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제이 Jul 27. 2023

당신은 길티 플레저가 있나요?

밤 11시 30분, 침대에 눕는다.


오늘도 별일 없던 하루에 감사하며, '30분만 게임하고 자야지' 마음먹는다. 

휴대폰 게임은 간편하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손가락만 까딱하면 접속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게임에도 금사빠다.
요즘에 빠진 게임은 같은 모양을 최대한 많이 모아서 터뜨리는 게임이다.
휴대폰에 무료로 설치 후에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 게임은 접속자의 건강을(?) 생각해서 오래 하지 말라고 기본 5개의 생명을 준다. 

이 게임은 시작할 때마다 1개씩 생명을 차감한다. 

남은 생명이 없으면 기다림이 답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하트가 1개씩 최대 5개까지 충전된다. 



같은 색과 같은 모양의 아이콘을 3개 이상 합체하면 '펑'하고 터진다.
아이콘을 4개, 5개 많이 모을수록 더 크게 터지면서 벽을 무너뜨리고 철근을 부순다.
각 스테이지의 미션에 따라 새장에 갇힌 아기새들을 자유롭게 하기도 한다. 
크게 터질수록 짜릿하게 카타르시스까지 느끼는.... 건 오버인 거 같고 기분이 좋다.
악당을 많이 물리친 느낌? 불필요한 장애물을 깨끗이 청소한 느낌이 있다. 



게임의 매력은 레벨이 하나씩 올라가면서 전체 순위도 오른다는 것이다. 
학교성적, 자격증시험, 먹고사는 것 까지도 무한 경쟁인 사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긴 힘들지만, 손바닥만 한 온라인 게임에서는 쉽게 몇 번의 도전으로 쑥쑥 성장한다. 
오래도록 꾸준히 하다 보면 상위 Top5 안에 드는 것도 가능하다. 



막 재밌어지려는 순간 생명이 떨어진다. 매번 강제로 게임을 종료하는 게 아쉽다.
'아, 이번엔 깰 수 있었는데...'
'저거 1개만 없애면 되는데...' 
레벨이 오를수록 난이도는 높아진다. 높아진 난이도를 깨면 레어아이템을 선물로 준다. 
레어템은 다시 난이도 높은 레벨을 깨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어젯밤에도 아쉬운 채로 자야 했는데,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1시간 동안 생명 차감 없이 무제한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내일 출근인데, 1시간은 안되는데...' 
'근데 지금 잠이 안 올 거 같아,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30분만 할까!' (클릭할까 말까 서성대는 손가락)
'에잇, 인생 뭐 있나. 지금을 즐기는 거지!'



찬, 반 논리로 열심히 내적갈등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들어보면 한쪽으로 기울어있다.
이성이 지배하는 한낮과 달리 깜깜한 밤이면 감성이 지배한다.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결과는 1시간을 꼬박 사용하고, 다시 차오른 생명까지 알차게 사용하고 잠에 들었다. OTZ



후회는 그다음 날의 몫이다. 오늘 아침엔 결연한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하루는 게임을 열지 말자. 꾹 참아보자. 나를 시험해 보자. 
하루를 참았으면, 일주일, 한 달도 참을 수 있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읭? 진짜?)
마음먹으면 언제든 게임을 끊을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나는 하루 종일 휴대폰을 움켜쥐고 살다시피 했다. 
성난 새를 날리고 반짝이는 보석들을 부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게임이었지만 도무지 헤어날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그러고 살았더니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한 레벨까지 도달했다. 시력이 나빠지고 안구가 메마르고 목이 뻣뻣하고 손목과 팔꿈치까지 아팠지만 나는 휴대폰을 놓지 못했다. 지겨워! 미치겠어! 그만하고 싶어!라고 속으로 외치면서도 막상 한 판을 깨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중략)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게임에 빠져 있다는 것은 내가 모종의 고통에 빠져 있다는 뜻이었다.(...) 얼굴로는 낄낄거리고 있지만 실은 울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커다란 괴리를 아무에게도 이해시킬 수 없었다. 사람에게 게임 중독이라는 병이 있다면, 그것은 무언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았지만 먼저 좌절과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중에서 -




지금 읽고 있는 책에 게임중독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저자는 게임에 빠진 이유를 '고통'에서 찾았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뭔가를 찾기로 했다. 

고양이에게 밥을 먹이고 다양한 식물을 돌보고, 가족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면서 극복했다고 한다. 



고통, 내게도 적용이 될까? 

내 무의식에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고통을 유발하고 있는 걸까?


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나는 그냥 재밌어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거 같다. OTZ



길티 플레저 [guilty-pleasure]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좋아하고 즐기게 되는 심리라고 한다. 



범죄는 아니지만 남에게 밝히기 부끄러운 취향, 그러나 내겐 적잖은 기쁨을 주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게임을 한다는 건, 시간낭비이고 비효율적이고 백해무익하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시간 버리고, 눈 피곤하고 손목도 뻐근하다. 거북목 증후군까지 이로울게 1도 없는 유해한 행동일 테다. 

그 시간에 생산적인걸 한다면, 기회비용을 따지면 당장 멈춰야 할 습관이다. 


이런 마음가짐이어서인지 게임을 하고 나면 후회와 자책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와 행동은 따로 논다.



내게 게임은 '길티 플레저' 다. (게임 커밍아웃이 되어버렸네)

킬링타임용으로 (실제는 없는 시간을 내기도...) 시작했다가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갈수록 눈이 나빠지는 원인으로 게임이 단단히 한몫을 차지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책과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으로, 하루종일 모니터로 일하는 근무 환경을 탓한다.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도 살짝 얹는다.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 행동이지만 여전히 내게 즐거움을 준다. 아직까지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으니 이 정도의 보상은 괜찮다고 봐!'

'도박으로 큰돈을 잃는 것도 아니잖아!'

보상심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루의 게임 금지 실천은, 성공함)


당신에게도 길티 플레저가 있나요?


당신의 길티 플레저는 무엇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삽질에서 얻는 깨달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