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아아악.
비가 내린다. 바람결에 온몸을 던진 빗방울들로 창문이 흠뻑 젖는다. 거칠게 들이친 빗줄기는 이내 둥글납작해져서 아래로 흐른다. 투명한 물 벌레 수백 마리가 구불구불 기어간다. 고층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비는 참 뾰족하다. 수직낙하하거나 사선으로 흩어지는 모든 비가 송곳이나 화살 같다. 팔뚝을 내밀어 그 비를 온전히 맞는다. 기분 좋은 충격이 피부로 전해진다. 속도는 있으나 가벼운 빗줄기의 점선은 말줄임표처럼 편하다. 쉼 없이 내리지만 각자의 길이와 부피로 상처를 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존재의 의미란 마치 이 빗줄기처럼 다가가야 불쾌하지 않음을 알게 한다. 불연속성과 연속성의 반복, 밀고 당기기의 고수, 바람 앞에 자신을 내어 주나 본질을 잃지 않고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위대한 자연. 빗줄기 앞에서 나는 인생의 고요를 경험한다.
최진석의 <건너가는 자>를 읽었다. 이 책에서 그는 고요에 대한 새로운 시를 쓴다. 그 중의 일부다. ' 날던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다리를 접어 쉬고 접은 다리를 펴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다시 나는 것이 고요다/날면서도 다리를 접고 쉬던 일을 잊지 않고 다리를 접고 쉬면서 날 일을 비밀스레 꿈꾸는 일이 고요다' 고요를 저장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역시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방법은 독서만한 것이 없다. 뇌의 혁신은 언제나 반갑다. 고요가 이런 것이라면 파격의 용기를 내 볼 만하다. 경계가 뚜렷한 고요와 소란에서 나는 소요라는 낱말을 다시 발견한다. 빗금 사색은 고요를 새롭게 보는 나만의 방식이다.
끊임없는 욕망으로 쉼 없이 읽기만 했던 젊은 시절의 독서가 있었다. 글쓰기도 있었다. 변칙을 허용하지 않는 직선의 비처럼, 계절을 벗어나지 않는 정확한 비처럼 나의 그 시절은 늘 쳇바퀴 돌듯 바빴다. 채우고 싶은 것이 넘쳐 늘 허기가 졌다. 열정의 끝은 오지 않는다. 사이사이 스스로 쉬거나 끊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결국 나는 질병으로 마침표를 찍었고, 이 후 쉰의 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단번에 넘는 것보다 쉬엄쉬엄 점선이나 빗금으로 둘러 가는 것이 때로 유용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지금 눈으로 읽는 청년의 독서에서 마음으로 새기는 중년의 독서로 건너가는 중이다.
그래서 빗금은 중년의 인생 표지판 같다. 바람이 자연에만 있는가. 인생의 순간마다 견뎌야 하는 갈등과 좌절의 바람은 빗방울의 갯수만큼 많다.
그럼에도 빗금의 끝은 모두 한결 같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서로를 껴안는다. 그리고 서로에게 스민다.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모든 비는 누군가를 만날 때 즉시 둥글어진다. 그리고 곧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이름으로 그 자리를 지킨다. 빗방울이 모여 빗물이 되고 빗물이 흘러 마침내 강과 바다를 이루고 다시 구름이 되어 비를 만드는 자연의 순환은 내가 비록 사선의 빗금이어도 빗방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빗물이 모여 강과 바다에까지 이르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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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비는 내린다. 바람 앞에 목적지가 흔들리는 인생도 고요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고요에 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