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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Y Jan 03. 2019

워킹맘의  Guilty Pleasure Day

aka, 연차를 보내는 자세

워킹맘의 Guilty Pleasure Day

오늘은 하루종일 Guilty Pleasure의 날이다. 


아침부터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아기와 대충 놀아주고는 밥을 먹였다, 

고모님은 나보다 조금 더 늦게 일어나셔서 밥을 먹인 아기 그릇을 정리해 주시고 

나는 얼굴과 손이 귤 범벅인 아기를 씻기고, 

그렇게 우리는 숙련된 공장의 직원처럼 이른 아침의 일과를 분담 했다. 


우리 회사의 휴가는 수요일 부터 시작되었지만

황금같은 휴가의 첫날인 수요일을 감기로 날려보내고 

어제, 목요일은 친구와 처음으로 둘 다 동반자녀 없이 만나서 폭풍 수다로 보내고 

오늘, 금요일은 (일하는 것 마냥) 외출할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자유시간이다. 

앞으로 이런시간이 또 언제 올런지 나는 모른다. 


아기가 탄생한 후, 나의 모든 시간에는 재화와 노력이 든다. 

나의 재화 혹은 누군가의 노력. 

회사에 출근하던 병원에 가던 은행에 가던, 아기 없이 나 홀로 외출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누군가의 인력을 반드시 필요로 하며 (남편 or 가족)

혹은 재화를 필요로 한다 (베이비시터 비용: 시간당 $13~20 까지, 시터의 경력과 가사일 도움 정도에 따라 상이) 


나는 일하는 엄마의 인생을 선택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노력과 나의 재화를 시간과 바꾸게 되었다. 


우리 아기는 1년동안 낮 시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에게 사랑을 받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때는 베이비시터 들에게 돌봄을 받았다.


아기를 봐주시는 M 고모님은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나뵙게 되었는데

우리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매사추세츠 북쪽 시골에 살고 계신 70대 초반의 할머니 이시다.

고모님은 나의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러 오셨고, 우리집에는 2월, 6월, 12월 이렇게 세 달을 함께 살면서,  

평일에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 정도까지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고 우리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고모님도 육아 퇴근) 아기를 봐주시고 저녁 밥도 챙겨주신다. 


한국에서는 보통 집안일을 도와주시거나 시터일을 해주시는 분들께 ‘이모님’ 이라고 호칭하는데 

부계의 호칭으로 불리우는 것이 더 편하셨는지, 처음부터 M 고모님이라고 소개를 받았다. 

원래 다른집에서 만나 뵈었던 ‘이모님’과는 다른, 고모님이 가진 카리스마와 포스는 남달랐다. 

아기 돌보는데 관해서는 프로페셔널이셔서 고모님께 많은 부분에 대해 조언을 듣고 의지하고 있지만,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고모님 눈치를 보면서 살금살금 들어오는데 때로는 무언의 다그침의 눈빛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래도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다음으로 우리아기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시고 아기를 많이 사랑해주신 분이다. 

햄버거나 피자로 저녁을 때우고 간식으로 과자를 먹는 불량 부부의 식단을 책임져 주시고

최불암 아저씨가 나오는 한국인의 밥상 부럽지 않은 미국에서는 먹기 힘든 추억의 음식 들을 저녁식탁에 올려주시는 정 많으신 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내가 집에 있어도 되는 날이지만, 

올해의 마지막인 ‘나홀로 밖에’ 휴가를 보내고 싶었기에 고모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엄마에게 땡깡 부리고 싶은 아기에게도 미안하지만, 


고모님은 다음주 일주일의 휴가를 가시고 

아기는 다음주 엄마를 일주일 독점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또 한번의 guilty pleasure를 즐겼다. 


느즈막히 나와서 운동도 가고, 아기랑 함께는 절대 못가는 맛집에 가서 혼자 밥도 먹고, 

아직 유명하지 않은 작은 프랑스 베이커리에 와서 어려운 이름의 빵과 케익도 사 먹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기에게 돌아가야 할 시간을 약 십 여분 남겨두고 두 번째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다. 


12월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한 날인데 하루종일 보슬비가 내린다. 

커피는 식었지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설레인다. 

나머지 5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남겨 둬야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도시의 갈색 벽돌로 만들어진 지붕이 멋진 건축물들 사이에서, 

따뜻한 공간에 앉아서 달달하게 구워진 빵 냄새를 맡으며, 

비오는 도시를 바라보며 카페 구석에서 글을 썼던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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