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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Jan 18. 2021

우리가 놓치고 있는 어떤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고

어느새 우리는 화성 탐사선이 화성 궤도에 진입하고, 달에 우주 비행사를 보내고, 민간 유인우주선은 국제 우주정거장에 도착했다는 뉴스들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여기 '사이보그가 되기'를 선언한 존재들이 있다.

사이보그라면 마땅히 하이테크 슈트를 입고 증강된 체력과 슈퍼파워로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아이언맨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사이보그가 되기'로 선언한 현실의 사이보그들은 매일 아침 하이테크 슈트를 입는 대신 그날의 날씨와 교통수단에 따라 자신의 몸과 결합시킬 기술을 고민하고, 증강된 체력과 슈퍼파워로 지구를 지키기는커녕 외출이 조금이라도 길어지게 되면 자신의 감각과 이동을 보조해주는 장치의 배터리가 언제 방전될지 몰라 초조해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지구를 지키는 슈퍼 파워는커녕 불완전하고 취약한 신체를 가지고 보조기기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사이보그 선언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런데 만약,

더 나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정의가 '더 나은 기능'을 하는 인간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인간으로,

우리 삶의 근본 조건을 '독립'에서 '연립'으로 확장한다면, 이들의 사이보그로서의 복잡하고 고유한 경험은 그 자체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술 만능주의 세상에서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평가를 통해 획득한 '신분'을 가진 이 현실의 사이보그들은 그 누구보다 기술과 긴밀하게 관계 맺고 살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언제나 인간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대신 유기적으로 매끈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상이 아닌 몸'이 '거주하기 적합하지 않은 행성'에서 기술과 결합된 인간의 몸으로 생존하며 끊임없이 어긋난 이음새와 간격을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발견하며, 다시 결합하고, 세계의 재구성을 요구하며 세상의 가능성을 넓힌다.


그렇게 휠체어와 보청기, 돌봄자에서 안내견에 이르는 여러 존재자들과 극적이고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 하이브리드적 존재의 경험은 '자신' 이 아닌 다른 존재를 상상하고 그들의 자리를 만들며 '우리'의 범위를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확장한다.


얼마 전 한 전시회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템포로 걷고 다른 모양으로 손짓한다>는 제목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작품은 휠체어를 타고, 유모차를 밀고, 캐리어를 끌고 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걷는 모습만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다른 리듬과 속도로 걷고 있는지. 매일 마주하고 있었지만, 사실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장면이기도 했다.


'모두 다른 템포로 걷고 다른 모양으로 손짓'하는 존재들이 하나의 시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행성에서 무엇이 '정상'일 수 있을까.



SF 작가이자 편집자인 앤디 뷰캐넌은 우주선을 설계해보세요라는 글에서 독자에게 '거주 가능한' 우주선이나 우주 정거장, 인공 행성을 상상해보라고 제안한다. 어떤 우주 공간이 '거주 가능한 habitable' 곳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말 그대로 인간이 거주 가능한 환경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 이런 우주선을 설계하라고 했을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우리는 자신을 기준으로 놓고 '내가 거주 가능한' 우주선만을 떠올릴 것이다. '우주선 설계하기'는 장애가 환경과 상호 작용하여 구성되는 상황에 대한 하나의 사고 실험이다. 건강하고 장애 없는 몸을 가진 개인조차 그를 환대하지 않는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서는 얼마든지 장애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사고 실험은 접근 가능한 세계를 단지 '상상하는' 일조차도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완전한 상상의 영역에서도 보편은 거기 속하지 못한 이들을 밀어낸다. <사이보그가 되다. 9장 장애의 미래를 상상하기 p 262-264 일부>

   


'거주 가능한' 나만의 우주선을 다시 설계해 본다면, 단 한 사람에게 맞춰진 각자의 도면이 규정하는 '정상'에 의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존재들을 배제하게 될까. 여기서 우리는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선언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새 우리는 새로운 행성에 인류를 보내겠다는 선언이 더 이상 상식 밖의 소리로 취급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현실의 사이보그에 대한 관심은 우선순위의 문제가 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서로의 도면을 살펴보게 된다면, 그리고 도면의 다름을 나누고 공유하며 새로운 같음을 만들어내는 감각을 익힌다면 지금보다는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행성에 도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 과정은 화성으로 인류를 보내는 것처럼 쉽지 않겠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왜냐면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어떻게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로 도달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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