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모 Jan 07. 2023

[단편 소설] 헤어짐은 예견되어 있었다

분명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지만


그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이었다. 짧은 두 번의 만남 가운데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아마도 우리는 잘 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지금까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그에게 내가 과연 그 기준에 들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세 번째 만남을 취소한 건 나였다. 그와의 만남에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바쁜 스케줄에 치인 탓이었다. 그는 "알겠습니다"라고 단정하게 대답한 뒤 다음 약속을 잡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거절 의사를 표한 것이라 예상하고 자신도 딱히 그 이상의 만남을 이어갈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딱 거기까지인 인연,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3년 후 불현듯 나는 이상하게 그가 떠올랐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를 기억하시는지요?"라는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답변이 왔다. 물론 기억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랜만에 온 연락이 조금 의아하다는 듯 그는 약간은 반가워하면서도 무슨 용건인지 물었다. 딱히 별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의 근황이 궁금했고 차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뜬금없었다.


우리는 3년 전에 만났던 같은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예전의 만남에서도 그러했는데 그는 또다시 퇴근을 하고 우리 동네로 왔다. 어두컴컴한 겨울의 저녁, 3년 전 그와 만났던 카페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하지만 그 카페는 곧 문을 닫는다고 해서 길 건너 새로운 카페로 향했다. 나는 그에게 "오랜만이에요"라고 인사를 건넸고 그는 나에게 웃으며 "발목이 춥네요"라며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건넸다. 그의 발목을 바라보니 큰 키 때문에 양복바지가 한 뼘은 올라가 있었다. 오랜만에 꺼내 입은 옷이 너무 짧다며 그가 민망해했다. 나는 시린 그의 발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보처럼 그 순간 그와 사랑에 빠졌다.


카페는 3시간 뒤에 끝난다고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3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해 나갈 것이다. 그와 나는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주로 내가 질문을 던지면 그가 이것저것 답변을 길게 하는 식이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터라 조금 피곤하기도 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답변을 열심히 하는 그를 보자니 차마 피곤한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 식을 때까지 우리는 카페의 남은 시간을 꽉 채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랜만에 본 내가 어색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를 보며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 그를 좋아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3년 만에 본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내 감정이... 조금 뜬금없고 생소했달까? 이 감정은 대체 언제 시작된 건지 의아했다.


사실 맨처음 나에게 먼저 연락을 걸어온 것은 그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그가 아닌 내가 그에게 먼저 호감을 느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들킬 새라 또 이런 마음이 들키면 내가 약자가 될 게 분명함을 예감하면서 그를 끌어당기면서도 또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는 이런 복잡한 내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나에게 직진을 해오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 여덟 개의 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