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누나와 매형이 결혼 전 인사차 한국에 들어왔던 2015년의 2월. 그들은 당시 한국 음식점들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압구정동에서 설렁탕을 먹었는데, 만원이 넘던데. 그리고 맛도 별로고 양도 너무 적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생각한 건,
i) 설렁탕 한 그릇에 만원이 넘는 이유는 먹은 장소가 압구정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7~8천 원 수준의 설렁탕도 많다. 그리고 한국 방문이 너무 오랜만이라 물가를 동남아 수준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ii) 맛이 별로인 건, 내가 직접 먹어본 게 아니라서 이유를 잘 모르겠다.
iii) 양이 적다는 건, 내가 직접 먹어본 게 아니라서 이것 또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음식들이 맛없다고 해서 괜히 기분이 언짢았는지, 누나와 매형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됐다.
그래서 이영돈 PD라도 된 것처럼, 서울과 LA의 음식을 모두 직접 체험해봤다.
(참고로 내 입맛은 둔하고, 새로운 맛을 잘 못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글은 설렁탕을 비롯한 몇몇 음식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1. 가격은 양에 비례?
일단 가격은 LA가 더 비싸다. 그럼에도 누나와 매형이 한국의 설렁탕에 대해 만원씩이나 한다며 불평을 늘어놓은 것은 아마 '가격 대비 양이 적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설렁탕은 비싸야 만원이 넘지만, LA의 설렁탕은 기본적으로 만원이 넘는다. 10달러 정도가 평균 가격이었으며, 세금과 팁을 별도로 내야 했다. 홀로 LA의 설렁탕을 한 그릇 먹었을 때 13달러 이상을 지불했던 경험이 있다. 한국 돈으로 만 오천 원 정도의 금액을 낸 것이고, 뉴욕의 한인 타운에서 먹었을 땐 만 구천 원 정도를 지불했다. (LA와 뉴욕 모두 물가가 비싼 대도시이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가격은 미국이 더 비싸다.
그리고 미국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꼭 생각해야 하는 것이 세금과 팁이었다. 세금은 음식 이외의 물건 구입 시에도 생각해야 했는데, 주마다 Sales Tax라는 것을 받는다고 한다(LA의 경우 8~9% 수준). 10달러짜리 음식을 먹는다고 가정하면, 세금과 기본 15% 수준의 팁까지 포함하여 적어도 12.5달러는 내야 하는 것이다. 세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내야 하는 것이지만, 메뉴판에 표시된 가격에 세금이 포함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별도의 세금을 내야 했던 미국은 뭔가 안 내도 될 돈을 더 내는 기분이 들게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먹어 본 설렁탕은 비싼 가격만큼 정말 많은 양을 자랑했다. 과장 조금 보태면, 탕의 느낌보다는 전골의 느낌이 들 정도로 고기와 면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렁탕 이외의 음식들도 양이 많았다.
즉, 설렁탕을 포함한 몇몇 한국 음식을 두 나라에서 먹어 본 결과, 미국이 절대적으로 가격은 더 비싸지만 그만큼 양을 많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미국인들의 먹성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인들의 식습관은 대체적으로 우리보다 많은 양을 섭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 캔 콜라를 사 먹는다고 하면, 250mm의 날씬한 캔을 사는 게 기본적이지만 미국에선 250mm짜리 캔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355mm의 뚱뚱한 캔이 기본이었다. 생수도 500mm짜리 병은 주로 '코스트코(Costco)'와 같은 대형 마트에서 묶음으로 주로 팔았고, 편의점이나 자판기를 통해 한 병씩 사 먹는 건 700mm 이상의 대용량 제품들이었다. 무얼 먹든 간에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1.5배는 먹는 듯 보였고, 식재료들의 크기도 대체적으로 컸다. 석화는 내 손바닥만 한 크기였고, 한 손으로 두 개 이상 못 쥘 만한 크기의 코끼리 마늘도 있었으며, 해산물들의 크기도 어마어마했다. 마치 국가 영토 크기에 비례한 것처럼. 이러한 것들을 경험해보니 미국에 비만 인구가 많은 이유와 비만의 정도가 한국은 절대 따라가지 못할 수준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2. 맛있다. 그런데 좀 강하다.
LA에서 먹은 한식들은 대체적으로 맛있었다. 물론 10년 이상 LA에 살아온 매형과 누나이기에 맛있는 곳만 골라서 간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3개월 동안 따라다니며 별문제 없이 잘 먹고 지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체로 음식들의 맛이 조금 강하다는 것이었다. '간이 세다.'라는 게 정확한 표현 같다. 그리고 맛이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 또한 많았다.
제육볶음이나 부대찌개 같은 경우, 매우면서도 단 맛이 나기 마련인데 LA에서 먹어본 그 음식들은 단맛이 너무 강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중식당에서 먹어 본 탕수육 또한 너무 달기만 했다.
누나와 매형의 말로는, LA에서 맛집으로 성공한 한국 음식점들은 현지 사람들(미국인 혹은 미국으로 이주해 온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점점 자극적인 맛으로 변해간다고 한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진 식당들은 점점 늘어나는 외국인 손님의 입맛에 기준을 맞추게 되고, 이후 한국인들의 점점 발길은 끊기게 되는 수순을 밟는다는 것.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리고 나와 누나 부부 간에도 입맛의 간극이 조금 있다고 느꼈는데, 누나 부부가 맛있다고 하는 음식들이 나에겐 좀 '센 맛'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심심한 맛을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여느 음식점에 가서 맛이 너무 세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미국에서 먹은 음식들은 분명 맛이 셌다.
멕시칸 음식 레스토랑인 '치폴레(Cipotle)', 브라질 음식 레스토랑인 '포고 드 차오(Fogo de chao)', 아르메니안 타운에 있던 카밥(케밥과 동일) 음식점 등은 누나 부부는 맛있다고 한, 그러나 난 적응하지 못한 가게들이었다. 이처럼 누나 부부와 나 사이에 입맛의 간극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LA에서 10여 년씩 살았느냐, 3개월만 살았느냐의 차이 같았다. 그리고 10년 넘게 강렬한 맛들로 길들여진 누나 부부의 입맛이 한국 음식점들에 대한 혹평을 낳게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누나, 매형은 유독 엄마가 해 주는 집밥만큼은 맛있다고 했었다. '한국은 비싸고 맛없는데, 엄마 밥은 맛있어.'라던 누나의 말엔, 엄마가 해주는 밥에 대한 그리움과 미국 생활을 하기 전 20여 년 동안 엄마 밥을 먹던 어린 시절이 함께 담겨있는 듯했다. 어쩌면 어른이 된 후 10여 년 동안 경험한 미국의 맛이, 태어난 후 20여 년 동안 경험했던 엄마의 맛을 이기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듣기 좋은 최신곡들이라도 청소년기에 들었던 추억의 음악들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먹은 음식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한국 음식과 비교하고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니, 결국 내가 그동안 먹어 온 엄마의 밥상이 생각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엄마의 밥상들 또한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3개월간의 미국 생활이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걸 보면, 난 분명 어느 정도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낸 셈이다. 자격증 같은,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은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