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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Nov 03. 2016

미국 일상 체험 5. 하늘색 하늘

그립고 그리운 하늘

하늘색(Sky Blue)

'하늘색'의 정의

맑게 갠 푸른 하늘을 나타내는 색. 연한 파랑을 말하고 옥색과 파랑의 중간색이랄 수도 있다. 영원하고 순수하며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 '하늘'이라는 시에서 "하늘은, 멀리서 온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시원(始原)의 감정을 일으키는 색이다. 녹색, 파랑과 더불어 환경, 자연과도 연관을 가져 환경의 가치를 주창하는 광고의 지배색으로 종종 쓰인다.(출처 : 광고 사전, 김광철)


뜬금없이 하늘색의 정의를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서울의 하늘을 보다 보니 하늘색이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서 찾아본 것이다. 하늘이 높다는 가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파랗고 높은 하늘은 쉽게 볼 수 없다. 유치원생들에게 크레파스 쥐어주며 하늘을 그려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어떤 색깔의 크레파스를 고를까? 만약 하늘색을 골랐다면 그건 아마 '하늘색'이라는 한글을 읽을 줄 안다거나, '하늘은 하늘색으로 칠해야 돼.'라는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다면 회색 크레파스를 고르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난 원래 하늘의 상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살진 않았었다. 하늘의 색깔이 무슨 색인지, 날씨가 맑은지 흐린 지, 미세먼지가 얼마나 끼었는지 등도 관심 없었다. 그저 비 혹은 눈이 오는지 안 오는지 정도만 관심 있었다. 우산을 쓰거나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을 해야 하는 등의 귀찮은 행위가 필요한지 아닌지 정도만 알면 됐다.

Santa Monica 해변
LA  누나 집 근처 산책하다가 찍은 예쁜 집

그런 내가 날씨가 맑은지 흐린 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여행을 다니면서부터이다. '여행의 8할은 날씨가 좌우한다.'라며 떠들고 다닐 정도로, 날씨는 여행에 있어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맑은 하늘이 있어야 여행지의 베스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흐린 날씨가 상징처럼 여겨지는 런던 또한 맑은 날씨일 때 더 좋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한자성어를 변형한, '맑으면 맑을수록 좋다.'는 '청청익선(淸淸益善)'이란 말을 만들고 싶을 정도로.


그런 점에 있어서 LA는 정말 천국 같은 곳이었다. 내가 LA에 있던 4월부터 7월까지는 건기였는데(우기는 겨울에만 잠깐 찾아온다고 한다.), 아무리 건기라고 해도 그렇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맑은 날이 계속됐다. 3개월을 머물며 흐린 날을 본 건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혔던 것 같고, 빗방울을 맞아 본 건 딱 하루였다. 누나와 매형에게 '나 오늘 빗방울을 맞았어. LA에서 빗방울을 맞았다고!'라며 자랑(?)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LA는 맑은 하늘과 강렬한 태양이 흔한 곳이었다. 선글라스는 폼이 아닌 필수였고, 노출 의상은 몸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닌, 그저 더위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즉, LA는 선글라스 끼고 맨살이 드러난 옷 좀 입었다고 해서 '멋을 부렸다.' 혹은 '거만하다.'는 등의 시선을 받는 곳이 아니었다.


한편, 2016년은 직전의 우기에도 비가 오지 않아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해였다고 한다. 수영장을 보유한 가정은 수영장에 물을 채워놓으면 안 되었고, 정원의 스프링클러를 함부로 틀어도 안 되는 게 2016년의 LA모습이었다. 더 심각해지면 바닷물을 끌어다 써야 할 정도의 가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겐 가뭄의 심각성보다 맑은 하늘에 대한 만족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맑은 하늘이 얼마나 좋은 건지, 햇빛을 쪼이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서른넷이 돼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아파트 세탁실엔 건조기가 있었으나 꼭 햇빛을 이용하여 빨래를 말리고 싶을 정도로 날씨가 늘 좋았다. 그래서 수고를 무릅쓰고 늘 세탁을 하고 나면 건조대를 베란다에 들고나가 직접 빨래를 널곤 했다. 맑은 하늘이 날 움직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3개월간 맑은 하늘을 계속 경험하고 나니 일종의 집착 같은 게 생겼는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 증상이 시작됐다.

2016년 7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찍은 하늘

2016년 7월 11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집으로 가는 도중, 얼른 사진을 찍어 미국의 누나 부부에게 보내주었다. 너무 어둡고 회색빛 도는 하늘이 신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습한 날씨와 높은 기온은 예상했고 각오 또한 했지만, 칙칙한 하늘은 매우 날 당황스럽게 했다. 내가 아는 하늘이란 이런 색깔이 아니었다.


미국에 있을 때, 미세먼지를 감소시키자는 목적으로 '고등어 구워 먹지 말라.'던 한국 정부의 발표를 보고 코웃음만 쳤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직접 하늘 상태를 보고 나니 '코웃음 칠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한국의 하늘은 어두웠다. 하늘색 하늘에 익숙해져 있던 내 눈은 좀처럼 적응을 못했고, 날마다 하늘의 색이 어떤지 따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오늘은 비가 오니까 내일은 하늘이 맑겠구나.'하며 기대를 하는 버릇 또한 생겼다. 아래 사진은 비 온 다음날 북한산에 올라가 찍은 사진으로, SNS에 사진을 올리며 'LA급 하늘'이란 표현을 썼다. 그리고 맑은 하늘이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준다는 사실 또한 새삼 깨닫게 되었다.

비온 다음날 북한산에 올라가 찍은 사진

고등학교 시절 한창 힙합 음악에 관심을 가졌을 때, 미국 서부 힙합의 특징을 찾아보면 '따뜻한 날씨의 영향을 받아 동부 힙합에 비해 분위기가 밝고 화려하며 멜로디컬 하다.'라는 식의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당시엔 '무슨 음악이 날씨에 영향을 받아?'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젠 날씨와 음악 사이엔 분명한 상관성이 있다고 보고, 사람들의 성격 또한 날씨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LA에서 본 사람들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 여유로움 등은 바로 그 증거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실제로 날씨와 사람의 성격 사이에 과학적으로 연관성이 존재한다면,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희망이 사라진 오늘날의 한국은 어서 빨리 '하늘색 하늘'을 되찾는 노력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물론 지금 당장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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