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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선생 Jun 05. 2020

온라인 시대의 국어 수업

새로운 시대의 개막? 시간 때우기?

비록 코로나 19 때문이라지만 온라인 수업은 '변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놀라운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대면 수업만이 가능했던 환경에서 '강제적으로' 벗어나 비대면의 상황에서 학교교육이 이뤄진다는 것은 낯 선일이다. 때문에 매우 두렵고 혼란한 상황이 연일 이어졌다. 그러나 어차피 해 나가야 할 일이라면 조금 더 혁신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해보았으면 어땠을까? 


공식 명칭을 '원격 수업'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무래도 낡은 느낌이다. 내가 국어교사인데도 차라리 온라인이라는 말이 더 귀에 감기고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아니면 아예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어야 하지 않을까.. 늙고 꼰대스러운 '원격'의 명칭 속에 온라인 수업(나는 그냥 꿋꿋하게 '온라인 수업'이라고 부를 작정이다) 은 낡은 제도와 관행에 묶여 묘하게 흘러갔다. 특히나 출결에 목매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현장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 들었다. 온라인의 특성은 '언제나, 어디서나'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 특성을 무시하고 대면 수업의 상황을 고스란히 '집'으로 옮겨놓으려니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교무실은 콜센터나 다름없었고, 정신없는 출결 확인 속에 혼란은 가중되었다. 


'출결'을 넘어서는 행정과 제도의 변화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참에 출결을 깡그리 무시해보는 전략을 사용해보는 것은 어땠을까? 평가에 대해서도 총체적으로 논의해볼 만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그냥 온라인 수업을 대면 수업처럼 진행하고 말았다. 


블렌디드 러닝이니, 뉴노말이니 하는 소리를 현장에서 비웃는 것도 이런 변화 흉내내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이른바 적극적 행정력을 펼쳐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을지.....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두고, 나는 친구 문철과 함께 지식 대담 형태의 수업을 준비했다. 혼자서 고정된 화면 안에 얌전히 앉아 있는 영상이 지금의 세대에게 얼마나 지루한가. 그렇다고 화려한 편집의 기술과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시선을 사로잡을 것 같지도 않다. 물론 그런 기술도 없고 말이다. 주어진 프레임에서 국어교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업 형태가 이런 수업 대화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우리가 학생들에게 내내 강조해 온 것은 책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대화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고, 실제 어떤 식으로 대화가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가르친 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살 대화의 방법을 알려준다는 것도 교사 혼자 이끌어 가는 수업에서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범 보이기'의 일종으로 소설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비판적으로 읽어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로 했다. 


준비는 별 것 없다. 마이크와 스마트폰, 그리고 편집 도구로 사용한 아이패드가 전부였다. 책은 최근 화제가 된 책과 현대의 고전으로 불릴 수 있는 책, 그리고 장르물을 하나씩 골랐다. 사실 비슷한 주제로 엮인 책을 고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다양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첫 책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사랑'이었고, 이 작품을 통해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나 다양한 시각이 가능한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두 번째 소설은 최인호의 '술꾼'이었고 이어서 권여선의 '봄밤'까지 다루었다. 청소년들에게 '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나, 일단 호기심과 흥미를 끌만한 소재라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작품의 분위기나 주제에 따라 '술'이라는 소재가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교육적으로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마지막 작품은 김초엽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로 정했다. 


우리가 보기에 각각의 작품들은 독자가 읽을 포인트가 조금씩 달랐다. 예를 들면 장류진의 소설은 최근의 '세태'가 특정 공간에서 어떤 인물들을 통해 반영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최인훈의 작품은 전쟁 혹은 인간성의 말살이 가져온 비극을 통해 소설 속에 등장하지 않는 '비극'을 상상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권여선의 '봄밤'은 특유의 애상적인 분위기가 '술'을 통해 더욱 비장해진다는 점에서 '술'이 곧 기억과 사랑, 고통과 연민에 즉각적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만했다. 무엇보다도 강렬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소설이 '인간'을 다룬다는 점을 전달하기에 좋았다. 김초엽의 소설은 '장르물'이 가진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생각과 다르게 영상 온라인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재미없는 글을 다음 편까지 써야 할 것 같다.. 어쨌든 개인의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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