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모 Jan 14. 2023

[단편 소설] 헤어짐은 예견되어 있었다 2


[오늘 오랜만에 재밌었어요] 


집으로 돌아가 그의 문자를 받고 생각보다 빠른 피드백에 당황했을 무렵, 거울을 보니 온통 넋이 나간 내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탓일까? 거울 속의 나는 잔뜩 얼어붙은 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그의 따뜻한 피드백이라니. 그는 좋은 사람이 틀림없다. 


망설이다가 [저도요] 라고 답문을 보내고 따뜻한 이불 속으로 낯선 영혼을 파묻었다. '오늘'은 우선 재밌었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 나는 그에게 거리를 두면서 또 한순간에 그와 가까워지고자 했던 나를 바라보면서 서툰 잠을 청했다. 


[잘 잤어요?] 다음날 그의 문자가 왔을 때 나는 조금은 안도했던 것 같다. 어제의 감정이 오늘로 이어지다니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네 출근 잘하셨어요?]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로 우리는 조금씩 '어떤 사이'가 되어갔다. 그는 평일 저녁 평소와는 다른 에너지를 소모한 탓인지 점심 시간에 차에서 낮잠을 잤다고 했다. 나는 그가 종종 그런 시간을 보내는지 또 그는 평소에 어떤 시간들을 보내는지를 상상하면서 그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음에 설렘을 느꼈다. 


그렇게 그와 나는 조금씩 대화를 이어갔다. 너무 섣부르지 않게 또 너무 느리지도 않게... 그는 오늘도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모른 척하면서 또 그가 조금 더 먼저 정확하게 다가와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또 회사 동료와는 어떤 사이인지 그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따뜻했고 또 기대가 되었다. [오늘 끝나고 뭐해요?] 그의 문자가 왔을 때 조금은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다. [별일 없어요. 끝나고 만날까요?] 라고 대답을 할지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려고요]라고 대답을 할지 고민하는 사이, 다시 그의 문자가 왔다. [오늘 일찍 끝나면 보자고 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퇴근이 늦어질 것 같네요]. 


그래서 우리는 다음날 만났다. 어느 낯선 카페였고, 그가 나를 보러 왔다. 어두운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그를 보면서 조금은 안심했다. 내가 어제 그리고 오늘... 갑자기 가깝게 느꼈던 사람이 저기 내 눈앞에 서있구나, 나를 만나러 왔구나 하는 안도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디로 갈까요?]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꽤나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음, 글쎄요?] 그의 모습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는데 그는 [맥주나 한잔 할까요? 지나가다 무난해 보이는 곳 아무데나 들어가죠]라고 했다. [네, 그래요]. 그를 만나면 이상하게 수동적이 되어버리곤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의아했다. 나는 꽤 자기주장이 강한 편인데 왜 그를 만나면 그가 하자는대로 해버리고 마는 걸까? 


그와 맥주 한잔을 하면서 그가 시킨 치킨 안주를 바라다보았다. [맛없어 보이네요, 그쵸?] 그는 겸연쩍게 웃었다. 맛집을 검색하는 것은 자신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는듯이. 그를 바라보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네, 맛있어 보이지는 않네요]. 솔직한 답변 그는 슬며시 웃었다. [저는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올 체질이 못돼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는 나에게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이 지금 나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또 앞으로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그렇군요]. 담담하게 말하면서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히려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어울리지 못하는 그를 감싸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나저나 그는 다짜고짜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런데 제 이름은 정확히 아세요?] 갑작스러운 돌직구에 그에게 벙찐 표정을 지을 무렵 그는 자신의 이름과 내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저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요]. 그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나를 만나는 것이 꽤나 괴로워보였다. 나는 [물론 이름 알죠. 그리고 관심이 없었으면 지금 여기에 나와 있지도 않을 걸요]. 그는 그럼에도 만족스럽지 않다는듯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보다 훨씬 어른이고 몸짓도 커다란 그가 내 앞에서 투정이라니.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잘 마시지 못하는 맥주를 노력해서 마셨다. 그는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슬며시 웃었다. 


[여기 몇 시까지 있을 거예요?] 나의 질문에 그는 나를 보면서 [집에 가고 싶어요? 아니면 다른 데로 옮길까요? 카페?] 라고 물었다. 나는 [오늘은 피곤해서 이만 집에 가고 싶어요. 같이 있기 싫다는 뜻은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문득, [... 키가 어떻게 돼요?] 그는 나에게 물었다. [166.6이에요. 그쪽은요?] 그는 소숫점까지 이야기하는 내가 재밌다는듯 [183.5요]라고 소숫점까지 덧붙여 대답했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가 잠시 멈춰섰을 때,  그는 가만히 내 흐트러진 앞머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손끝으로 가지런히 정리했다. 


우리는 각자 집으로 향하며 곧 다시 만날 것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 소설] 헤어짐은 예견되어 있었다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