자치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해 보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 모두가 정치활동이다. 정당가입도 마찬가지다. 지역을 넘어 그들이 꿈꾸는 사회를 이루어 줄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이고 이상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정당이 어디인지 그들이 선택하여 참여하는 경험이 요구된다. 


청소년이 어떠한 정당을 가입하고 활동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안의 정강 정책, 이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자신이 무엇을 지지하며 어떤 세상을 꿈꾸고 이루고 싶은지를 살필 수 있는 능동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좌도 우도 그 어떤 지향을 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그 이상향에 신념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함께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면서 삶을 살아내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도록 청소년과도 함께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신부터 믿고 추앙하는 그 신념의 그 밑바닥까지 깊이 의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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