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과 함께 제주에 갔다. 둘째 아이의 고등학교 엄마 모임이다. 아이들은 서로 잘 모르나 우리는 너무 친하다. 대체로 학부모 모임이 그러하다. 카페에 앉아 “제주 갈까”라는 말에 즉석에서 찬성하고 바로 표를 예매했다. 그렇게 11월 30일, 우리는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정은 자유롭다. 그리하여 함덕으로 향한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잿빛 하늘이 아쉽지만, 출렁이는 파도만 보아도 우리는 가슴이 뛴다. 여자 넷, 제3의 성을 가진 아줌마를 당할 자가 누구랴. 손끝이 시린 매서운 바람에도 한참을 서서 사진을 찍고 바다를 구경한다. 육지의 아낙에게는 한 일자의 수평선을 향한 로망이 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파도의 소리에 무한 위로를 받는다. 거침없는 파도의 돌진에 억눌렀던 내 안의 자유를 꺼낸다. 켜켜이 쌓인 내면의 구속을 밀물에 실어 바다로 흘려보낸다. 옷깃을 파고드는 바닷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다 멍’에 취한다. 주머니에 넣은 손끝이 암만 시려 봐라, 내가 이 해변을 떠나나.
풍경을 이기는 것은 출렁이는 파도보다 더 요동치는 주부들의 뱃속이다. 서둘러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제주의 뜨끈뜨끈한 모이세 해장국으로 속을 데운다. 식당 앞의 붉은 동백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여행길에 만난 한 그루의 동백은 그냥 나무가 아니다. 삶의 깊은 허기를 채워줄 양식이다. 우리는 동백보다 더 붉은 청춘이 여기 있노라 꽃들에게 들이대며 사진을 찍었다. 누구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했다. 오늘 우리들이 그렇다.
해변을 따라 무작정 달린다. 목적지가 없어 더 자유로운 여행. 무엇이든 보이는 곳에 차를 멈춘다. ‘오후 다섯 시’라는 간판이 꽤 마음에 든다. '파이브 어 클락 새도 five o'clock shadow'. 퇴근 무렵이면 면도한 자리에 다시 수염이 자라고 그림자가 생기는 시간, 오늘도 열심히 살았음을 확인하는 오후 다섯 시는 특별하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사는 샐러리맨의 고독이 움돋는 시간, 자녀 양육의 한 고비를 넘고 빈 둥지 증후군의 공허를 위로하며 마주한 오십 대의 오후 다섯 시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쁜 남자,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가 서 있을 것 같은 황량한 갈대밭,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일어나는 갈대들. 마치 그의 연인이라도 된 듯 상상의 언덕을 오르는 함덕의 객들, 인적 없는 바다의 거친 파도가 코 앞에서 넘실대도 우리는 두렵지 않다. 제주의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바다가 내 몸에 스민 흔적은 온통 푸르다. 이층 통유리 너머에서도 그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다. 바에 앉아 사납게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 금방 내린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파도의 끝을 살피는 것. 오늘 여행의 이유에 거침없이 밑줄을 긋는다.
새벽 비행기가 주는 선물이다. 일정 없이 떠나는 여행의 기쁨이다. 처음 떠나는 여자 넷의 모험은 이만하면 성공이다. 까다롭지 않고, 변덕스럽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으며, 자기주장을 과하게 내세우지 않고, 한발 물러설 줄도 안다. 불편함의 경계가 어디인지 알고 조심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의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보름, 내 화장대 위에는 함덕 해변에서 산 가방과 알록달록 바지가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하다 문득,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나는 무심결에 창밖을 내다본다. 며칠 사이 거센 바람이 불었다. 나는 혹시 우리가 남겨두고 온 추억들이 함덕의 바다를 건너 예까지 당도한 것은 아닌가 싶어 문을 열고 바람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