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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혜 Jul 09. 2019

여름을 싫어하는 너에게

  우리의 여행에 대해 생각해. 다른 사람들과 다녀온 여행은 그 나라의 풍경이나 분위기, 음식 같은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데, 어쩐지 너랑 다녀온 여행들은 다 '그곳에서의 너'만 또렷하게 떠올라. 그 여행 좋았지- 하고 물어보면 기억력이 안 좋고 표현에 서툰 너는 '좋았지' 아니면 '더웠지' 정도로 대답하겠지만.


  추운 계절 떠났던 여름나라에서는 종일 땀과 물에 젖어있던 네가 떠올라. 너는 여름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잖아. 에어컨도 없는 가게에서 뜨거운 쌀국수 한 그릇을 다 비우는 너를 보며 놀란 내가 '안 더워?' 하고 물었을 때 너는 '더운데, 맛은 있네' 하며 덤덤한 척 말했지. 그러곤 슬쩍 땀으로 흥건한 이마를 닦았어. 빨갛게 익은 어깨와 콧잔등에도 땀이 잔뜩 맺혀 있었어. 나는 뜨거운 밀크티를 시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먹자고 억지를 부렸어. 왠지 너를 더 덥고, 괴롭게 만들고 싶은 악동 같은 마음이 들더라.


  우리가 묵었던 호텔 옆에는  프라이빗 비치가 있었잖아. 발이  데일 듯한 자갈밭과 흰모래사장을 한참 걸으면 도착하는  해변은 정말 우리밖에 없었어. 너랑 나는 언제나 사람을 모으는 재주가 있어서 한적한 공원이나 조용한 식당도 우리가 머물면 어느새 손님이 북적이곤 했는데 말이야. 이상하게도 고요했던  해변에서 우리는 실컷 바다 수영을 했어. 사실 수영이라기보단 튜브에 몸을 싣고 둥둥 떠다녔지 . 헤엄을  치지만 키가 작은 나는 튜브에 몸을 실었고, 헤엄을  치지만 키가  너는 튜브를 바다 한가운데로 데려갔어. 조용하고 해가 쏟아지게 눈이 부셔서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보지 못할  같았어. 파도에 몸이 표류하는 기분이 좋았어. 어릴  수영장에 다녀오면 잠들기  침대맡에서 물에 떠다니는 기분을 똑같이 느끼곤 했거든. 그렇게 파도 위를 유영하다가 깊은 잠에 빠지곤 했었는데. 나는  기분을 너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튜브를 건넸어. 물에서 몸을   가누는 너는 여러  튜브에 올라가려다 넘어지고, 바닷물을 잔뜩 마시고 켁켁거렸지.  다섯 번쯤 넘어지고 나서는 겨우 올라갔는데, 나는  악동 같은 마음이 들어 튜브를 기울여버렸어. 너는  바닷물에 가차 없이 고꾸러졌어.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바다의 표면과, 젖은 까만 머리칼과 등에 맺힌 물방울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어. 물을 하도 먹어  끝이 빨개진 너의 얼굴에도 빛을 머금은 물기가 가득했어. 문득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너를  혼자만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쭐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어. 돌아선  등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다듬었어. 니가 돌아보기를 바라면서. 눈부시게 빛을 내며 부서질  같은 스물여덟의 너를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어.

  너는 정말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이잖아. 나는 무더위에 지쳐 발갛게 익은, 조금 괴로운 듯한 네가 너무 좋아. 올여름에는 너를 어떻게 놀려줄까? 얼른 7월과 8월이 왔으면 좋겠어. 뜨거운 여름나라에 또 가자,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가운 맥주도 많이 마시자. 잡은 손에 땀이 맺히면 슬며시 놓고, 서로의 허벅지에 쓰윽 닦고는 다시 잡자. 조금 있다 만나. 안녕!


2019년 봄의 초입, W에게 J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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