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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Jun 27. 2016

천공의 섬, 몽 생 미셸

프랑스 바스노르망디주 신비의 섬 몽생미셸

 큰 돌 위에 성당을 지어라


  8세기 초, 아브랑슈의 주교였던 성 오베르의 꿈에 나타난 대천사 미카엘의 명령이었다. 오베르는 이 꿈을 기이하게 여겼지만 돌 위에 성당을 짓는다는 것이 보통의 일은 아니었으므로 그 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카엘은 세 번째 오베르의 꿈에 나타났고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에 빛을 비춰 두개골 위로 구멍을 냈다. 꿈에서 깨어난 오베르는 이웃 마을의 소가 작은 바위섬 위에서 발견되는 등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제야 오베르는 미카엘의 명을 받아들이고 소가 발견되었던 작은 바위섬을 깎아 토대를 만든 뒤 이탈리아 몽테가르가노(Monte Gargano)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미카엘을 위한 성당을 지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몽 생 미셸(Mont Saint Michel)이다.




  육지에서부터 만들어진 다리를 따라 버스를 타고 5분가량을 달리면 신비의 섬 몽 생 미셸 앞에 도달한다.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가운데 덩그러니 지어져 있는 수도원은 그 명성만큼이나 아름답다. 높이 솟은 수도원의 꼭대기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대천사 미카엘 상이 세워져 있는데, 오른손에는 검을, 왼 손에는 방패를 들고 발아래 악마를 상징하는 용을 밟고 선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밑으로는 성전, 감옥, 상점 등 여러 시대를 지나며 필요에 의해 지어진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몽 생 미셸은 8세기 오베르 주교가 최초로 수도원을 짓기 시작한 이래로 1000년이 지난 후에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처음 오베르 주교가 몽 생 미셸을 짓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작은 수도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 브르타뉴와 노르망디 접경 지역에 위치해 있어 백 년 전쟁 시기에는 요새로 사용되었고, 대혁명 이후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추가로 지어진 건물도 상당수에 이른다. 80미터에 달하는 바위 위로 지어진 수도원의 총높이는 157미터이다.


 



  왕의 문(Porte de Roi)이라 이름 붙여진 몽 생 미셸의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수도원 초입에는 식당과 호텔, 상점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몽 생 미셸의 오랜 역사를 해치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모여있어 상점가임에도 불구하고 멋스러웠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 편에 보이는 빨간 간판의 오믈렛 가게 라 메르 풀라르(La Mère Poulard)는 많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식당이다. 몽 생 미셸은 백 년 전쟁 당시 전쟁을 마치고 들어온 병사들이 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계란을 풀고 화덕에 구워 바로 먹을 수 있는 오믈렛이 발달했다. 라 메르 풀라르는 그중에도 130년 전통의 유명한 오믈렛 레스토랑인데,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해서 마를린 먼로, 오드리 헵번 등 수많은 셀럽들이 다녀갔다. 가격이 조금 있는 편이지만 한 번쯤 방문해도 좋다.





  몽 생 미셸에서 상점가를 지나 십 분 가량 올라가면 수도원 입구에 다다른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영화 속 성곽 안을 재연해 놓은 것만 같은 멋진 중세 시대의 모습이 드러난다. 세대의 변화를 거듭하며 계속해서 증축해 왔기 때문에 노르만, 로마네스크, 고딕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이 조화롭게 뒤섞여 있다.





  대천사 미카엘은 꿈을 통해 오베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곳에 성전을 지으면 그들이 오리라.'

그 명령 아래 지어진 몽 생 미셸은 과거부터 수많은 이들이 찾는 거룩한 순례지가 되었다. 수도원을 오르는 길 곳곳에는 순례자들의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도가 만들어져 있는데, 지금도 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온다.



라 메르베유(La Merveille)의 꼭대기



  '경이'라는 뜻의 라 메르베유(La Merveille) 성전. 그 앞은 서쪽 테라스라고 불리는 빈 터지만 사실 이 곳 역시 성전이었다. 11세기 초 화재로 성전의 절반이 불에 타 사라졌는데, 현재는 재건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삼면이 바다를 향해 트여 있다. 서쪽 테라스 앞에 서서 몽 생 미셸의 바깥을 에운 바다를 바라보면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이름 모를 외딴섬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내가 몽 생 미셸을 방문한 5월에는 성전 꼭대기에 있는 미카엘 상을 보수하는 중이었다. 낙뢰를 맞는 바람에 동상 일부가 소실된 탓이었다. 금으로 빛나는 미카엘 상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기 때문인지 아쉬움도 컸다. 하지만 마음을 바꿔봤다. 성전에 난 화재도, 미카엘 상 위로 떨어진 낙뢰도, 이 모든 것이 역사의 일부라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내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을 탓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이 아닐까?



  라 메르베유의 바닥을 잘 살펴보면 나란히 붙어있는 벽돌마다 숫자나 알파벳 같은 것들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저마다 다른 마크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돌을 공급한 이들의 닉네임 같은 것이었다. 중세시대에 돌은 아주 중요한 건축 자재였다. 이를 공급하는 이들은 자기가 자재를 나른 개수만큼 보수를 받아 갈 수 있었다. 수도원은 이 마크를 확인하고 지급해야 할 보수가 얼마인지 확인했다.

  나는 그것들을 흥미롭게 들여다보다가 돌 위에 십자가가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이름 모를 이의 신앙심이었다.





  라 메르베유 안으로 들어가 봤다. 미사를 드리는 시간인지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둘러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 고요함에 셔터를 누르는 것조차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성전 앞 쪽에는 몽 생 미셸 내부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미카엘 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작은 크기였으나 만든 이의 섬세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과거 성직자들이 수도원 안에서 유일하게 하늘 위를 바라볼 수 있었다는 클로아트르(Cloître)로 나왔다. 이 공중정원은 13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사방이 회랑에 둘러싸여 있다.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127개의 기둥이 정원을 에두르고 있는데, 이는 각기 다른 모양이다. 하나하나 수작업해 만들어 섬세함이 살아있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 수도원의 훼손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있는 돌기둥은 대부분 복원 작업을 거친 것이고, 초기에 만들어진 것들은 얼마 남아있지 않다. 사방의 회랑 중 바다 쪽을 향한 회랑은 수도원을 추가 증축하기 위해 오픈해 놓았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유리창을 붙여 바깥을 감상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 외에도 수도원 안은 다양한 용도를 가진 방들이 미로처럼 뒤섞여 있다. 귀족들이 연회를 하거나 귀빈들을 모시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던 손님 방과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던 대식당, 기사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기사의 방 등이 있다.






  라 메르베유를 뒤로하고 내려가는 길. 아쉬움에 다시 한번 돌아본 수도원에서 천년을 홀로 돌 위에 선 몽 생 미셸의 굳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요새 너머로 보이는 생말로 만. 썰물이라 마치 육지 같은 모습이어서 넓은 땅위에 홀로 선 모습이지만, 밀물이 밀려 들어왔을 때의 아름다움은 상상 그 이상이다.



내려오는 길목에 세워져 있는 그리스도 상




  내려오는 길에 만난 몽 생 미셸의 촌락. 매년 100만 명의 여행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지만 정작 정착해 사는 거주민들은 40인도 채 되지 않는다. 적은 인원임에도 이곳엔 그들을 위한 우체국이나 동사무소가 마련되어 있다.

  회색 벽돌을 쌓아 만든 집들은 다소 차갑고 무거워 보이지만 문화•예술보다는 신앙의 삶을 살았던 중세 시대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당시에는 집을 교회당보다 화려하게 짓지 않았다. 그 금욕주의적인 절제 속에서 몽 생 미셸의 작은 마을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꽃피웠다.






노르망디 해변,
금빛으로 익는 드넓은 초원 위로
양 떼들은 구름과 더불어 놀고
젖은 바람의 외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뭍이 끝나는 곳
자그만 바위산 위에 세워진 수도원이 보여요
밀물이 들고 어둠이 내리면
그 몽생미셸 수도원은
거대한 水晶이 박힌 듯
별보다 시리게 빛나는 섬이 되지요
저 중세의 수도원은 얼마나 소중한 걸 간직해야 했길래
사람들 발길 닿지 않는 머나먼 곳에서
스스로 섬이 되어야 했을까
하지만 알고 싶진 않아요
지나간 중세의 욕망은 한갓 뭉게구름일 뿐
멀어서 아름다운 것들은
먼 대로 놔두어요
내 마음 아주 먼 곳에도
수정의 섬으로 빛나는 것이 있지요
다만 멀어서, 간직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
다가갈 수 없기에 영원히 존재하는 그 무엇
그 이름을 聖 그리움이라 부를까요

몽 생 미셸 가는 길 - 유하




사막에 피라미드가 있다면
바다에는 몽 생 미셸이 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가 몽 생 미셸을 향해 던진 찬사이다. 실제로 이곳은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8대 불가사의 건축물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14년, 몽 생 미셸은 10년간 진행되어 온 복원 사업을 마쳤다. 120년 전 관광지 개발을 위해 도로를 만드는 바람에 퇴적물이 쌓여 밀물 썰물이 원활하게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세기가 지나서야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몽 생 미셸은 다시금 아름다운 천공의 섬으로 복원되었다.

  역사가 남긴 아름다움을 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욕심이 진짜 아름다움을 해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몽 생 미셸 너머로 해가 져간다. 수도원 위로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어둠 속에서 몽 생 미셸만이 빛나고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한다는 의미는 이때가 돼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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