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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혜 Jun 12. 2022

참새와 트럭

외근 중 잠시 여유가 생겼다. 약속을 기다리며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앉았다. 고개를 드니 작은 참새가 테라스로 이어지는 중문 근처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들어올 거야? 들어와, 우리 집은 아니지만.’ 멈칫거리던 작은 새는 이내 중문을 건너 카페로 들어왔다. 바쁜 걸음으로 테이블 다리 사이를 다니다가 구석 한 켠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웅크리고 앉아 잠시 멈췄다. 중문 밖 4차선 도로는 미세먼지가 뿌옇게 뒤덮여 있었고, 경적소리가 쉼 없이 울렸다.  


  10살이 되던 해에 부산에서 작은 도시로, 그리고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 가족의 짐은 묘하게 줄어들어 그 집 한 구석의 작은 방에 알맞게 들어갔다. 엄마는 끼니를 자주 거르고 이불 속에 웅크려 잠을 잤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주로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 거실에는 고모와 할머니가 있었다. 아빠는 자주 이유 없이 화를 냈다. 고모부랑도 싸우고 고모랑도 싸웠다. 아무도 없는 한낮이면 엄마는 가끔 표정이 없는 얼굴로 큰 가방을 꺼내놓고 서랍에 있는 옷을 꺼내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했다.


  할머니 집은 시장 아래 세 번째 골목길에 있었다. 근처에 기름집, 떡집, 쌀집 등이 있었고 이름 모를 곡물 낱알이 가끔씩 날아왔다. 마지막 골목길을 지나 길을 건너면 내가 전학 간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교회가 있었다. 고모에 등살에 못 이겨 일요일이면 그 교회에 갔다. 오전 예배가 끝나면 나는 그 골목 근처에서 맴돌다가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떤 날은 첫 번째 골목길부터 마지막 골목길까지 지그재그로 걸어 빈 운동장으로 갔다. 또 어떤 날은 남의 집 문 앞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거나 책을 읽었다.


  여느 때와 같이 골목 어귀에 앉아 있던 날이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허기가 느껴질 즈음 맞은 편 담벼락으로 작은 참새가 날아왔다. 가슴에 하얀 털을 두르고 있었다. 그 참새는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다가 고개를 부산스럽게 털었다. 그리고는 뒤뚱거리며 검은 부리로 바닥을 콕콕 찍다가 하늘을 바라봤다. 나는 조그만 날개의 바쁜 움직임을 한참 바라 보고 있었다. 그때 골목길에 큰 귤 트럭이 비집고 들어왔다.


   트럭은 자비 없이 좁은 코너를 헤집고 들어와 시야를 가득 채우고 뒤뚱뒤뚱 좁은 길을 넘어왔다. 큰 차체가 코 앞에까지 왔다. 그 때 참새가 건너편에서 내 쪽으로 날아왔다. 아주 순식간이었다. 커다란 바퀴가 작은 생명을 밟고 지나간 순간은. 생기가 넘치던 작은 새는 정말 삽시간에 눈앞에서 참혹한 모습으로 바뀌어버렸다. 작은 날개는 핏빛으로 뭉쳐져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으스러져있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두꺼운 성경 책을 끌어안았다. 떨리는 심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잠시 동안 내 마음이 머물렀던 존재의 죽음을 목도하곤 나는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이후 길에서 작은 새들을 만나면 아름다웠으나 동시에 두려웠다. 그 바퀴는 너무 컸고, 트럭의 운전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로 뉘엿뉘엿 골목의 언덕을 넘어갔다. 어떤 생이 죽음으로 건너갔는지 알지 못한 채. 그 바퀴자국이 어떤 마음을 짓찧었는지도. 웅크린 이불 속 엄마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 큰 가방을 숨겨두었는데 되려 집에 들어오지 않은 건 아빠였다. 친척들의 알 수 없는 말들 사이에 놓인 엄마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 그 골목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한동안 커다랗고 까만 원기둥에게 이유 없이 쫓기는 꿈을 꿨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짓이겨진 내 몸이 바닥에 들러붙을 것만 같았다. 그런 불안은 꽤 오랜 기간 나를 찾아왔다. 교회를 아무리 다녀도 어떤 믿음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어떤 것을 붙잡고 기도해야 할지 몰라 손톱만 물어뜯었다.


초등학교 2학년 ~ 5학년, 할머니집 방 한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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