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lee Dec 03. 2016

자식의 퇴사 소식은 발이 없다.

'시빌 워' 생각을 하다 보니...

마블 스튜디오의 2016년 최고 기대작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였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난 이미 미국에 가 있었는데, 다행히 LA에는 CGV가 있어서 한글 자막이 있는 시빌 워를 볼 수 있었다. 비록 LA의 CGV는 단 3개의 상영관만이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곡성'같은 한국 영화까지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를 표시해야 하는 극장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했던 건 시빌 워가 미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개봉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개봉일은 2016년 4월 27일이었고 미국 개봉일은 그보다 한 주 늦은 5월 6일이었다. '캡틴 코리아'도 아니고 한국영화도 아닌데 한국에서 먼저 개봉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특이했다. 한편으론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스포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국은 아직 도로변에 영상을 전혀 쓰지 않는 광고판이 많이 있다.


이 시빌 워 한국 선개봉 사건(?)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한 친척 형과의 메신저 대화가 떠올랐고, 그 대화를 통해 취업 준비 시절부터 퇴사까지의 시간들이 하나하나 그려졌다.




2009년 하반기, 모든 공채에서 고배를 마셨던 나는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토익 점수는 공대생으론 더 올리지 않아도 될 수준이었고, 낮은 전공 평점을 올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막판 스퍼트를 올리는 마라토너처럼 봉사활동을 몰아서 몇백 시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졸업을 앞둔 상태에서 어학연수를 갈 수도 없었다.


결국 내가 2010년을 맞이하며 했던 건 중도 포기했던 한자 2급 자격증 취득과 각종 취업 스터디뿐이었다. 이것 말고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취업이 안된 상태이니 졸업식도 가고 싶지 않았다. 졸업식은 한자 시험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자식의 학사모를 쓰고 졸업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그건 이미 누나 졸업식에서 했으니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나 홀로 부모님의 생각을 단정 지어 버렸다. 그리고 부모님은 나의 이런 결정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내 결정이 옳다며 존중했다기보다는 그저 배려를 해 주셨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배려가 몇 개월 이어졌다.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침묵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난 부모님께 취업 성공이라는 선물을 드렸다. 그것도 대기업 취업이라는, 생각지도 못했을 선물을 했다.


합격자 발표 당일, 나는 집에서 합격 여부를 확인했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일을 하던 도중 나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이 합격 발표일이라는 걸 알았기에 내 전화가 합격 전화라는 사실도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입에서 합격했다는 말이 나오기 전까진 마음을 졸였을까. 전화 통화 끝부분에 살짝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는 당시 가게에 있던 손님들에게 나와의 통화 내용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손님들이 축하한다고 하자 순간 눈물이 차 올랐다고 했다. 엄마는 일이 끝난 후엔 친척들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다. 난 분명 엄마와 친구들에게만 합격 소식을 알렸는데, 친척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빠에겐 집에서 직접 이야기를 했다. 휴대폰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아빠에겐 별도로 연락할 수단이 없었을뿐더러, 아빠의 회사에 찾아가 소식을 전할 정도의 숫기가 나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웃옷을 옷걸이에 걸고 있던 아빠의 곁에 가 별일 아니라는 말투로 소식을 전했다. 아빠와 나 사이엔 악수가 오갔고, 오랜만에 마주 본 상태로 웃고 있었다. 몇 년 만에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는지 모른다.


다음날 윗집에 살던 아저씨가 나와 마주치자마자, '아이고, 야 축하한다.'라는 말을 건넸다. 아빠가 출근길에 아저씨를 만났을 때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평소에 모든 일들을 냉소적으로 보던 아빠였기에 난 나의 취업에 대한 아빠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예상했었다.


"대기업 들어가 봐야 아무 소용없어. 아빠 봐. 현대건설 20년 넘게 다녔어도 지금 이렇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남들이 먼저 물어보지도 않은 아들의 소식을 먼저 이야기하고 다녔다. 전혀 예상 못한 아빠의 반응이었다. 세상 모든 일엔 냉소적이어도, 자식의 일엔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취업 소식은 발 없는 말이 천리 가듯 널리 퍼졌다.


그로부터 약 6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회사를 나왔고 미국에 와 있었다. 퇴사한 지 두 달이 좀 못 된 시점이었던 5월 5일, 부여에서 극장을 운영하는 사촌 형으로부터 톡이 왔다. 


"잘 지내고 있어? 회사 나왔다면서?"

"네 그냥 놀고 있어요. 누나 집에서ㅋㅋ 시빌 워 덕 좀 봐요 요새?"


괜히 시빌 워 이야기를 꺼내 형의 안부를 물었다. 대화의 포커스가 온전히 나의 퇴사에 맞춰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퇴사 관련 질문은 이미 지겨울 대로 지겨운 상태였다.


"미국 갔어? 시빌 워 덕 조금 봐."

"네. 미국에 있어요. 미국 시빌 워 개봉이 한국보다 늦네요 ㅋㅋ"

"미국에선 이번 주에 개봉일 거야. 영화 재미있다."

"네. 여긴 내일 개봉해요. 어벤저스 2보다 훨씬 낫겠죠? 한국은 6월 중순 넘어 들어갈까 해요."

"시빌 워가 훨씬 낫다. 한국 오면 바쁘려나? 한번 들려."

"네 그럴게요 ㅋ"


내 퇴사와 시빌 워 이야기가 뒤죽박죽 된 톡을 잠시 주고받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퇴사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형은 이제야 내 소식을 알았구나.'


나의 취업 소식은 거의 이틀 안에 모든 친척들이 알았던 것 같은데, 퇴사 소식은 두 달이 지난 시점에도 다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았다. 취업 소식은 날개라도 달려있던 것 같고 퇴사 소식은 날개는커녕 발도 없는 느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래 in L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