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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독일기 Sep 24. 2022

헌트, 이 영화 참 잘생겼다

영화 <헌트> 감상평


(영화 내용이 담긴 감상평입니다)



오마주 X 오마주 = 성공할 수밖에 없는 서사




왼쪽 <신세계> 2013, 오른쪽 <더 킹> 2017



  상영관에서 보는 내내 뇌리에 찐하게 박힌 한국영화와 두 캐릭터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이정재 배우가 나온 영화 '신세계'(2013), 다른 하나는 정우성 주연의 영화 '더 킹'(2017)입니다. 영화 신세계에서 경찰과 조폭 3인자라는 이중첩자로 활동하면서 경찰보다 조폭 이인자 정청(황정민)에게 정을 느끼며 자신의 소속과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자성(이정재 역)이 떠오릅니다. 영화 더킹에서 내가 곧 역사고 질서라면서 자신만만한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 역)을 맡아 철저한 보복이 정치 메커니즘의 본질이라고 떠들어대죠. 각각 성공한 상업영화 캐릭터로 헌트에서는 주연배우가 이전에 서로가 맡았던 두 배역을 한 스크린에 담아내어 이 영화는 한국영화 오마주의 연장선상으로 느껴졌습니다.




목표는 같았지만 목적이 달랐던 그들




총탄과 폭탄이 빗발치는 스크린을 보다 더 몰입해서 본 점은 캐릭터 그 자체였는데요. 북한 스파이지만 평화 통일을 원했던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 (이정재 역)와 한국 엘리트이면서 대통령을 암살하고 나라를 바꾸려 했던 국내팀 '김정도'(정우성 역).  서사가 이어지면서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두 주인공 간의 신념 싸움이 총과 주먹싸움보다 더 치열해 어떻게 마무리될지 흥미진진했습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마주할 수 없는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끝내는 사찰까지 하게 되는 뇌지컬 싸움이 짜릿합니다. 마치 영화 탑건에서 매버릭과 루스터가 두 눈에 광기를 휘둘러 코브라 기동을 하는 마냥 폭풍 같은 전개에 관객들을 영화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많은 배우들이 카메오로 등장해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해요. 스크린 장면을 넘어가면서 잘생긴 사람 옆에 잘생긴 사람 옆에 또 잘생긴 사람. CG가 아닌 사람으로 이렇게 감동을 느낀 영화는 오래간만입니다. 한국영화의 미래는 밝습니다.





비 신념과 신념의 대결





 깜짝 놀란 장면이 두 군데 있었습니다. 하나는 박평호의 집을 방문한 '방주경'(전혜진 역)이 자신의 상사 박평호가 북한 스파이로 밝혀지는 씬이었습니다. 여기서 박평호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믿고 따랐던 방주경을 스스럼없이 죽였습니다.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죽여놓고선 자신이 아끼는 참모를 죽이니 운다뇨.. 참 모순된 캐릭터라고 느꼈습니다. 의도된 연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벤담의 공리주의를 표방하는 캐릭터인 박평호에게 즉,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게 당연하게 여기는 이에게 눈물 따윈 사치라고 생각했거든요. 결말을 보고 나서 다시 이 신을 떠올려보니 박평호가 짜낸 눈물은 악마가 흘린 눈물이 아닐까 고민하게 합니다. 자신의 정체가 밝혀진 후 급하게 북측으로 전화하는 씬 이후 바로 다른 컷으로 넘어가 박평호가 구석에 몰릴 때 어떤 말을 할지를 보여주지 않았어요.  박평호는 대통령 암살 직전까지  갈등하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마치 신념이 없는 기회주의자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한편 이상주의자 같았습니다. 대통령 암살을 막고 지키는 북한 스파이라니 참 신선하면서도 왜 저럴까 답답했습니다. 끝끝내 모호한 캐릭터로 남을 수 있는 건 북한에 더 이상 잃을 가족이 없어서였을까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이상주의자이자 순진한 캐릭터로 보는 박평호



 다른 한 장면은 김정도가 대통령에게 총을 겨누면서 죄를 고하라고 심판하는 장면입니다. 당신은 죽어 마땅하다면서 구구절절 읊어대는 장면은 보는 내내 고구마 한가득이었습니다. 얼른 끝장내라고! 바보야! 이런 답답함은 관객들로 하여금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유열을 만끽하게 하려고 일부러 연출해 넣었겠죠? 이정재 감독님? 조용한 암살을 계속 준비해왔던 김정도는 대통령 암살이라는 목적을 앞두고서 몹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쌓인 울분에서 자신이 518 운동 진압 작전에 투입되어 잔혹한 현장을 목도한 장교로서 기억과 신념들은 다져왔습니다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비극은 더욱더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국가의 충신으로 살아왔던 그가 마지막에서는 신념을 이루지 못한 것은 어디까지나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엄연히 아웅산 테러를 모티브를 했다고 하니 실패한 작전에서도 김정도는 신념을 다한 군인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였습니다.




아쉬운 시나리오 완성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김정도를 대변하는 '군번줄'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그가 안기부 소속이면서도 그는 그가 군인임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와 잔혹한 현장에 투입되어서 독재의 무서움을 기억하겠다는 신념을 뚜렷하게 상징합니다. 그는 신념을 굳건히 지켜냈지만 쿠데타에 실패하면서 끝내는 그 의지를 군번줄에 담아 부인과 자식에게 남겼습니다. 이와 반대편에 있는 박병호를 상징하는 남김은 무엇일까요? 영화 내에서 뚜렷한 물건으로 찾지 못한 저는 어떠한 매개를 굳이 찾자면 고윤정(조유정 역)이라고 봅니다. 신념을 지닌 단단한 군번줄과 대비되는 사람을 남기고자 했던 박평호는 계속해서 고윤정을 지켜주고 살려줍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오히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라고 도움도 주죠. 굳이 저렇게까지 한다고? 의구심이 계속 들었죠. 단순히 옛 동료의 딸이라서라고 말하기에는 더 묘사되지 않아 둘의 관계는 오묘했습니다.  



김정도가 남긴 군번줄, 박평호가 남긴 고윤정



 어쩌면 김정도가 군번줄을 계속 몸에 두르듯 박평호는 고윤정을 계속 지킴으로서 신념을 버리는 동안 무언가를 지키려는 이상주의자적인 면모를 추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고윤정이 박평호에게 총을 겨눌 때 박평호는 놀란 표정을 짓는 게 살짝 아쉬웠습니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자신의 목적을 가족에게 온전히 남긴 군번줄과 달리 이 영화에 최후 승자인 박평호가 그동안 지켜온 고윤정이라는 인물에게 오히려 죽음을 맞이 합니다. 박평호의 의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일방적인 애정만 받은 고윤정이란 캐릭터에게 총구를 겨냥당하면서 박평호와 김정도의 팽팽했던 동전의 양면 같은 경쟁구도라는 밸런스가 막판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시나리오상 많은 접점을 그린 박평호와 고윤정과의 매듭이 필시 있어야 했지만 그가 살리려 했던 의지 그 자체인 고윤정에게 죽어간다는 점에서 그동안 스크린 타임을 함께 해온 관객으로서 약간 허탈감이 들었어요. 같이 등장한 북한 공작원들은 그 전투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나? 전개가 매끄럽지 않았구요. 영화적 허용이라고 치자구요. 차라리 박평호도 김정도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죽음으로 엔딩을 맞이하고 고윤정을 김정도와 박병호 역할을 동시에 맡는 이중스파이 삶을 살게 하는 제2 박평호 캐릭터로 더 꾸며 봤으면 어땠을까요? 시나리오상 스크린 타임이 모자라서 표현 못한 듯하여 살짝 아쉬워 그려봤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 비주얼 맛집이네!



 아시겠지만 배우 이정재 씨가 직접 감독을 맡은 영화답게 배우들의 인물 특히 얼굴이 화면을 자주 차지합니다. 영화감독이 배우인 만큼 배우 자체에 집중하는 장면들이 많아 그만큼 배우분들도 외모 관리를 신경썼다고 해요. 보는 내내 즐거웠던 건 유명한 배우분들이 잠시나마 많이 나와서 재관람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황정민, 이성민, 유재명, 박성웅, 조우진, 김남길, 주지훈 등등 수많은 연기 쫌 한다는 분들이 단역으로 나와 어디 배역을 맡았나 찾아내느라 눈길을 딴 곳에 주질 못했어요. 배우가 살린 영화면서도 동시에 연출도 굉장히 다양하게 나왔습니다. 마치 FPS 게임을 보는듯하게 시점이 바뀌면서 몰입감을 한층 높여서 영화평론가 조동진 씨가 '뼈로 만든 영화'라고 할 정도 밀도 있는 장면들로 조금은 여유롭게 본다는 태도보다는 그저 즐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최근 넷플릭스나 기타 OTT 자체 콘텐츠가 추구하는 연출처럼 트렌디하게 배역을 확실히 살리는 연출, 예를 들자면 김정도가 심판하는 듯한 장면과 김정도와 박평호가 계단에서 격투신을 펼치고 서로를 노려보는 장면, 느슨하지 않지만 군더더기 없는 씬 전환 같은 게 참 좋았어요.


잘생긴 사람 옆에 잘생긴 사람 옆에 잘생긴 사람


 어떻게 보면 다양한 장르를 건드린 영화입니다. 액션, 정치, 전쟁, 역사 같이 굵직한 서사들을 스크린 하나로 풀기가 여간 쉬운 시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결국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되어야 하는 영화라 이에 따르는 각종 비난과 비판은 감수해야 했지만 감독은 한국에서 흔히 보기 힘든 액션& 비현실적인 얼굴 비주얼 영화에 초점을 두고 잘 연출해서 논쟁 없이 즐기는 영화로 승화시켰다고 봅니다. 하지만 개인사찰이나 남북한의 관계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슈거리입니다. 영화 내내 사찰을 명령하면서 정작 자신을 사찰하니 대노하는 장면에서 개인정보는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유튜브 알고리즘이 연관 동영상을 띄워줄 때마다 조용한 사찰이 지금 일어나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샘솟네요. 하여튼 헌트 이 영화, 재밌게 잘 봤습니다.  후속작은 없다고 이정재 배우이자 감독님이 철저히 선을 그었는데 이런 영화라면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습니다.



한줄평 : 잘생기면 얼마나 짜릿할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전개에 스크린으로 대리 만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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