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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an 08. 2024

선한 싸움을 벌이는 한 개인에게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어쩐지 고전을 읽어야 할 것 같다. 

고전하면 어렵고 지루할 것 같은 편견이 있다. 이 책은 다행히 잘 읽히고 무척 얇다. 

익숙한 책이라 다들 읽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완독자는 별로 없는 책으로 고전이 많이 꼽힌다. 



<노인과 바다>는 기억도 안나는 어릴 때 읽었다. 

'뭐야, 이게 다야? 이렇게 끝이야?' 그땐 그렇게 느꼈다. 

이번엔 소설 마지막에 소년이 우는 대목에서, 콧날이 시큰하고 뭉클해졌다. 

같은 책이어도 읽는 나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는 게 신기했다. 



스토리는 별게 없다. (고전은 워낙에 스포일러가 무의미하니... 내용 요약합니다)

70년을 어부로 한평생을 살아온, 지금은 늙은 노인 산티아고가 84일째 고기를 허탕치고 85일째 되는 날 운 좋게 자신의 돛단배 보다 훨씬 큰 커다란 청새치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차례 상어 떼를 만나 목숨을 건 사투 끝에 결국 고기를 다 빼앗기고 뼈다귀만 배 옆구리에 매단 채 돌아오는 이야기다. 



70여 년을 어부로 살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산티아고. 한 분야에 70년을 바쳤지만 이렇다 할 결과가 없는 삶, 우리는 쉽게 '실패한 인생'이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이 짧은 이야기가 퓰리처상을 받고 노벨문학상도 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소설 <노인과 바다>는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현실 세계에서 선한 싸움을 벌이는 모든 개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다루는 작품이다."

                                                        - 1952년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선정이유 中 - 



요즘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조차 불륜, 살인, 폭력 이 기본으로 깔린다. 이런 게 없으면 밋밋하고 지루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맵고 짠맛에 길들여지면, 더 강한 맛이 아니면 맛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런 맵고 짠 피곤한 주제들을 베이스로 깔지 않으면서 선한 싸움을 통해 따뜻하고 울렁이는 뭔가를 내 안에 남겨준다.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바다라는 광활한 자연과의 싸움이다. 망망대해에 홀로 사투를 벌이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적군과 아군이 구별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경쟁자가 없지도 않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고사는 인간과 생태계의 또 다른 경쟁자 상어와의 싸움이다. 



"네가 저 물고기를 죽인 건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먹을거리로 팔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어. 노인은 생각했다. 넌 자존심을 위해서 그리고 어부이기 때문에 저 물고기를 죽였어. (...) 하지만 넌 저 덴투소(상어) 놈을 죽이는 걸 즐거워했어, 노인은 생각했다. 그놈도 너처럼 살아 있는 물고기를 먹고 살지. 썩은 고기를 주워 먹는 놈도 아니고 다른 상어들처럼 단지 움직이는 식욕의 화신에 불과한 놈도 아니야. 아름답고 고상하며 두려움이 라곤 전혀 모르는 놈이지."  (p110)



700킬로그램은 족히 나가는 엄청 큰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길,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상어 떼들과 사투를 벌이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도 찾아온다. 작은 돛단배 안에서 변변한 무기도 없이, 주변에 노인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목숨을 내어주기보다 물고기를 포기하는 간단한 방법도 있었을 텐데, 노인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청새치를 지킨다. 



바다는 삶의 현장이다. 노인에게도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바다가 있다. 청새치는 인생에서 우리가 이루고 싶은 목적이나 목표,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 말한다.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게도 이루고 싶은 청새치가 있었다. 때론 이루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했다. 



물고기를 잡았지만 온몸에 상처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빈털터리. 

노인의 3일간의 사투는 성공일까? 실패일까? 


어릴 땐 결과가 중요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과가 승패를 가르는 절대지표였다. 그때보다 나이 든 지금은 과정에 무게를 싣는다. 무엇이든 결과를 손에 쥘 확률이 희박해진 현실을 반영한 걸 수도 있고, 예전보다 열심히 살지 않는 내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처음의 마음이 선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 때, 나만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 조바심 날 때, 타인의 말이나 분위기에 팔랑팔랑 잘 휩쓸리는 타입인 사람에게 노인 산티아고를 만나보길 추천드린다. 도움이 될 거 같다.



오늘도 삶의 현장을 향해 돛을 올리고, 자신만의 청새치를 찾으러 선한 싸움을 벌이는 한 개인에게 이 짧은 소설이 힘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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