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으로

by 글똥

<소울 서퍼>를 보고 클릭하게 된 영화다. 서퍼광인 주연이 패트릭 스웨이즈(보니 역)라니 단번에 마음이 갔다. 여고 시절, 응팔처럼 단속하던 선생님을 피해 보았던 <더티 댄싱>의 댄서 패트릭.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버린 댄서. 그가 직접 부른 노래 'She's like the wind'를 따라 부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꿈결처럼 먼 얘기를 순식간에 낚아 올린 영화이니 바로 구매 버튼을 누를 수밖에.


무한한 기대감으로 이후 <시티 오브 조이>에서 만난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오늘 보게 될 <폭풍 속으로> 역시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만약 내가 서퍼였다면 다른 시각으로 이 영화를 평할 수 있었을까. 아콰 마린 색의 바다, 맑은 물빛과 파도가 나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린 <소울 서퍼>의 영향인지, 폭풍 속으로는 사실 기대 이하였다.


서핑을 위해 은행을 터는 서퍼들. 거칠고 어둡게 촬영한 바다와 서퍼들의 모습에서 내가 기대한 풍광과 서퍼의 낭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와 같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롱테이크로 보고 싶었다. 소울 서퍼에서 느꼈던 파도의 투명한 물방울이 카메라에 튕기길 원했다.


범죄 영화인 탓에 시각적인 편안함도 없고 내 마음이 젖을 만한 색채의 아름다운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100년에 두 번 볼 수 있는 호주의 파도 앞에서 만난 두 주인공, 경찰과 범인. 유타는 두 사람을 묶은 수갑을 풀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디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부분이 내게는 법과 질서를 뛰어넘어 그들만이 나누는 우정의 방식이라 생각됐다. 처음 둘이 만나 친구가 되었을 때 유타는 스카이 다이빙을 통해 이전에는 몰랐던 삶의 자유를 맛보았다. 창공을 날며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갇힌 세계를 한 번 벗어나 보면 많은 변수가 내게 다가온다. 사랑과 우정을 뛰어넘는 인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유타는 보디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이 영화의 백미는 풍광이 아니라 스토리다. 스치듯 지나가는 보디의 시선과 눈빛 그리고 보디를 위한 유타의 마지막 선택이다.


거침없이 바다로 돌진하는 보디. 좋아하는 서핑을 놓지 않고 보드에 몸을 얹고 파고를 향해 헤엄치는 모습, 죽음이 기다리는 것을 알지만 뛰어들 수밖에 없는 서퍼의 운명을 그린 영화. 어쩌면 우리 모든 인생은 그 폭풍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은행을 털어서 마련한 자금으로 서핑을 하는 좀도둑 이야기.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절도를 했다는 현실 뉴스에는 발끈하면서, 스카이 다이빙과 서핑을 즐기는 그들을 품는 자연의 광활함 앞에서 나는 어느새 그들 곁에 함께 있었다. 영화의 힘은 불쑥 그렇게 작용한다. 그들만의 방식과 우정이 위험하지만 왠지 끌리는 한 부분도 그래서일 거다. 자유를 향한 내 안의 갈망, 찢고 나갈 수 있도록 손 잡아주는 스카이 다이빙은 사실 좀 멋졌다.


그래서 영화는 좋다. 닫힌 시선을 열어 준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직장인의 지루한 날, 상큼한 레모네이드 한 잔 쭈욱 들이켠 기분이다. 은행을 터는 그들이 아니라 악착 같이 쫓아가 잡은 범인의 수갑을 풀고 바다에 양보하는 유타의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아서다. 작년에 비해 여름비가 적었고 무척 더웠다. 그래서인지 더욱 서핑에 관심이 가는 올여름, 2022년 버킷리스트로 올려 둔 서핑의 시간이 벌써 저만치 가을로 넘어간다. 아! 나는 과연 올 여름, 파도가 철썩이는 동해에서 호주에서 출발한 서퍼, 보디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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