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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Nov 29. 2016

빨래 in LA

렌트의 천국

누나와 매형이 회사로 출근을 하면 나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 시간들을 이용해 이곳저곳 구경하기 위해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았다. 그 시간들은 주로


1. 설거지, 빨래, 청소

2. 자전거 타기 혹은 조깅

3. (적은 양의) 독서

4. 영화 혹은 (많은 양의) 한국 예능 시청


등을 하며 보내곤 했다.


'식충이' 생활을 했던 나는 밥값이라도 하기 위해 기본적인 집안일을 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었고 그거라도 해야 마음이 조금 편할 것 같았다.


집안일 중 유독 한국과 달랐던 건 바로 빨래였다. 왜냐하면 미국 아파트의 특성상, 세탁실의 공용 세탁기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 안에는 세탁기를 설치할 만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탁실은 층마다 있었고, 세탁실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각 3대씩 설치되어 있었다. 아파트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건축과 동시에 들여온,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은 듯한 세탁기였다.


한국에선 이제 기본이 된 드럼 세탁기도 아니었고 80~90년대에 썼을 법한, 'Goldstar'란 마크가 어딘가에 붙어 있을 것 같은 세탁기였다. 그래서인지 고장도 많이 났다. 내가 누나 집에서 머무는 3개월 동안, 세탁 중 고장이 나 물이 가득 찬 세탁기에서 흥건히 적셔진 빨래를 꺼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 세탁기라 그런지 아니면 그게 무슨 표준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탁기는 25센트짜리 동전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요즘 한국의 음료 자판기는 카드도 되는데 미국에선 '25센트 사용 활성화 캠페인'이라도 시행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누나, 집에 올 때 동전 좀 바꿔와. 25센트짜리 다 떨어져서 세탁기를 못 돌리겠어."


이 전화를 3개월 동안 적어도 두 번은 한 것 같은데, 그때마다 누나와 매형은 퇴근길에 바꿔 온 동전을 갖다주며,


"자~ 널 위해 동전을 이만큼이나 바꿔왔다. 빨래 마음껏 해라."


라고 말하곤 했다. 분명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미국은 하우스 등의 자가 소유 집이 아닌 경우엔 공용 세탁기를 사용하는 게 아직도 일반적인 것 같았다. 렌트로 운영되는 주거 공간들은 꼭 세탁실이 있었고, 동네 곳곳에 코인 세탁소들도 여럿 보였다.


내가 지내던 아파트는 세탁기 1회 사용에 1달러 50센트를 지불해야 했다. 물의 양을 'High'로 선택하면 25센트를 더 지불해야 했고, 건조기는 1달러 25센트였다. 즉, 1회 세탁에 필요한 돈이 3000원 정도였다. 한국에서 집 안의 세탁기를 돌리던 것을 생각하면 쓸 데 없는 돈이 나가는 느낌이었다. 식당 가서 밥 먹고 계산할 때 주는 팁처럼 느껴지는 돈이었다.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과 옷을 덜 상하게 싶은 마음, 그리고 지구 최강이 아닐까 싶던 맑은 하늘과 햇빛 때문에 건조기는 잘 이용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도 좋아하는 티셔츠들은 오래 입고 싶은 마음에 손빨래까지 했던 터라 건조기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누나와 매형은 매번 건조기를 사용 안하는 나를 유난 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빨래를 다 한다는 사실 자체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해야 할 일이 줄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너 오고 나서 세탁기를 돌려본 적이 없구나.'라고 이야기하며 만족감을 표현했고, 내가 다른 도시를 여행할 땐 전화를 통해 '너 언제와? 빨래 아직 안 돌리고 있어.'라며 나의 존재감을 표현 해 주기도 했다.(열흘이 넘는 여행을 하고 돌아갔는데 진짜 빨래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세탁 문화(?)는 내게 좀 불편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빨래통을 들고 집 밖으로 드나들어야 했던 번거로움, 혹시나 세탁 중인 옷들이 도둑맞지 않을까 하는 걱정, 세탁을 돈 내고 한다는 데에서 오는 아까운 감정 등이 빨래를 할 때마다 들곤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만이 사용하는 세탁기가 아닌 공용 세탁기를 사용한다는 데에도 반감이 있었는데, 이 반감의 시작은 모두가 '내 집 마련의 꿈'을 갖고 살아가는, 자가 소유에 익숙한 한국의 문화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렌트의 천국' 같았다. 집과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빌려 쓰다 바꾸는 게 익숙한 문화였다. 이런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다달이 내는 렌트비에 대한 거부감이 한국 대비 적어 보였고, 자가 소유에 대한 집착도 적어 보였다. 꼭 소유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으니 남들과 함께 쓰는 물건, 남들이 썼던 물건 등에도 큰 반감이 없는 게 아닐까.


물론 미국에서도 생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집이나 차는 기본적으로 소유하려는 것 같다. 실제로 누나와 매형도 미국에서의 내 집 마련을 계획하고 있다. 아무리 렌트의 천국이라도 기본적으로 매월 2000달러가 넘는 돈을 빌린 집과 빌린 차에 평생 부어대는 건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서 사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 것들을 옆에서 관찰하고 경험해보니 미국 생활이라는 게 전혀 쉬워 보이지 않았다. 물론 누나와 매형이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도움이 없는 상황을 가정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저축하던 것보다 더 큰돈의 월세를 감당하는 가계부를 쓰고, 빨래 같은 소소한 것들조차 적응 대상인 미국 생활을 생각하니 갑갑하기도 했다. 문득, 달랑 2000달러 들고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누나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3개월의 미국 생활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난 아무 거리낌 없이 세탁실에 가 빨래를 돌리고 있었고 세탁비가 아깝다는 생각 또한 안 하게 됐다. 뭔가 하나의 산을 넘었다, 벽을 넘었다는 느낌보단 그저 그곳의 생활에 자연스레 스며든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필수 혼수 품목이 되어버린 '아기 옷 전용 세탁기'가 미국의 코인 세탁기보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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