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을 만드는 토요일

우울함과 외로움 마주하기 그리고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나기.

by Feisty Fox

일요일 오후 11시


몇 시간째 거실의 티비에서 틀어져있던 유튜브를 끄고 조용히 드디어 글을 쓴다.

지금은 가족들 모두 다 잠자리에 들었고 타각타각. 초등 아들의 마인크래프트 게임 용도 이외에는

거의 사용할 일 없는 맥북의 자판소리와, 휘이잉- 하며 울리는 히터 소리 외에 내가 있는 이 공간은 아주 고요하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순간 이었는지 모른다.


주말이 또 이렇게 지나갔다.

지난 주 짧은 여행에서 돌아와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꼈다.

언제부터 인가 나와 계속 함께 있었던 하루종일 쳐져있고, 번아웃된 기분.

생각하는데로 행동이 나오지 않는것. 아니, 이제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자각조차 하지 않는것.

잔잔한 우울함을 제대로 겪고 있었던 한 주를 보냈다.

사실 저번 주 뿐만 아니라 아마 이렇게 된지는 꽤 오래되었던 것 같다.


여러 날 재택근무를 하면서 미팅이 없는 시간은 계속 쓸데없는 인터넷을 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만다. 기어이 나의 생각을 망가뜨리고 하루를 망치고 말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처럼 계속 스크롤을 내리고 의미없는 단어를 클릭하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릴 링크의 글을 읽고 또 읽고.

그러다가는 소셜 미디어에 들어가 쓰레기 같은 포스팅을 클릭하고, 이제는 연락도 하지 않는 사람의 소식을 보고 또 보고.

정크 푸드를 먹는것과 비슷하게 정크 업데이트를 계속 머리속에 자동으로 주입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재택근무 3년차, 하지만 코비드 이후로 계속 일주일에 반 이상은 거의 재택근무를 하는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 물론 근무시간에는 거의 매일 동료들과 Teams로 이야기를 하지만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거의 없고, 어쩌다 한번씩 지인들을 만나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외롭다.


외로운 마음은 이제 늘 밑바닥에 잔잔히, 두껍게 깔려있다.

외로움이 굳게 깔린 바닥 위에,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이벤트, 얕고 넓은 인간 관계등이 물처럼 흘러간다.

반짝이는 날들은 금방 또 썰물처럼 사라져 외로운 감정을 수면위로 드러내 버린다.

외로움을 인정하기가 두렵기 때문일까. 나의 무의식은 나는 괜찮다고 생 난리를 치며 더 세상에 연결되려 했던것 같고, 그렇게 아주 오래전 에서부터 조금씩 천천히 인터넷 중독의 스위치가 켜졌다.

지난주의 스크린타임은 하루 평균 6시간이 넘었다.

앱을 사용해서 핸드폰으로 글을 쓴 것도 있었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핸드폰으로 만들었다는 핑계도 있지만

핸드폰을 손에 오래 쥐고 있으면 그게 반드시 트리거가 되서 내가 필요하지 않은 인터넷 사용을 시작하게 된다.


"나 확실히 알았어. 인터넷 중독인것 같아"

"출근해. 나가서 사람을 만나"


나의 행동을 드디어 자각하고 어디선가 보았던 그림을 생각하려고 한다. 이것도 인터넷으로 알게 된게 함정이지만...

"마음이 너무 복잡할때는 방청소를 하세요

일이 많아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을때는 바깥에 나가서 산책하세요

인터넷/소셜미디어 중독일때는 사람을 만나세요"


도파민에 절여진것 같은 기분이다가, 어제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 손을 움직이고 싶었다.

냉장고와 냉동실을 털어 국과 반찬을 만들었다.

열심히 야채를 씻고, 썰고, 양념을 만들고.

나름 좋은 올리브 오일을 쓰고, 한국에서 가져온 깨를 넣고, 유기농 야채를 사용했다.

도마에 따그닥 따그닥 하는 칼질소리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이렇게 치료효과가 있을줄은 몰랐다.


우울할 때 반찬을 만드는 토요일에 대해 배웠고

사람을 만나야 살 수있는 나의 내면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까? 오늘이 삼일째다.


나의 싸움이 아니다. 내가 정말 달라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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