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천장의 긴 형광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였지. 눈앞이 흐릿하고 정신이 아득했다. 잠시만 지나갈게요, 환자분 잠시 누워 계세요.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이곳이 건강검진센터 회복실임을 알았다. 수면내시경을 하기 위해 호스를 물고 누운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식도에서 뻐근한 기분이 들면서 신음을 내뱉다 그대로 잠이 들었었다. 어느새 검사는 끝나 있었다.
주변에서는 심전도 기계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는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손잡이가 세워져 있었다. 자세를 바꾸기 위해 몸을 뒤척이자 쇠 손잡이의 차가운 감촉이 맨 살에 닿았다. 소름이 끼쳤다. 갑자기 맺혀있었는지도 몰랐던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졌다. 그리고 금세 다시 차 올랐다. 울음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얼굴이 온통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끅끅 거리며 어깨가 떨렸다. 울고 있는 나를 향해 멀리서 간호사가 달려왔다.
“환자분 어디 아프세요? 괜찮으세요? 불편한 곳 있으세요?”
당황한 간호사는 나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나는 울음의 이유를 알지 못해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다정한 손길에도 어깨는 진정하지 못해 울음소리에 맞춰 계속 들썩였다.
“아픈 곳은 없어요. 근데 저도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간호사는 충분히 진정한 뒤 일어나라며 휴지를 쥐어 주었다. 얼마쯤의 시간이 지났다. 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건네받은 휴지로 얼굴을 대충 정리하니 떨리던 어깨가 잦아들었다. 서둘러 일어나 검진센터를 빠져나왔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나는 왜 울었을까. 마취 후유증 같은 건가. 고개를 드니 맡은 편에 서 있던 강아지가 시선에 들어왔다. 주둥이가 길고 흰 털을 가진 아이였다.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회복실의 희미한 의식 속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방울이는 급성 췌장염과 신장 기능 저하로 죽기 전 많이 아팠었다. 열일곱 살의 노견(老犬)이라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혈변을 눴다. 수액이라도 맞추기 위해 입원을 결정했다. 동물 병원의 수액실은 마치 투명한 유리 사물함 같았다. 그곳에는 다른 아픈 동물들도 많이 있었다. 심전도 기계 소리와 낑낑거리는 소리들이 섞여 들렸다. 나는 품에 있던 방울이를 아래에서 세 번째 칸에 내려놓았다. 방울이를 안고 있었던 팔에 차가운 유리문이 닿았다. 소름이 끼쳤다. 이내 사람의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앞발에 긴 바늘이 꽂혔다. 방울이는 푸석해진 흰 털 아래로 갈비뼈가 드러난 마른 몸을 떨며 나를 바라봤다.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곳에 작은 내 동생을 놓아두고 돌아서야 했다. 까만 두 눈은 멀어지는 나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기력이 남아 있던 마지막 눈빛이었다. 검진센터의 회복실에서 마취 기운에 정신을 못 차리던 나의 무의식 속에 바로 그 눈망울이 있었다.
네가 병원에 혼자 있던 시간은 어땠을까.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을까. 낯선 곳에 너를 버리고 갔다고 생각했을까. 많이 아팠을까. 속이 끓고 입이 써서 고통스러웠을까.
우리는 결국 너를 보내주었다. 비명을 내지르는 너를 보고, 손톱만 한 배 조각도 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는 너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우리는 너를 보내주었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내린 결정은 너의 고통을 덜어주었을까. 혹시 네가 원치 않던 결정이었다면 어쩌지. 몇 번의 산책을 더 함께 하고 싶었다면. 며칠이라도 익숙한 가족의 냄새에 둘러싸여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고 싶었다면. 익숙한 마약 방석에서 잠들듯이 자연히 가고 싶었다면. 마지막으로 듣는 소리가 깊게 잠든 가족들의 숨소리였다면. 그렇게 가족의 곁에서 더 살고 싶었으면 어쩌지. 안락사라는 결정이 고통을 지켜볼 수 없었던 우리를 스스로를 위해 내린 결정은 아녔는지 나는 자꾸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되물었다. 다시 떠오른 기억을 붙잡고 마음이 끝없이 무의식 속에서 가라앉았다. 그 기억의 이름은 죄책감이었다.
신호는 금방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맞은편 강아지가 우뚝 서 있는 내 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명랑하고 어린 걸음걸이였다. 신호는 다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바로 옆 버스정류장에 걸터앉았다. 서늘한 늦가을의 바람이 코 끝을 스쳐갔다. 방울이가 떠난 지 2개월이 지났다.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고 있었다. 아까 다 쏟았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다시 두 눈에 차 올랐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하얀 털 뭉치, 내 동생, 우리 방울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 이 이야기는 2019년의 일기를 재편집하여 작성했습니다. ‘한국 반려동물 장례 인식조사’에 따르면,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 응답자 267명이 복합적인 슬픔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2년(732.2일)이었다고 합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저에게는 최근 일처럼 느껴집니다. 이 이야기가 저처럼 작은 가족을 잃은 분들의 깊은 상실감에 잠시라도 함께 울어주는 동반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