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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선생 Nov 14. 2021

나의 교직 입문기

25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의 첫 교직 생활이 부끄러웠던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배웠던 그때의 학생들 때문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좀 특별해서 문서와도 전쟁을 벌여야 하고, 지금 당장 눈앞에 밀려드는 학생들의 눈빛과도 전쟁을 벌여야 한다. 아직 제대로 학생들을 다룰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초짜 선생이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다 똑같은 선생인지라, 그 부담감은 상당하다. 베테랑 교사들이야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학생을 받아들이고 그때그때 발생하는 폭탄 같은 현안들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이전에 경험했던 사건들을 적당히 응용하면 용케도 그 순간을 모면할 길이 열리는 거다. 이런 걸 임상이라고 해야 하나 경험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보통 교사들은 단단해지는 법인데, 다들 마찬가지지만, 폭풍우 안에 있으면 햇볕을 생각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에헴 나는 이제 아이들 앞에서 제법 노련한 티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는 당연히 몰랐다. 부질없는 짓이었고 학생들은 학생들의 집단 경험을 통해 어리바리한 신규 교사의 능숙한 척을 쉽게 알아챈다. 차라리 이때 담백하게 나 신규니깐 잘 부탁해... 했으면 지금 그 시절이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능숙한 교사인 척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소리에 예민하게 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잘됐어 지금 이 순간 내가 수업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보여줘야지. 이 녀석들 딱 걸렸어.      


 지금 누구야. 부스럭거리는 소리 내는 사람. 앙? 선생님이 지금 앞에서 수업하고 있는데 무슨 짓이지? (음.. 뭔가 엄해 보이고 좋았다.)       


 재빨리 고개를 숙이는 녀석을 찾아내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칠판 앞에 서면 전체를 빠르게 조망하는 일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뭐 매 밑에 다람쥐랄까....      


 나는 재빨리 매의 속도로, 슬리퍼를 탁탁거리며 소리의 진원지를 향했다. 눈에 좀 힘을 줘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나의 엄숙함이 빛날 것이었다. 수업은 신성하다.      


매의 발톱 및 다람쥐다.


 올려놔.      


평상시 막 떠드는 녀석들은 아니었는데 이날 이상하게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마음속에 약간 의아한 느낌을 지닌 채로 손을 내밀었다. 


  저 선생님 죄송해요. 과자봉지가 책상 위로 올라왔다. 갑자기 교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가급적 냉정한 표정을 유지했다.      


조용히 해. 왜 이렇게 어수선 해. 


나는 신경질이 많은 편인데, 사람이 속이 좀 좁고 못난 면이 있어서 어렸을 때 옹졸하다는 비난을 종종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좀 뜻에 안 맞는 면이 있더라도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을 일도 굳이 시비를 걸어서 큰 싸움이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 면을 스스로도 못마땅해하면서도 쉬이 나아지질 않았다. 20대의 나는 그랬다.      

여기저기 낄낄 거리는 웃음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소리에 일일이 대응하는 일은 더 난감한 일이 되기 때문에 나는 난처한 상황을 맞이한 부엉이가 되고 말았다. 제자리에서 멍하니 과자 봉지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치토스네 치토스’ 

    

그 순간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부엉이는 부리부리해진 눈으로 360도 목을 돌려보았는데 도저히 그 웃음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이봐 왜 웃어.. 같이 웃자.. 부엉...     


다람쥐들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차츰 웃음이 진정되자 의아한 부엉이가 눈을 비비며 다람쥐들에게 물었다. 


애들이 왜 웃니..?... 

저... 선생님...... 죄송해요... 

괜찮아 뭔데...(나는 관대하다.. 이 다람쥐들아...) 

저 선생님 별명이 치토스예요.... 저희끼리 그렇게 불러요...     


과자 봉지 앞에 혀를 길게 빼고 ‘언젠가는 먹고 말 거야’를 외치는 그 선글라스 낀 치타.. 맞다. 그거... 원래 걔 이름은 체스터.. 일 거다. 그래도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생긴 치토스 선생들을 한 학교에 하나씩은 데리고 있었지 싶다. 그 치토스가.... 나다. 매도 아니고 부엉이도 아니고... 치토스.. 언젠가... 뭘... 먹는 애.....      

아마 내 얼굴이 빨개졌을 거다. 사실 돌아보면 놀라운 일이다. 학생이 직접 선생님의 별명을 얘기해주고 선생은 그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고 반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고 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는 것은 사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게 그렇게 멋진 순간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초짜 선생은 모욕감으로 몸을 떨었다. 나는 전혀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같이 웃으면 내가 치토스라는 걸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 일테니 말이다... 


튀어나온 입(주둥이), 뭔가 어눌한 행동, 제대로 하는 건 없으면서 늘 큰소리만 치는 그 치토스 놈..    이 나야...?..   


몸을 휙 돌려 칠판 앞으로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는 옹졸한 인간.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 반 아이들의 머릿속에 나는 아마 되게 잘 삐치는 젊은 남자 선생이었을 거다. 나는 부끄러움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빠르게 수업 종료 종이 울리고 미친 듯이 교무실로 향하던 내 손에는 언젠가 먹고 말 거야.. 치토스가 들려 있었다.      

그놈... 참.. 혀도 길다. 


(나는 그 때 몰랐다. 이 별명이 그렇게 엄청난 생명력으로 내 교직 인생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 붙을 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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