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했다
1. 민주적인 학교의 분위기를 만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학생의 입장이나 교사의 입장이 다 마찬가지. 그것은 학교의 운영이 비대칭적인 관계, 특히 수직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먼저 교사와 이른바 관리자의 수직 소통은, 이런 걸 소통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난감한데, 언로를 막는다.
2. 지금 우리는 초유의 팬데믹 상황에서 등교를 강행하고 있다. 모두가 처음으로 맞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럿의 지혜가 모이면 좋을 텐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행정은 간혹 민주적 질서를 무너뜨리며 그 가운데 ‘관료’가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 우리는 감축된 수업일수 속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혼란이 생기는데 대표적인 것이 시험기간 운영이다.
전체 수업일수를 줄여서 중간고사의 긴 시간을(하루 5시간) 줄이자는 의견에 교감은 다음과 같은 황당한 주장을 폈다.
“그 문제에 관해서 주장들로 충분히 의견을 나눴다. 그런데 이런 문제제기가 다시 나온다는 것은 전달이 안되었다는 이야기다. 소통의 문제다. 다른 부장들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고, 당황스러워서 교무부장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거 같다”
3. 순간적으로 너무 기분이 나빴는데 그것이 교감이 공개 석상에서 교무부장을 깎아 내려서였기 때문인 듯했다. 공개석상에서 교무부장을 깎아내리는 장면은 흔한 장면이 아니기 때문이니 당혹스러웠던 것도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부장을 두둔했는데 그 내용에 대략 동의했다. 다만 나는 나서지 않았다. 뭔가 주저되는 면이 있었는데 명확하지는 않았다.
4.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문제가 아닌 듯하다.
5. 문제는 교감이 말하는 소통의 개념부터였던 것 같다. 부장과 교감이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내린 결론이 교사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것을 두고 소통이 안된다고 했다. 잠깐! 자기들이랑 회의하고 통보해 놓고 교사들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회의 석상에서 말한 것이 소통이 아니라고? 다시 정리해 보자. 부장들과의 회의는 ‘기획’의 개념을 넘지 않는다. 넘지 않아야 한다. 대략 그 기준이 깨자는 것은 급한 문서 상 의사 결정을 내릴 때이지 기획회의가 전체 교사의 뜻을 모두 대표할 권위는 없다. 그들은 선출된 것이 아니다. 당연히 기획 단계의 내용을 교사들이 반대할 수 있고, 이 과정이 교사회의가 돼야 한다. 그런데, 그 회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소통이 안된 거라니? 이 분이 생각하는 소통이라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다. 상명하복의 수직적 의사전달.
6. 나는 순발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이런 생각을 한꺼번에 떠올리지 못하고 씩씩 대다가 다른 선생님들의 문제제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무실로 돌아와서 그분들이 안 했으면 내가 했을 거라고 허세를 떨었지만, 사실은 알 수 없는 일. 이런 생각이 뒤늦게 나다니... 억울한 일이다.
부장은 학교 운영을 하면서 경험해 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자칫 책임감이 과하면 무리수를 던진다. 정보의 비대칭을 당연히 여기고 “모든 걸 말해 줄 수는 없으나.....”와 같은 태도를 취하면서 학교를 위한 일이랍시고 교사들이 싫어하는 일에 매진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한 발 물러서 파견 뒤 복귀, 담임, 원격 수업을 겪으니 학교의 민주주의나 자치가 그리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다.
7. 결국 기획회의와 각종 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그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데 있다. 선출되지 않는 기획회의의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신뢰가 낮거나,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학교 내부 구성원들의 반목, 혹은 정보 비대칭의 문제는 학교 구성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우리 하교는 눈에 띄게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나 하나가 문제를 제기하고 사이다를 날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보다 민주적 의사소통 체계로 구성하는 일. 특히 혁신의 의지와 경험이 전무한 교장, 교감이 있는 곳에서 이 같은 체계를 세우고 교사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일에 고민을 더해 봐야 할 것 같다
8. 나는 부장교사였을 때 어떤 사람이었을까? 혁신을 핑계로 어떤 사안들을 하향식으로 밀어붙이는 사람 아니었을까.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체계를 세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 체계는 교사회의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거버넌스 체제를 기획해 보고 싶다. 교사회의가 주도하는 거버넌스를 통해 지역 혹은 학부모 학생과의 관계를 선점하고 민주적 학교 모델을 상형식으로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