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드론 업계의 절대 강자
칭다오 주요 관광지인 5.4 광장과 올림픽 요트 경기장을 끼고 있는 바닷가는 칭다오 거주 기간 동안 거의 매일같이 걷던 메인 산책 코스였다. 출퇴근도 그 길로 하고, 심지어 주말에도 매일같이 걸었다. 바닷가를 거니는 것은 늘 즐거우니까.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몇몇 젊은 사람들이 그 바닷가 근처에서 엄청나게 윙윙대는 비행 물체를 하늘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왜냐면 촌스럽게도(?) 한국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2014년에 한국에서 드론을 날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나는 못 봤었다.
무식하면 역시 용감하다고 했던가? 도대체 저런 게 뭐가 좋다고 비싼 돈 내고 저러고 있는지 사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날리다가 바닷가에 떨어지면 좀 아깝겠다는 생각 정도를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드론을 날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어느 날은 무슨 동호회 사람들인지 열댓 명이 다 같이 드론을 날리고 있는 것까지 보고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드론이란 과연 무엇인가? 왜 중국인들은 저렇게 드론을 날리고 하필이면 시끄럽게 바닷가에서 저러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한참 나중에야 중국의 어떤 기업이 드론 업계에서 완전히 장악했으며 그 기업이 정말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이번 편의 주인공 DJI였던 것이다.
DJI 역시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두고 있는 2022년 기준 세계 최대, 최강의 민간용 드론 기업이다.
DJI 사명은 기업의 정식 명칭인 다쟝이노베이션(大疆创新科技 다쟝촹신커지 Da Jiang Innovation Science and Technology)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명인 大疆创新 자체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1) 한계가 넘는 혁신 2) 미개척지에 대한 도전이라는 뜻도 있으며 선전 DJI 본사의 드론 전시장에는 DJI 大智無疆이라는 LED 글씨가 달려있는데 이는 '커다란 지혜는 한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大智無疆의 첫 번째 글씨와 마지막 글씨를 따서 大疆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지만 드론 업계에서의 위상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만 결코 작지는 않다. 화웨이나 비야디 같은 선전에서 시작된 제조 & IT 기반의 기업들이 처음에는 저만치 앞서 나가던 글로벌 기업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발전을 하다가 나중에 점차 중국 내수시장에서 쌓은 자본 및 기술력, 그리고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으로 해당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DJI는 다소 발전 과정이 신박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2006년 설립된 후 2012년 '팬텀'이라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상품인 완성형 드론 상품으로 초대박을 낸 이후로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2022년까지 쭉 선도자의 위치에서 누구에게도 자리를 내어 준 적이 없다. 1위를 자리를 차지한 이후 근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후발 주자와 기존 강자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지켜낸 최고의 자리임으로 이미 DJI의 실력 검증은 확실히 완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이점은 중국 내수 시장으로부터 갈고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선 승부 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매출의 대부분을 드론 최대 시장인 북미 지역에서 올렸다. 민간용 드론 업계에선 대부분의 경우 DJI가 가는 길이 바로 누군가가 처음 가는 길이오, DJI가 내놓은 상품이 시장에 나온 첫 제품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 다룰 예정인 바이트댄스의 틱톡처럼 중국 기업으로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중국의 새로운 기업군이라고 하겠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왕타오(汪滔, Frank Wang)는 1980년생으로 저장성 항저우 출신이다. 어렸을 적부터 원격조정(RC) 무선 모형헬기 덕후였다. (어쩐지 RC 매니아인 가수 서태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당시 원격조정 무선 모형헬기는 중국인 평균 월급보다도 훨씬 높은 가격이었으므로 왕타오의 부모님은 열여섯 살에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왕타오에게 비로소 처음으로 무선 모형헬기를 선물로 사주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갖게 되었으나 막상 직접 날려보니 컨트롤 자체가 많은 섬세함이 필요하여 학생이 다루기엔 상당히 어려웠지만 프로펠러에 맨날 긁히고 다치면서도 무선 모형헬기를 하루 종일 날리고 관련 잡지와 서적을 미친 듯이 읽었다. 이미 그때부터 어린 왕타오의 마음속에 무선 헬기에 대한 원격조정 및 자동제어에 관한 꿈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왕타오는 좋아하는 것과 직업이 연결된 소위 말하는 '덕업일치'된 행복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진로를 생각해봤지만 결국 본인은 뼈 속부터 모형헬기 덕후인 사실을 깨닫고 비행제어(Flight Controller, FC) 및 자동제어(그중 특히 호버링 기능, 자동제어를 통한 헬기의 공중정지 기능)를 연구하는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다니고 있던 화동사범대를 자퇴하고 MIT와 스탠퍼드에 원서를 제출하지만 모두 광탈, 그러나 다행히 홍콩 과기대의 전자공학과에 입학한다. 홍콩 과기대에서 왕타오는 FC 시스템 연구에 완전히 푹 빠진다.
사실 왕타오는 이미 꼬꼬마 시절부터 무선 헬기를 날리며 숱하게 땅바닥에 부딪혀 박살 냈던 경험으로부터 FC와 자동제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향후 DJI의 드론이 타사 대비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이 FC 성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왕타오의 연구가 처음부터 아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FC 성능의 차이는 바로 비행 안정성과 직결되며 항공 촬영을 위주로 날아가는 드론 입장에서는 비행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 첫 번째로 드론 자체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며,
- 두 번째로는 드론에서 얻은 촬영 결과물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왕타오는 FC 연구를 통해서 드론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학교 성적이 뛰어났던 학생은 아니었지만 왕타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낸다. 대학 시절인 2003년 무선 모형헬기 원격조정 시스템으로 두 차례의 로봇 대회에 참가하여 홍콩 대회 우승, 아시아 태평양 대회 3위를 차지하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그 후 2005년 왕타오는 동기 2명과 함께 원격조정 무선 모형헬기의 FC 시스템을 졸업 과제로 제출하고 열심히 매진하였고 연습 시에는 문제없이 비행을 마쳤다고 하나 불행히도 마지막 실제 시연 단계에서 헬기가 땅으로 추락하면서 'C'라는 낮은 점수를 받고 계획하던 미국, 유럽 유학 등이 모두 취소된다. 왕타오에게는 쓰라린 경험이었으나 아무리 시범 비행에서 문제가 없더라고 실제로 최종 단계(고객)에 인도된 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든 게 허사가 된다는 것을 뼈에 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비록 실패를 했지만 과기대 로봇기술과의 리저샹(李澤湘) 교수가 그런 그를 눈여겨보았고 그를 자신의 대학원생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2005년부터 왕타오는 다른 동기 2명과 함께 무선 모형헬기와 관련 FC 시스템 연구를 진행하여 결국 반년 후에 최초로 시험 비행에 성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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