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모 Jan 07. 2023

[에세이] 옥상 위 달빛 뮤지션

그러니까 오늘 저녁 말이죠?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할 때 짜릿함을 느끼곤 한다. 그 상상이라함은 실로 형태가 다양한데 때로는 사진과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일 때도 있고 때로는 소소한 또는 대범한 행동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행동들은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나만의 스토리를 품고 있다. 


최근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러했다. 옥상 위에서 그(동네에 사는 동생,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고 한다)가 연주를 시작한다. 또 다른 그녀는 노래(동네에 사는 언니, 록발라드를 좋아해서 '리슨'을 즐겨부른다)를 부른다. 나? 나는 잘 치지는 못하는 기타를 꾸역꾸역 연주한다. 기타만 치면 섭섭하니까 노래도 곁들인다. 


사실 처음부터 이 이미지였던 건 아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동네에 사는 동생의 영상을 보았을 때, 그리고 우리(카공 멤버 넷)가 바닷가 근처에 있는 카페에 방문해 카공을 하고 해변가를 거닐 때. 나는 해맑게 웃는 그를 보며 바다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시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1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옥상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 아이돌 그룹의 여자 멤버를 보고, 옥상 위의 달빛 연주를 현실적 타협 지점으로 삼게 된 것이다. (욕심 같아서 얼음이 가득한 바다에 그를 데려가 바이올린 연주를 시키고 싶었으나 이건 뭐 내가 거장 감독도 아니고 너무 오바인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이런 내 생각을 고백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나는 동네에 사는 동생과 동네에 사는 언니에게 조심스럽게 회의를 제안했다. 소소한 송년회 준비를 핑계로 내 입에서 나온 단어는 바로 '옥상 위의 연주, 버스킹'이었다. "누나 제 정신이죠?" 라는 동생의 질문에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동네에 사는 언니가 "오늘 저녁 어때요?"라고 물었다. '오늘...저녁...오늘...?' "아, 그럼 그럴까요?" 나도 모르게 우리는 그날 저녁 내 머릿속의 이미지를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이렇게 추운 날, 그러니까 건물 옥상에서, '그러니까 우리 그렇게 만나기로 한 거 맞는 거죠?'


만나기로 한 시간은 7시 반이었다. 동네에 사는 동생에게 기왕 찍는 거 멋있게 나오게 정장을 입기를 권유했고, 언니에게는 나에게 마이크가 있으니 기대해 달라고 했다. 건물 관리측에 허가까지 받았다. 우리는 그렇게 완벽한 이미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25층 건물 옥상에 섰다. 기타, 담요, 노트북, 마이크, 카메라... 준비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내가 우선 동네에 사는 언니에게 노래를 부탁했다. 그녀는 '아, 바로 시작하기엔 좀 쑥스러운데'하며 바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 옥상 위에 조그맣게 울려퍼졌고 나는 야경 불빛과 함께 그녀를 사진으로 또 영상으로 담았다. 


동네에 사는 동생은 흐느적 춤을 추며 휴대폰으로 열심히 조명을 비췄다. 그녀의 차례가 끝나고 이제는 동네에 사는 동생의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됐다. 이 추운 날 정장 자켓을 입고 꽁꽁 언 손으로 연주를 시작하는 동네에 사는 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마치 작품 사진을 찍는 마냥...


이제 나의 차례였다. 나는 기타 연주를 시작했는데 손이 꽁꽁 얼어 도무지 연주가 되지 않았다. 사실 기타 연주를 한지 너무 오래되어 튜닝도 채 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게 옥상 위에 기타리스트는 짧고 강렬하게 막을 내렸다. 대신 담요를 덮은 채 노래를 시작했다. 촬영 감독은 어느덧 동네에 사는 언니가 되어 있었고 동네에 사는 동생은 또 다시 흐느적 춤을 추며 열심히 조명을 비췄다. 나는 프롬의 '영원처럼 안아줘'를 불렀다. 


그렇게 옥상 위에서의 달빛 콘서트가 막을 내리고 짐을 주섬주섬 정리한 채 우리는 따뜻한 카페로 향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을 움켜쥔 채 오늘 우리가 행한 나름 용기 있었던 시간과 그에 담긴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세계여행이라고 답하긴 한다. 삶은 어차피 머무르다 떠나길 반복하는 여행과 같고 기왕 여행을 하는 거 제대로 즐겁게 세계를 누비고 싶다. 그리고 음악과 함께하고 싶다. 오늘 내 머릿속의 이미지는 그런 내 꿈이 반영된 소소한 일탈이었던 것이다. 


사실 빙하와 함께 연주를 해보고 싶은 오랜 열망이 있었고 그와 같은 이미지는 아직 구현하지 못했지만, 나의 꿈을 위해 작은 걸음을 함께 내딛어준 동네에 사는 두 분에게 수줍게 "나와 놀아주어서 고마워요"라고 고백했다. "우리는 아무래도 운명인 것 같아요"라고도. 나의 이미지를 '오늘'로 끄집어 내주고 제정신임을 확인하면서도 '정장'을 꺼내입고 바이올린을 켜준... 두 사람과 함께 '옥상 위 달빛 뮤지션'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 새벽 4시의 연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