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
한 달간 떠날 나라를 선택할 때, 까다롭게 많은 조건을 재고 또 재본다. 한 달간 돌만한 동선이 나오는지, 나라의 특징이 명확한지, 각 지역별로 색깔이 있는지, 음식은 입맛에 맞을지 등등.. 포르투갈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나라였다. 아주 오래전 스페인 여행을 할 때 포르투갈은 별 볼일 없는 빈약한 여행지라 생각해 제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포르투갈만 단독으로, 스페인보다 훨씬 더 많은 일정을 투자해 가게 될 줄이야. 아름다운 풍경은 말할 것 없고, 포르투갈만의 특색이 있는 게 참 좋았다. 와인 이야기, 한이 서린 파두의 소리, 건축물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아줄레주, 한국인 입맛에도 아주 잘 맞는 맛있는 음식, 그리고 친절한 포르투갈 사람들. 포르투갈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든다. 한 달도 부족하다고 느꼈던 포르투갈의 여행. 기회만 있다면 그 이상 살아보고 싶은 그런 나라. 포르투갈.
포르투 Porto - 브라가 Braga - 기마랑이스 Guimarães - 아베이루 Aveiro - 코임브라 Coimbra - 나자레 Nazaré - 알코바사 Alcobaça - 바탈랴 Batalha - 리스본 Lisboa - 오비두스 Óbidos - 칼다스 다 라인하 Caldas da Rainha - 신트라 Sintra - 카스카이스 Cascais - 에보라 Évora - 라고스 Lagos - 알부페이라 Albufeira - 파로 Faro - 타비라 Tavira - 올량 Olhão - 아르모나 섬 Ilha da Armona
Portugal Prologue
포르투갈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포르투. 포르투에서 열흘을 머물렀는데, 왜 그토록 사람들이 포르투에 감동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몇 번을 거닐었던 동 루이스 1세 다리. 그 위에서 본 도루강과 붉은 지붕의 마을 풍경, 강변을 달리는 전차,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이너리, 밤의 낭만적인 야경, 친절한 사람들. 세계 아름다운 도시의 장점만 모아서 압축해 놓은 것 같은 낭만적인 도시였다. 내가 다시 포르투갈에 간다면 오로지 포르투 때문이다. 루트상 포르투에 가장 먼저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아쉽다. 아껴놓고 마지막에 갔더라면 포르투가 더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 같은데.
포르투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도시 브라가. 사실 브라가 시내보다는 유명한 봉 제수스 수도원을 보기 위해서 갔다. 예술가가 공들여 지은 작품인 듯 우아하고 섬세한 성당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후 시간이 남아 브라가에서 오후 내내 머물렀는데, 가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 포르투와 전혀 다른 분위기. 탁 트인 광장이 인상적이었고, 오래된 카페 브라질레이라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해 질 녘 마을을 산책하고, 공원을 거닐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했다. 한 템포 쉬어가는 여행을 이곳 브라가에서 하게 됐다.
포르투도 좋았지만 주변의 숨어있는 작은 마을들도 아주 사랑스러웠다. 그중 기마랑이스는 딱 내 취향의 도시였다. 다이나믹하고 볼거리 많은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얌전하고 정갈한 하지만 결코 재미없지 않은 그런 도시. 여기는 포르투갈 초대 왕의 탄생지로, 입구에 Aqut Nasceu Portuga(포르투갈은 여기에서 탄생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요새와 성당, 그리고 공원 등 보통의 유럽 도시와 다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행복했던 곳.
운하 도시 아베이루. 포르투 당일치기로 많이 추천하는 도시다. 특히 코스타노바와 세트로 다녀오는 걸 추천해서 나도 그렇게 일정을 짰지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둘 중 한 곳만 골라야 했고, 아베이루를 선택했다. 아베이루에서 할 건 별로 없어 보여서 기대는 안 했는데, 의외로 즐거운 도시였다. 운하에서 색색의 전통 보트를 타고 아베이루의 핵심만 돌아보는 경험은 아주 좋았고, 무엇보다 컬러풀하고 아름다운 건축이 무척 많아서 사진 찍는 재미가 있었다. 아베이루 관광 지도에는 어떤 건축물을 봐야 하는지 별도로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특징 있는 건축물이 많았다. 대형 쇼핑몰이 있어 쇼핑하기에도 좋고, 운하 주변을 천천히 거닐어도 좋다. 아베이루의 대표 기념품은 소금이라 많은 가게에서 소금 패키지를 판매한다.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베이루니 꼭 사 오시길!
무척 기대했던 도시였다. 포르투갈 전통 음악인 파두의 오리지널을 접할 수 있는 곳, 그리고 해리 포터를 떠올릴 수 있는 코임브라 대학교, 아담한 마을까지. 그래서 여기에서 일정을 좀 빼서 3일을 머물기로 했다. 파두는 정말 좋았고, 해리 포터와 비슷한 교복을 입은 학생이 돌아다니는 코임브라 대학은 신비로웠다. 좋았지만, 기대가 큰 탓에 실망한 부분도 있었다. 포르투보다 레스토랑이 더 까다로웠다는 점과(1인은 거부하는 식당을 여기서 처음 경험했다. 가격도 상당히 센 편) 코임브라 학생들의 졸업 시즌 퍼레이드 중 몰려다니며 관광객에게 돈을 반강제로 요구하는 모습도 봤다. 그럼에도 코임브라는 아주 매력 있는 도시임에는 분명하다. 포르투에 이어 가장 인상적인 도시를 꼽으라면 코임브라를 넣지 않을 수 없으니.
나자레는 일정에 넣을지 말지 고민했던 곳이다. 포르투갈 서쪽 끝에 있는 이 마을은 파도가 크고 높아 세계적인 서핑 대회가 열리기도 하는 서핑 명소다. 여기를 다녀온 대부분 사람들도 원데이 서핑 체험을 위해 일정에 넣었다고들 했는데, 나는 서핑에는 관심도 없는 데다가 남부 지역에서 해변은 실컷 다녀올 예정이라서 딱히 나자레에 가고 싶진 않았다. 다만 다녀오고 싶은 수도원이 있는 마을이 모두 나자레 근처에 있어서 거점으로 삼기 위해 별 기대 없이 나자레에 머물게 됐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지를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다 마을이었다. 굳이 서핑을 안 해도 좋다. 높게 일렁이는 파도를 마냥 보고 있기도 하고, 언덕 꼭대기에 있는 마을에 해 질 녘 다녀온 것도 좋았다. 바닷가 근처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뽈뽀를 먹으며 노을을 본 건 잊지 못할 여행의 기억. 나자레에서 더 머물렀어도 좋았을걸.
나자레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알코바사. 알코바사 수도원은 포르투갈 여행 중 필수 코스로도 꼽힌다. 수도원 자체는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이었는데, 정작 유명한 건 따로 있다. 페드로 1세와 이네스 왕비의 무덤이 여기 있기 때문. 포르투갈 세기의 러브스토리로 불리는 두 사람의 무덤을 직접 볼 수 있어 좋았고, 그리고 조용한 수도원을 여유롭게 돌아보는 것도 좋았다. 나중에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보고, 알코바사 수도원이 떠올랐다. 비슷한 분위기지만 훨씬 더 좋았던 알코바사 수도원.
바탈랴 역시 수도원을 보기 위해 간 도시. 시간을 잘 배분해 알코바사와 바탈랴를 하루 만에 돌았다. 알코바사 수도원도 아름다웠지만, 개인적으로는 바탈랴가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가득 쏟아지는 예배당은 신비롭기까지 했고, 수도원 채플은 세밀한 세공과 하늘 끝까지 솟아있는 웅장한 건축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애증의 리스본. 워낙 볼거리도 많으니 부지런히 다녀야 하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내 여행 스타일과 잘 맞지 않는 도시였다. 유명한 명소 한 곳을 보려면 기다리는 데만 시간을 다 쏟아부어야 하고, 관광 구역이 넓다 보니 이동하는데 버리는 시간도 많다. 포르투와 다르게 북적북적한 트램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일주일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아서 리스본에 있는 내내 불평불만에 가득 차있었다. 여행 후반에서야 느긋하게 흘러가는 대로 여행해야 좋은 곳임을 알았다. 굴벤키안 미술관에서 우연히 본 음악회, 아말리아 공원에서 와인 한 잔, 각종 아줄레주를 볼 수 있는 박물관 등등..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나 벨렝탑보다 이런 일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 명소에 집착하지 않고, 여유 있게 돌아본다면 리스본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리스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은 오비두스.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꽃으로 장식된 벽과 파스텔 색의 집들 사이를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 거기에 오비두스의 특산품인 진자주 한 잔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니 기분이 한층 더 좋아졌다. 다만, 생각보다 볼거리는 많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작은 규모에 비해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치고는 더더욱 그랬다. 기념품이나 진자주 등을 모든 가게에서 내놓고 파는 것이 볼거리라면 볼거리였다. 게다가 꼭 가고 싶었던 성당 안 서점이 문을 닫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좀 남는 도시.
생각보다 오비두스를 금방 돌아봐서 시간이 남았기에 칼다스까지 들렀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조용한 마을이었다. 월요일이라 많은 관광지가 문을 닫아서 마음 내키는 대로 다녔다. 현지인들이 주로 산책하는 레오나르 숲 공원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포르투갈의 평화로운 오후 안에 내가 들어간 것 같아 행복하기까지 했다, 공원 앞에는 포르투갈의 유명 도자기인 보르달로 핀헤로의 모든 그릇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어서 독특한 모양의 그릇도 실컷 구경했다. 이 도시는 다른 날 또 오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돼 못 갔다. 칼다스 하면 따뜻한 햇볕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공원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때가 떠오른다.
리스본에서 당일치기로 많이 가는 신트라지만, 나는 3일을 여기에 있었다. 3일 정도면 넉넉하겠지 싶었는데 이게 웬일. 신트라를 꼼꼼히 돌아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동화같이 아름다운 페나 성, 신비로운 땅속 동굴이 있는 헤갈레이라 별장, 오래전 건축된 무어인의 성터, 그리고 신트라 궁전까지. 사실 신트라는 포르투갈에서 아주 인기 있는 도시라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장면만 상상했는데, 핵심 관광지 말고는 의외로 한적한 곳이 많아서 여유 있게 다녔다. 특히, 페나 성이 있는 공원은 옛 유럽의 아름다운 숲 속을 홀로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신트라에서 감기가 심하게 걸려 고생은 했지만, 그것만 빼고는 완벽했던 여행지.
신트라에서 에보라로 넘어갈 때 반나절 정도 시간이 떴다. 그래서 정말 인기 많은 여행지인 호카곶을 갈지, 비교적 한적하다는 카스카이스를 갈지 고민하다가 카스카이스로 결정했다. 카스카이스에 도착하고 나서, 시간이 반나절밖에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워졌다. 날씨가 예술이었고, 해변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해변 풍경을 하염없이 감상하다가 카스트로 기마랑이스 박물관에 들러 아름다운 음악의 방을 구경했고, 서점도 두 군데나 들렀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반나절이 금방 지나가 얼마나 아쉬웠던지. 아름다운 해변, 서점 속에서 느긋한 일정을 보내고 싶으신 분이라면 카스카이스로 가보시길!
작고 관광객이 없는 도시에 한 번쯤 머물고 싶어서 선택한 도시. 화려한 볼거리가 있진 않지만, 소소하게 지내기 좋은 마을이었다. 작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로마 신전, 사람의 뼈로 가득 차 있는 뼈 예배당, 에보라 대학 등 볼만한 것이 그래도 꽤 있었다. 할 게 없으면 광장을 돌아다니거나 골목 가게 기념품을 구경하는 일, 카페에 앉아 있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가장 좋았던 곳은 에보라 대학. 코임브라 대학의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아름다운 아줄레주 장식이 잔뜩 들어가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남부 지역의 첫 도시는 라고스였다. 이곳을 한 여름에 왔다면 좋았을 것을. 아름다운 해변이 많은 도시지만 내가 갔을 때는 날이 조금 추운 편인데다가 첫날을 제외하고는 비가 오거나 흐렸기 때문에 해변을 제대로 즐길 틈이 없었다. 레스토랑도 문을 닫은 곳이 많았고, 해변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며칠간 한 거라고는 비바람을 뚫고 해변가를 잠깐 걷거나 매일 마을 작은 광장에서 피리 부는 남자의 공연을 보는 일뿐이었다. 기대했던 베나길 동굴 투어도 추위와 싸워가며 멀리서 동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름다웠지만, 때를 잘못 맞춰 가는 바람에 충분히 즐기지 못한 곳이다. 언젠가 다시 간다면 멋진 해변에 누워 제대로 즐기고 싶다는 바람을 남겨놓은 도시.
라고스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주변 도시를 찾아보다가 가까운 알부페이라에 다녀왔다. 하얀 조약돌이 모여있는 듯한 마을 앞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사랑스러운 마을이었지만, 날씨가 문제였다. 흐린 날에 알부페이라의 풍경은 사진으로 본 것과 많이 달랐다. 따뜻한 날 해수욕을 하러 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곳이지만, 비수기에는 바다를 보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할 일은 없다. 바닷가와 마을 산책을 조금 하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나는 별로 즐길 거리를 찾지 못했지만. 한여름에 수영을 즐기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도시다.
남부에서 마지막 거점으로 잡은 파로. 비수기에는 사람들이 극찬하는 라고스보다 파로가 더 나은 것도 같다. 도시가 다른 남부 지역에 비해 큰 편이어서 나름의 할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파로에 도착해서야 날이 좋아졌기 때문에 제대로 된 남부 날씨를 체감할 수 있었다. 호스트와 사람들은 호탕했고, 우연히 런던에서 온 성가대 공연을 대성당에서 보기도 했다.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시디를 여기 서점에서 구입했다. 편하고 아늑했던 도시.
나름 괜찮았던 파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있기에는 무료한 감이 있어서 기차를 타고 타비라에 갔다. 남부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해변이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라 아기자기한 이 마을, 타비라였다. 마을 한가운데에 강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고, 강변을 따라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가득하다. 마을의 언덕 위에는 요새와 소박한 성당이 있었다. 광장에는 젤라또를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관광객들이 적당히 모여있었고, 강변의 카페에서는 한 연주가가 색소폰을 불며 분위기를 업 시켰다. 구석구석 모든 곳이 사랑스러웠던 도시.
올량은 작은 어촌 마을이다. 여기에서 유명한 건 어시장. 특별하진 않았지만 깔끔했고, 어시장보다는 옆에 붙어있는 전통 다과나 향신료를 파는 가게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물건 몇 개를 샀다. 올량에서는 근처 섬까지 가는 보트를 탈 수 있다. 사실 올량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충동적으로 아르모나로 향하는 보트를 타게 됐다. 마지막 포르투갈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깨끗하고 고요한, 세상의 끝 같은 해변은 처음이었다. 여기서 몇 시간 동안 모처럼 뜨거운 해 아래서 푸른 바다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 다시 올량으로 돌아와서는 샹그리아 한 잔과 함께 노을을 감상했다. 포르투갈을 지독히 떠나기 싫게 만든 마지막 도시.
포르투갈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