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의 어느 날, 티비 채널을 돌리다 만난 삶의 순간
영국의 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청소년 시기에 봤던 영국 방송국 channel 4의 skins나 misfit, 확실히 미국의 그것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대중 문화와 진보적인 성향의 예술들. 그것들을 보는 것은 내 안에서 삶의 욕망과 체취가 담긴 일상으로서의 하위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확실히 한국의 대중 문화에서 접했던 것과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어디서 오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일상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대중 문화의 아이콘을 통해 자신이 속한 노동 계층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솔직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확실히 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완벽한 집, 완벽한 잔디, 완벽한 사람들 그런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한국 드라마를 보면 작가나 연출들이 과하게 그걸 지향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꼭 누구든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인간을 두고 그렇지 않은 인간과의 위계를 만들려는 인상이 강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드라마도 있다. 그 중에서 사랑해 마지 않는 인정욱 작가의 <아일랜드>, <네멋대로 해라> 같은 작품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국 드라마의 특징은 삶이 가지는 날 것의 감정을, 드러내려는 주제를 부끄럼 없이 보여준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면 그것에 천착해서 밑바닥 까지 끌고 가서 끝장을 보는 느낌이다. channel 4의 드라마 'Shameless'가 그랬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이 최고라고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서로를 사랑하고 감정에 솔직한 삶을 산다. 그리고 난 그것이 참 위안이 된다. 그게 대중문화 더 나아가 예술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요즘 같은 시대엔 더 더욱 그렇다. 위로 말이다.
원래는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 모 스포츠 채널에서 자주 보여주는 손흥민 선수의 하이라이트 골 명장면을 채널 돌리며 가끔 봤을 뿐이다. 이번에도 경기의 배경을 잘 모르고 저녁 식사를 하면 우연하게 본 경기였다. 프리미어팀 토트넘과 이름도 잘 모르는 8부 리그 마린의 대결이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이런 것일거다. 이런 류의 경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해설가는 선수들이 저마다 본업이 있다고 했다. 누구는 체육 선생님, 누구는 마사지사. 각자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한다는게 멋지고 그들의 도전을 호명해주는 그 순간이 그 자체로 빛나고 아름다웠다. 뭉클했다. 결과는 0:5 완패였다. 하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결코 패배와는 다른 것이었다. 경기 수익금만으로도 장차 최소 10년간 구단 운영을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고 정성을 다하는 그 애티튜드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있다. 동네에서 열린 대경기에 한껏 신난 동네 주민 관객의 모습들,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하는 프로미어팀과 8부 리그 마린 그들의 모습이 내가 영국의 드라마들에서 느낀 사랑했던 정서와 맞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