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사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lee Sep 25. 2016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 공감 편.

왠지 내가 요즘 것들이 된 듯한...

얼마 전 SBS 방영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랬었지...', '우리 회사랑 똑같네?' 하며 공감하던 장면들이 있었고,
'우린 안 저랬는데?',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며 공감하지 못한 장면 또한 있었다.

그래서 공감했던 장면들과 그렇지 않았던 장면들을 분류해서 나의 회사 생활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이 포스팅은 공감했던 장면들과 나의 회사 경험 등에 대한 것이다.


1. 글씨체

발표 자료, 보고서 등을 작성할 때, 상사의 취향에 맞춰서 해야 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의 임원들은 PPT 자료에 애니메이션 같은 특수 효과가 포함되는 것은 질색을 하였으며, 모든 내용을 한 장에 간추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정 임원은 취임과 동시에 글씨체와 간격 등을 공지하여 자료의 서식을 통일시켰고, 자료의 수신인 범위까지 지정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저런 거까지 다 신경 써?' 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저런 거'는 그냥 기본인 거다. 안 지키면 기본이 안된 사람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

2. 통근 버스

참 익숙한 장면이다. 물론 나는 기숙사에 살았었기에 장거리 출퇴근 버스를 많이 탄 편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곧바로 회사로 가는 날엔 자주 목격하던 장면이다. 서울에서의 출근 버스는 새벽 5시 50분에 출발했기에 매우 어둡고 차 안의 조명이 모두 꺼져 있었다는 점이 이 장면과의 다른 점이고, 90%의 사람들이 잠을 자며 출근을 하곤 했다.

3. 서울대 출신은 취업의 폭이 넓지 않다?

내가 서울대를 나온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서울대 나온 친구가 다른 친구와 통화하는 것을 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아... **카드 회사 합격했어... 뭐 일단 다른 데 더 써봐야지... 연봉은 그냥 그렇게 적진 않아...'. 당시 내 친구는 한 카드회사에 합격한 사실을 굉장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했었다. 그때 그 통화하는 모습을 보며, '아 서울대 나오면 일반 대기업 가는 건 자랑 못하는 거구나. 국책은행 정도는 가야 어느 정도 당당하게 얘기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학교 이름에 걸맞은 자리가 아니면 못 버틸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느꼈다.

4. 취업 성공 시의 기분

취업에 성공했을 당시의 기분을 표현하라고 했을 때 인터뷰 대상자는 '와우!'라고 크게 외쳤다고 했는데, 나도 저랬다. 넓지도 않은 집을 가로지르고 달려가며 소파 위로 뛰어올라 소리를 외쳐댔다. 그리고 대학교 붙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기쁨이었던 것 같았으며,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곧 시작이었지만...

5. 출근 사고

가끔 KTX를 타고 회사 출근을 할 때면, '열차가 몸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탈선이 된다거나, 전기나 기관 장치 등에 문제가 생겨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내 탓이 아닌, 코레일 탓으로 회사에 못 가고 있다.'라는 내용을 전해보고 싶었다. 회사는 가기 싫고, 그렇다고 안 가서 혼나긴 싫고, 혼나지 않고 회사를 안 가는 방법을 떠올리다 하게 된 생각이랄까?(우리 부서의 책임급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6. 회사의 방향

회의 혹은 회사의 방향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바로 '윗사람이 원하는 방향'이라는 것. 회의라는 것은 답을 만들어 내는 자리라기보단, 답이 정해져 있으면 그 답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궁리하는 작업 같기도 했다. 위에서 정한 방향이 틀렸네, 맞네라고 이야기하는 건 회의 후의 뒷담화 시간에 행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 회의 때 의견을 개진 못 했다기보단 의견이 없었다. 구글에서 가장 경계하는 유형이 회의 때 '버블헤드 인형'처럼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 경우가 바로 그랬던 것 같다. 윗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의견을 활발히 개진하는 구성원이 없기 때문에 본인의 의견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7. 일단 해라.

회사엔 필요 없고, 의미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누군가는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직접 일을 하는 입장에선 '아 이걸 도대체 왜 하고 앉아있는 건데?'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상부에서 시킨 납득 안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상사 면전에서 '이건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라고 말을 못 하였기에 행해지는 것이다. 일단 한 다음에, '해보니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진행이 어렵습니다.'라는 보고를 하는 것이 회사 내에서의 순리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방향에 맞춰 보고서를 짜 맞추기도 한다. 회사 생활 당시, 어떤 개선 아이템을 시행한 후 결과를 확인했을 때,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일단 선배에게 '이거 계속 진행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라고 물은 뒤, '계속해봐야지'라는 답을 들으면 그에 맞춰 '아이템 시행에 따른 유의차 적으나, 개선 경향 있음. 지속 시행 후 추가 확인 필요'라는 식으로 결론을 적었고, '그거 이제 안 할 거야'라는 답을 들으면 '아이템 시행에 따른 유의차 없으므로 추가 진행 무의미'라고 적었다. 결과는 같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회사의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8. 상부의 지시

업무 지시를 받을 때 가장 난감한 경우는, 지시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머릿속에 제대로 그려지는 밑그림이 없는 경우이다. 부하 직원이 상사의 말귀를 알아듣느냐 마느냐는, 부하 직원이 지시를 받았을 때 머릿속에 상사와 같은 그림을 그렸느냐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간혹 지시하는 사람도 이해가 되지 않은 업무를 받을 때엔 캡처 화면의 자막처럼 '지도 모르는 구만...'하며 구시렁대게 된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 중의 하나가 의견을 냈다가 '어 그럼 네가 계획 짜서 한번 해봐.' 하며 담당자로 나를 지정해 주는 경우이다. 담당자가 된다는 것은 책임을 갖고 일을 끌고 가란 이야기인데, 사안이 중요할 경우라면 부담감을 갖고 해 볼만하기도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무관심 속에 홀로 분투를 해야 한다. 다른 일들에 비해 중요도가 높지 않아 미뤄 놓고 마냥 안 챙기고 있으면 언젠가 불려 가 문책을 당할 수도 있기에 신경은 계속 써 줘야 한다. 매우 외롭게.

9. My Style

사장 참여 회의가 열리게 되면 그 전주는 회의 자료 준비에만 몰두를 하는 인력들이 생기게 된다. 이 회의 자료는 과장, 차장 급에서 일단 작성하고, 부장과의 리뷰, 상무와의 리뷰, 전무와의 리뷰를 거친 후에 사장단 회의에 사용되게 되는데, 이때 리뷰를 하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자료가 계속 바뀌게 된다. 줄기가 되는 내용의 변화는 없지만 토씨 하나에 집착하게 되며, 최종 점검자인 전무와 사장 간의 스타일이 안 맞으면 그동안의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회사에 있었을 때, 이에 관한 후문을 들은 적이 있다. 전무 선까지의 리뷰를 마친 회의 자료를 사장단 회의에 들고 갔다 엄청 깨졌다는 이야기. 그런데 문제는, 그 회의가 애초에 전무는 참석을 하지 않는 회의였던 것이다. 그래서 전무는 그 회의의 직접적인 분위기를 모른다. 회의 참석자들이 회의에서 깨지는지 아닌지 모르며, 회의 자료를 보며 사장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회의에서 나온 안좋은 평가들을 전무보다 낮은 직급의 사람들이 전무에게 하나 하나 보고 해 줄리는 없었다. 이럴 경우엔 결국 '사장 보고용', '전무 보고용' 등의 여러 버전의 자료가 작성되는 것이다.

10. 매스게임

대학 다니던 시절 그룹 연수의 매스게임 현장을 보고 '저건 무슨 공산당이야 뭐야?'라고 했었는데, 입사 후에 내가 직접 그 공산당원이 되었다. 신입사원들의 수련대회에서 하게 되는 것인데, 미리 구성된 신입사원 대표들이 매스게임을 구상해 놓은 후, 사원들을 체육관에 몰아넣고 3일 정도 연습을 계속 시킨다. 우리는 말이 달리는 모습을 구현했었는데,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 지 모른 채 그저 색깔 바꾸기에 바빴다. 행사가 모두 끝난 후에 비로소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당시엔 그거 보면서 좋다고 '오~'하며 보곤 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 생활이란 것 자체가 매스게임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 지 구성원들은 알지 못한 채 위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윗사람들은 구성원들이 그리는 그림을 보며 흐뭇해하거나 단점을 찾고... 물론 단점을 찾는 일이 우선일테지만.

그런데, 저 매스게임을 통해 얻은 게 과연 뭘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면... 협동심? 동기들과의 유대감? 도대체 뭐지...

11. 취업 성공 시 부모의 반응

정말 자막 속의 내용 같았다. 나를 달리 보는 것 같았고, 내가 최고인 듯 생각하셨다. 그리고  취업 성공 당시 나의 부모님은 다른 사람들이 묻지도 않은 나의 취업 성공 소식을 먼저 알리고 다니기도 하셨다. 이런 걸 보면 자식은 부모를 위해 잘 돼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퇴사 소식은 취업 소식에 비해 훨씬 늦게 퍼졌다. 즉, 퇴사 소식은 누군가 묻지 않아도 먼저 알릴 만큼 결코 기쁜 소식이 아니라는 것.

12. 가정의 날

내가 다녔던 회사도 수요일이 '가정의 날'이었다. 오후 4시 반쯤 되면 빨리 퇴근하라는 내용의 방송이 나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지금 방송하는 인간 가서 죽일까?'라며 부서원끼리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회사의 정책들은 일부 부서에만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있던 제조 일선의 부서는 '가정의 날' 같은 제도가 바로 그런 경우였고 자율 출근제도 또한 대표적인 예였다. 출근은 오후 1시 이전의 어느 시간에든 가능하고, 하루에 8시간만 채우면 되는 그런 제도였는데, 우리 부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남의 나라 얘기였다. 그래서 우린 늘 상대적 박탈감 속에 회사 생활을 해 나갔다.

13. 일찍 일어나는 새는 일찍 태어난 새다.

우리 부서에서 가장 일찍 출근을 하는 사람은 부서장이었다. 그 이후에 과장, 차장급들이 출근을 했고, 가장 늦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사원, 대리급이었다. 거꾸로 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회사 생활해보니 저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예전에 회사에서 사장급이 참석하는 신제품 품평회가 오전 7시 30분에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분명 사장에게 이때 말고는 허락되는 시간이 없었던 게 이유일 것이다. 사장은 얼마나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품평회의 담당자들은 얼마나 구시렁대며 준비를 했을까. 어쨌든 일찍 일어나는 새는, 세상에 가장 일찍 태어난 새들이었다.

14. 스펙이 낭비?

스펙이 낭비 아니냐는 말에 모두 수긍하던 인사 담당자들. 나도 동의하지만, '그럼 스펙 안 보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에도 수긍을 할지는 의문이다.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2009년쯤, 교양 수업을 하던 강사분께 이런 얘길 들었다.

'요즘은 자기소개서에 특이한 이력을 쓰기 위해 히말라야를 직접 갔다 오는 학생들이 생겼더라고요. 그리고 직접 가지 않은 학생들을 상대로 히말라야 경험을 대필해 주는 회사들도 몇 개 있다고 하더군요.'

스펙의 과잉은 이미 2010년 이전에도 있던 현상인데, 요즘은 얼마나 더 심할지 예측도 안된다. 그게 과잉인 걸 알면서도 눈에 띄기 위해 시도하는 학생들, 그리고 눈에 띄는 포인트가 없으면 뽑지 않는 인사담당자들.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15.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가야 한다는 건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일 것이다. 처자식, 대출 등에 발목 잡히기 전에, 한 살이라도 어려 체력 좋고 겁이 조금이라도 더 없을 때 말이다. 정년 후에 셔터 내릴 힘도 없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보단 조금 더 다양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시기에 나오는 것이 좋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할 뿐.

16. 목표는 그저 돈이었다.

인터뷰 대상자들처럼, 무슨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적성이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 저들도 그랬을 것이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그 일을 싫어하게 된다.' 등등의 말을 떠올리며, 구체적인 목표는 돈으로 설정하고 막연하게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퇴사.

17. 빈 도화지, 그리고 예전과는 다른 세상이다.

다큐에서 퇴사를 하고 오키나와로 가 스킨 스쿠버 보조 강사가 된 곽승훈 씨는 아무런 밑그림이 없어서, 그런 점들이 기대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의 퇴사 끝에 시인으로 활동하는 하상욱 씨는 기성세대와 고민의 이유가 다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다큐에서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들이었다. 예전에는 끈질기게 버티는 게 미덕이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버티지 말고 즐기면서 살아보는, 아니 즐기면서 일하는 삶을 꿈꾸는 시대인 것이다. 아무런 이정표가 없는 길을 두려워만 하는 게 예전 이야기라면, 요즘은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기대를 하는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SBS 제작진의 무언의 시위

카메라 들고 촬영 중인 제작진에게 'SBS는 왜 지금 이 시간까지 왜 일을 하고 있지?'라고 하던 한 회사원.
이 장면이 굳이 들어간 이유는 '우리도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일하고 있다.'알리고 싶은 SBS 제작진의 마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일기 23. 뇌진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