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보영 Nov 20. 2020

믿지 못할 유언

프란츠 카프카 선집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카프카는 이미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있던 1922년 11월 말경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이 죽으면,「선고」,「화부」,「변신」,「유형지에서」, 단편 모음집『어느 단식 광대』에 실린 작품 등 이미 발표한 것은 남겨 두어도 좋되, 마무리할 수 없었던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불태워 없애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유언을 성실하게 집행하지 않은 바로 그 브로트 덕분에, 소위 ‘고독의 삼부작’으로 불리는 세 편의 미완성 장편소설(『실종자』,『소송』,『성城』)을 비롯한 카프카의 많은 작품이 독자들에게 소개될 수 있었다.’ (<카프카 선집>, 현대문학, 2020, p.797)

여기서 의문. 왜 많은 작가들은 유언으로 자신의 작품을 불태워달라고 할까, 손수 불태우지 않고. 악화된 건강 때문에 타인에게 부탁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쳐도, 정말 그 작품들을 없애고 싶었다면 (꽤 중요한 문제인데!)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기 전에 ‘지금 당장’ 불태워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들은 왜 꼭 자신이 죽은 이후에 작품을 불태우길 바랐을까? 작품보다 일찍 죽고 싶어서? 

이따금 내가 죽은 이후에 남겨질 나의 작품에 대해 생각한다. 많은 작품들이 유언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듯, 유언은 별로 믿을 것이 못 된다. 카프카가 유언을 맡겼다는 친구 막스 브로트는 왜 유언을 충실히 집행하지 않았을까? 그래, 친구가 문제다. 인력거, 호저, 흡연구역....나의 친구들을 떠올려본다. 친구들이 과연 내 작품을 불태울까? 믿을 수 없다.. 인력거는 내 작품을 너무 은밀한 곳에 보관해두었다가 잃어버릴 것 같다. (그리고 먼 훗날 누군가 찾아낼 것이다) 호저는 내가 죽자마자 작품을 블로그에 올려 세상에 널리 알릴 것 같다. 마지막으로 흡연구역은...나보다 오래 살 것 같지 않다. 따라서 구조상 유언을 들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불태우고 싶은 작품은 죽기 전에 내가 직접 죽이리라....

그러나 정말 불태우고 싶은 작품을 아직 쓰지 못했으므로 그 작품을 쓰기 위해 오래 살아야 하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