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이렇게 생겼다.
나는 ①에 앉아 있다.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는 ②번 테이블이 보인다. ②는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과 똑같이 생긴 1인용 정사각형 테이블이다. 둘 다 네 개의 의자가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다. 한 명이면 충분한데 왜 의자를 네 개나 갖다 두었지? 나는 생각한다. ②번 테이블은 조명이 밝아서 책을 읽기에 좋다. 그런데 누가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그 사람이 자리를 뜨면 내가 차지하리라. 머지않아, ②에 있던 사람이 자리를 떴다. 그래서 나는 ②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했는데 카페에 막 들어온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 사람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 상자들을 테이블 위에 부려놓는다. 그러고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일행이 있는지 문가를 쳐다보며 착석한다. 나는 갑자기 안심한다. 사실 기회가 생길까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차라리 기회가 없었으면 한다. 기회의 다른 말은 번거로움이기 때문에. 덕분에 나는 자리를 옮기는 대신, 하던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②에 앉은 사람이 선물 상자들을 가슴에 안고는 6인용 테이블인 ③번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막 들어온 그의 일행들과 함께 음료를 주문했고 그들은 모두 6인용 테이블 ③에 둘러앉았다. 그 바람에 ②번이 다시 비었고, 나는 이제 번거로워졌다. ‘더 나아질 수 있음’ 그 사실이 언제나 나를 성가시게 했다. 늘 그랬다. 나를 괴롭힌 것들은 그런 생김새였다. “더 나아질 수 있음”의 얼굴을 한 것들이 내 삶을 피곤하게 만들곤 했다. 따라서 나는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고, 나와 같은 것을 원하는 누군가 나타나 나 대신 ②을 채갔으면 했다. 내가 나서지 않게, 내가 바라지 못하게, 어서. 약간의 미련이 ‘짐 옮기기, 새 출발, 카페 직원 눈치 보기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 보다 나았기 때문에. 나는 확실히, 변화보다 미련을 잘 다루므로. 나는 나의 욕심이 불편하지 않다, 고 어딘가에 썼으나, 나는 나의 욕심이 성가시다. 가끔은 그것을 파리처럼 쫓아버리고 싶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②를 원하지 않는다. 이 공간에 나와 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고, 그것을 원하는 자는 오직 나 하나뿐이었기에 나는 마땅히 그것을 차지해야 한다. 나는 이제 ②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밝은 곳을 좋아하니까 막상 가면 좋을 거야. 나는 나를 설득한다. 나는 퀸스 겜빗 사진으로 꾸민 일기장 두 권과, 읽고 있던 시집 그리고 말씹러 초상화 스티커를 붙인 노트북, 갈색 머리끈, 음료, 선물로 받은 붉은 가죽 필통 그리고 패딩과 책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②로 이동한다. 그리고 일기장을 펴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으며, 무엇을 먼저 쓸지 모른다. 글을 쓰는 한 나는 세상의 순서를 망각하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의 순위는 내 멋대로 재조정된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글을 쓰는 동안 중요하지 않고, 세상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또한 글을 쓰는 동안에는 여전히 중요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중요할 수 없고, 오로지 떠오르는 것을 불빛 삼아 쫓아간다. 쫓아가다 보면, 중요한 것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도 중요하지 않아서 나는 고래처럼 잠잔다. 고래가 잠잔다는 말은 거짓말이랬다. 고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지 않는다. 고래는 자도 반만 잠든다고 우기가 말했다. 고래의 뇌는 반만 잔다고. 고래의 우뇌와 좌뇌는 돌아가며 불침번을 선다. 자면서 동시에 망보는 기묘한 존재. 자기가 자기 자신의 불침번인 거네. 나는 말했다. 고래는 평생 단 한 번도 완전히 잠들지 않고 오직 죽을 때 처음 잠이 어떤 건지 알겠어. 그 순간, 카페 벽면에 쓰인 글귀가 보인다.
A yawn is a silent scream for coffee
Forget love, fall in coffee
Coffee doesn’t ask silly questions. Coffee understands.
이 문장의 coffee를 모두 change로 바꿔 읽는다.
하품은 변화를 향한 고요한 비명이다.
사랑을 잊고, 변화에 빠져들어라.
변화는 어리석은 질문 따위는 던지지 않는다.
변화는 이해한다.
“의자 좀 빌려도 될까요?” ③에 있던 한 사람이 내 맞은편에 있는 의자 하나를 가져간다. 나는 그러라고 한다. 마음먹고 ②으로 옮겼는데 더 많은 것이 변한다. 여기로 옮기자마자 내 뒤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①도 ③사람들에게 의자를 빼앗기고 있다. 다음과 같이 의자 네 개를 몽땅 빼앗겼다.
(내가 떠나온 책상 ①. 의자를 모두 잃어버렸다)
따라서 나는 이제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는데, 그 사실 때문에 왠지 이 변화가 탐탁지 않았다. 게다가 옮겨온 테이블의 좌측인 ⑦에는 난로가 서 있는데 열기가 과하다. 게다가 천장 ④에 스피커가 달려 있어서 음악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그리고 벽 쪽에 소파가 있어서(⑤) 구조상 소파에 앉은 자들이 나를 향하고 있다. 나는 갑자기 한 번 더 뒤를 돌아본다. 네 개의 의자를 몽땅 뺏긴 테이블은 이가 다 빠진 우리 할머니 같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의 의자가 다 사라지자 기분이 묘하다. 카페나 식당에서, 내가 나가자마자 테이블을 정리할 때처럼 조금 서운하다. 그 감정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같이 탄 사람이 손가락을 이미 <닫힘> 버튼에 올려놓은 장면을 목격할 때와 유사하다. ‘저 사람에게 나는 완전히 필요 없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반복되는 이야기. 의자를 다 빼앗긴 ①. 내가 떠나온 곳. 내가 떠나왔기 때문에 책상은 의자를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책상에게 빚지고 글을 쓰고 있었는데, 떠나고 보니 나는 책상의 의자를 지키는 수호자였구나. 더 나아질 거라 믿으며 여기로 옮겼는데. 일전에 우기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기는 고무동력기 대회에 나갔는데 1등을 해서 시 대회에 나갔다. 그런데 대회에서 고무 동력기 조립을 끝내고 날리기 직전, 선생님들이 1등을 했다는 선배의 고무동력기 고무를 가져와 바꿔 끼우라고 했다. 우기는 자기 고무가 덜 좋은 것이어도 쓰던 고무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선생님들의 등쌀에 떠밀려 새 고무로 바꿔 끼워야 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선배의 고무는 검증된 고무였으니 자신의 것보다 좋을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일까? 우기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낯설고 좋은 고무를 이용해 동력기를 완성했다. 하지만 날리자마자 고무동력기는 3초도 날지 못하고 곧바로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만다. 우기는 미안했다고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바꿔버린 고무들에게. 새 고무와 낡은 고무 모두에게. 우기의 마음속엔, 날리지 못한 고무 동력기에 대한 미안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고무 동력기를 향한 미안함은 지금 내가, 버리고 떠난 책상에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나는 변화를 믿지 않는다. 특히, 변화의 좋은 점을 믿지 않는다. 어디선가 한기가 느껴진다. ⑥은 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나갈 때마다 찬 바람이 들어온다. 사람이 들어올 때도 춥다. ③에 중요한 사람이 있었는지, 그 사람이 나가자 갑자기 사람들이 모조리 일어나 그 사람을 배웅한다. 어떤 사람이 나가는 데 오래 걸려서 내게 추위가 길어지고 있다. 계속 문을 열어놓고 안 나가고 있다. 그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라 나가는 데도 오래 걸린다. 사람들이 깍듯이 인사를 하며 한마디씩 하고 있다. 너무 중요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추위가 너무 오래가잖아. 방금, 그들에 관한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내게 다가와 양해를 구하며 의자 하나를 더 빌려 간다. 그래. 오늘 내가 빼앗긴, 내가 상실한 의자는 총 여섯 개다. 이제 두 개 남았다. 왜 혼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의자가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시집으로 눈을 돌린다. 친구의 시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 편지를> 중, 안태운) “오늘 나는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쓰려고 했어요. 나는 상황에 처하는 걸 좋아합니다. 상황이 나를 어떻게든 이끌어가도록. 그렇게 어떻게든 상황 속에서 나는 내가 변모해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직면하면서 갱신해나가길. 나는 카페에서 편지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 나는 나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실험하고 있었어요, 카페에서. 실험하면서 쓰기 위해서는 무언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앉아 있었고 음악은 흐르고 있었고 무언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