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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카 Aug 25. 2023

무너지면 내 손을 잡아

여름 끝자락의 성장일기

많은 단어 중 내가 좋아하는 영어 단어는 Sarcastic

무수한 인스타그램 밈 계정들 중에서도 sarcastic humor 페이지는 나의 최애.


겹겹이 쌓여진 시간들은 어째서 자조적이고 회의적인 유머를 사랑해 마지못하는 나를 만들었을까


커가며 줄곧 나에게 붙은 수식어들 중 하나는 어른스럽다라는 말이었다. 그땐 그 말을 들으며 으쓱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애어른이라는 이 모순적인 말은 그다지 권장할 만한 성질이 되지 못한다.


학창시절에 나를 만난 지독하게 나쁘기도 놀랍게도 훌륭하기도 했던 여러 선생님들은 종종 내게 '너는 참 다르구나', '너는 어른스럽구나' 등의 말로 나를 칭찬하기도 했다. 내가 똑똑했던 것, 행실이 모범적이었던 애였던 것도 사실이었겠으나 돌아보면 어찌 나는 그들의 마음에 쏙 들어 버리는 법을 파악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20대 초반 처음 서울에 왔을 땐 모든 것이 새로웠다. 버스 기사의 인사 하나마저 신선하게 느꼈으니 말 다했겠지만, 십 대 후반 거의 모든 밤낮을 작은 교실에서 보낸 나로서는 마땅히 겪어야 할 문화충격이었겠다.


그러나 애어른에 먼저 따르는 말이 '애'인 것으로 말미암았을 때, 난 아직도 애였는데 침을 꼴깍 넘기고 양 주먹에 힘을 꽉 쥐듯, 그렇게 종종 긴장을 견뎌냈는데도 그저 그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잠깐의 설렘으로 시작한 서울에서의 몇 날 며칠이 이후 10년 동안 이어질 것이란 걸 몰랐을 때였는데도,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 창 너머로 올림픽대교 위의 성화가 보이기 시작할 때면 마음이 화끈거렸다. 불도 붙지 않은 성화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나? 도전, 인내, 성공, 공허, 증명, 외로움, 생존, 상실?


나는 혼자서도 줄곧 잘 해냈다. 나는 내가 강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말해보카 캐릭터 말풍선에 좋아하는 영문장으로 Fake it until you make it을 적었다. 귀여운 물고기가 외치는 듯, 인생은 연기야! 척하니까 진짜 잘 된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허구의 독립을 이뤘다.

그리고 그걸 이제 몇 해 더 가면 서른 정도 될 세월에서야 깨달았다.


아마 어떤 현자도 이런 수준의 자기 객관화를 하루아침에 이루지 못할 것이므로 오늘 여기에 그간 꽤나 마음 쓰며 자신을 지켜온 나에게 감사의 편지를 쓴다.


무수한 시간 캄캄한 어둠으로 회귀했을지언정 다시 기어 나와 햇빛을 쬐며 회복하려 노력했던 노력들. 그 간의 여정에서 그 어떤 것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나는 그 무수한 감정을 알았고 이전보다 성장했고 오늘 나를 일으켜 세울 진짜 힘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허구가 아닌 진정의 이름으로 쌓은 내면의 단단함으로부터 부디


무너지면 나는 내 손을 잡아라.



즐거워 보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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