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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Nov 17. 2016

조금은 어색했던 수능날의 풍경

강산이 변했으니 당연한 건가요.

14년 전 두 번째 수능을 마지막으로 수능과는 담쌓고 살던 나는, 오늘이 수능날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수능을 치렀던 학교를 찾아가 봤다. 백수가 되자 할 게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정성이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샘솟아 제대로 씻지도 않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인지, 내가 수능을 두 번이나 봤던 인수중학교는 더 이상 수능 고사장이 아니었다. 고사장으로 향하는 수험생과 수험생의 부모, 가족들, 그리고 수험생을 응원하는 후배들과 교통정리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지만, 너무나 허무하게도 학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학교 운동장엔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축구공을 차던 한 아저씨만이 있을 뿐이었다.


허무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혜화여고. 그곳엔 내가 알던 수능 고사장의 풍경이 재연되고 있었다. 학교 앞이 바로 도로라서 공간이 넓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상상했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교문 앞 공간이 좁았던 탓에 수능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모교인 신일고로 이동했는데, 입실 마감 시간인 8시 10분이 조금 넘어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응원을 하러 나왔던 후배 아이들은 응원을 마치고 정리 중이었다. '교수를 만나느라 샤샤샤' 같은 멘트의 요즘 애들스러운 응원 문구가 보였고 정리가 끝나자 단체 인증샷을 찍고 하나 둘 집으로 향했다. 조금 의아했던 광경은 부모님들이 교문 앞에 별로 없었던 것.

고사장의 교문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부모님들로 가득한 풍경이 내가 상상했던 모습인데, 전부 절이나 교회, 성당 등으로 가셨는지 남아서 교문 앞을 지키는 분들은 없었다. 다만 몇몇 분들이 교문 앞에서 학교를 응시하며 발길을 쉽게 떼지 못하고 계셨는데, 2002년 11월 8일, 불면, 헛구역질, 복통 탓에 손가락, 발가락 다 따고 흑빛 얼굴로 시험을 치러 가는 나를 보던 엄마의 모습이 저런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만큼 붐비지 않는 교문 앞을 보며 '부모님들이 좀 쿨해졌다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점차 바뀌어간다면 자녀들의 결혼 날짜 결정 문제에도 '그냥 너희 편한 날로 해.' 하는, 쿨내 진동하는 부모들의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8시 20분쯤 되자 교문 앞은 완전히 텅 비었다. 뒤늦게 허겁지겁 달려오는 수험생이라도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내 기대와는 정반대로 세상 편한 듯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지각생이 한 명 보였다. 그는 내게 '수능 보는 애 맞아?'라는 의문만 남겼을 뿐이었다. 이 또한 내가 생각한 수능날의 풍경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내가 너무 예전의 모습만 떠올렸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조용하고 붐비지 않았던 고사장 앞의 풍경은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수능 후의 모습 또한 예전과 많이 다를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몇몇 치기 어린 친구들은 술을 마시겠다며 밤에 모이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집에서 조용히 가채점 후 성적에 따라 울고 웃는 게 흔한 풍경이었는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다. 아마 수험표 혜택이 있는 상점들을 찾아다니는 것 정도가 평범한 모습이지 않을까. 


하지만 적어도 성적 때문에 비관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의 모습은 꼭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더 산 사람들이 오늘의 시험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시켜줘야 하는 게 아닐까. 말로 해주기 힘들다면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라도 틀어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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