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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혜 Jan 05. 2023

미신의 집

“진짜 이러다가 시험 떨어지면 어쩌지?”

“야, 빨리 세 번 퉤퉤퉤 해.“


  미래를 초치는 말, 건강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나는 당장 그 사람에게 달려가 ‘퉤퉤퉤’를 요구한다. 이런 내 요구에 익숙한 사람들은 못 이기는 척 공중에 세 번 침을 뱉는 시늉을 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게 뭐냐고 묻는다. 그게 뭐냐고? 그러니까 그건 그냥 샤머니즘이다. 예전에 구비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을 때, 이 ‘퉤퉤퉤’가 부산의 액막이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배웠다. 부산 기장 근처에는 까마귀가 많은데, 이 새는 잘못한 것도 없지만 일반적으로 불길함을 상징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면 바닥에 침을 세 번 뱉고, 발로 땅을 세 번 굴렸다고 한다. 불길한 울음이 가져오는 기운을 간단한 제스처로 내쫓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베개를 세우지 마라,  문지방을 밟지 마라, 밤에 휘파람을 불지 마라, 다리 떨면 복 나간다 같은 일반적인 생활 속 미신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엄마 경화가 믿는 비과학적 믿음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 어렸을 때는 귀신 나온다는 말이 무서워서 따랐고, 조금 자란 뒤에는 나의 믿음에 따라 취사 선택했다. 언제나 작은 미신들과 함께였기에 몇 개는 생활 습관이 되고, 일부는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경화는 어쩔 때는 미신을 조금 각색하고 변형했다. 유치원에서 검은 고양이가 불길하다는 얘기를 듣고 와서 이야기해주었더니, 경화는 불길한 게 아니라 더 귀여워서 복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숫자 4가 무서워서 4학년이 되기 싫다고 했을 때는 사랑해의 ‘사’와 같은 발음이라 첫사랑이 찾아온다고 말해주었다. 때로는 경화는 미신을 잔소리 대신 활용했다. 예를 들면 ‘설거지 쌓아두면 복 나간다’ 같은 것. 하교 후에 도착하면 빈 집에는 미리 차려둔 식탁이 있었다. 동생과 함께 음식을 해치우고 나면 따뜻한 마룻바닥에 누워 TV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남은 밥풀과 고춧가루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그릇들을 그대로 두면 내일의 행운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내일 짝지 뽑는 날에 짝사랑하는 아이의 옆에 앉고 싶다, 레코드샵에 응모한 콘서트 이벤트에 당첨되고 싶다 같은 작은 욕망들이 함께 떠올랐다. 혹시나 다가올 기쁜 일에 먹다 남은 찌꺼기를 묻히듯 초를 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몸을 일으켜 싱크대로 향했다. 지금은 그 미신이 집안일을 함께 거들게 하려는 엄마의 방편이었다는 것을 안다.  


  우리 가족만 가지고 있는 미신도 있다. 아침잠이 많은 경화는 4월 1일만은 예외로 일찍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선 ‘전화 왔다, 지혜야’ 하면서 격양된 목소리로 나를 흔들어 깨운다. 비몽사몽인 나는 건네받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여보세요 하고 웅얼거인다. 그리고 몇 초간 응답이 없는 상대에 의아해하다가 이내 걸려오지도 않은 전화라는 걸 깨닫는다. 아, 만우절. 어안이 벙벙한 딸의 표정을 보며 파안대소하는 경화를 보며 나는 어이가 없었다가 또 덩달아 같이 웃는다. 유선전화기가 무선전화기가 되고, 휴대폰이 스마트폰이 될 때까지 여전히 이 거짓말에 속았다. 휴대폰이 생기자 경화의 거짓말은 보다 치밀해졌다.벨소리를 미리 틀거나, 동생과 공조해서 내 휴대폰에 실제로 유선전화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중요한 카톡 온 것 같은데 하면서 새로운 방법으로 깨우기도 했다.


  경화는 가벼운 만우절 장난에 속으면 한 해의 액땜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경화의 거짓말에 속고 나면 다른 거짓들에 좀 의연해질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이 만우절 이벤트는 우리의 미신이 되었다. 사회의 거짓말을 헤쳐나가기 위한 작은 액땜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기꺼이 그 장난에 속아 넘어갔다. 독립한 이후,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되며 우리의 만우절 이벤트는 자연히 없어졌다. 어쩔 때는 4월 1일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길거리의 만우절 광고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날도 있었다. 불현듯 깨닫고 나면 경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집 앞이야, 하고 너스레를 떨면 경화는 잠시 조용했다가 오늘 만우절인 거 다 알지롱, 하고 말했다. 목소리로만 치는 장난은 조금 싱거웠다. 어쩌면 엄마가 진짜 문 앞을 서성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화와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아쉽게도 둘 사이의 만우절은 조금 쓸쓸해지고 말았다.


  힘을 내야 하는 날 찾게 되는 미신도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중요한 날이 되면 현관문에 서서 목소리를 기다렸다. 엄마, 하고 부르면 아침잠이 많은 경화는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 잠겨있는 목소리로 덤덤히 말했다. “차분히 해라.” 나는 그 목소리를 부적처럼 가슴에 쥐고 밖으로 나섰다. 10대때는 그 걸음의 목적지가 대부분 시험기간의 학교였다. 빈 OMR카드를 바라보며 차가워진 손끝을 쥐었다 펴며 부적을 꺼내보곤 했다. 긴장하지 말자, 차분하게. 잘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은 그 목소리를 되뇌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시험을 잘 치면 부적 덕분이라고 생각했고, 시험을 못 치면 더 못 칠 뻔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부적을 갖고 있으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결과를 수긍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시험장, 면접장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달라지는 목적지는 언제나 낯설었지만 경화의 ’차분하게‘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실패하고 일을 망쳤을때면 어김없이 지쳤지만 그 목소리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힘내, 잘해, 버텨가 아니었기에 더 힘이 났다. 여기서 실패해도 같은 자리에서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이 그 목소리 부적에 부록으로 붙어 있었다.      


  나는 요즘 동거인에게 우리 집의 미신을 하나씩 알려주고 있다. ‘설거지를 쌓아두면 복이 나간다’ 는 미신은 서로에게 집안일을 미룰 때 쓴다. 로또를 샀거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는, 복이 좀 더 필요한 사람이 먼저 일어나서 고무장갑을 낀다. 달아나려는 복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귀찮은 설거지에 그럴듯한 명분이 생긴다. 물론 ‘어유, 더 나갈 복도 없다’ 하면서 넷플릭스를 켤 때도 종종 있다. 작년 만우절에는 ‘전화받아 거짓말’을 해보았다. 눈치가 빠른 그는 빈 화면부터 알아채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좀 더 촘촘한 계획을 세워야 속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삶에 녹아든 미신도 있다. 작은 시험에도 긴장하는 내가 현관문 앞에서 ‘빨리!’ 하고 외치면 그는 후딱 걸어와 ‘차분하게 하고 와’라고 말한다. 경화의 낮고 덤덤한 목소리와 다르게 좀 더 다정하다. 무교이면서 합리성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하는 그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기꺼이 미신을 함께 믿어준다. 나는 새로운 목소리로 만들어진 부적을 안고 밖으로 나선다. 또 다른 동거가족이 생긴다면 나는 똑같이 이 미신들을 알려줄 것이다. 몇 개는 생활 습관이 되고, 일부는 새롭게 만들어지겠지. 시간이 흘러 가족이 나누어지고 확대되면서 또 조금씩 변형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가족의 역사를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전승될 미신을 사랑한다. 경화가 나를 아끼고, 동거인이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내가 그들을 몹시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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