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 여성의 날
내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그 날을 기념으로 3.4 38회 한국 여성 대회에 참석했던 짧막한 소감을 남기는 바다.
“단결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3.4 토요일 아침.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하러 서울 시청 광장에 도착했다. 부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비장애인 뿐만 아니라 한국여성의전화, 정의당, 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회,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조계종, 성평등 지지 외교관, 어린이, 동물,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성별,계급,나이를 막론하고 많은 존재가 광장 아래에서 부스마다 펼쳐진 이벤트에 참여했다. 서명을 하고, 정부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실 광장에 나서서 사람들과 대면하고 찰나의 순간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무척 오랜만이고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들이 많아 생소하기도 했다. 포스트잇 아래에 무슨 말을 적어야할까 고민이 오갔다. 어떤 말을 해야지 영향이 미칠까. 자칫 잘못 쓰면 이대남의 주류를(속된 말로 빻은 말) 드러내는 건 아닐까 부끄러웠다. 익숙하게 들었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았을 때, 아직도 공감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는 불온전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포스트잇에 적힌 글귀 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 분들도 있었다. 세상을 뚫고 나와 모두에게 전해졌어야 했던 말들이 광장에서 터져나오자 일제히 환호와 박수 그리고 공감이 오갔다.
페미니즘에 얽힌 교차성을 떠올린다. 기후위기, 성매매 피해여성, 육아 및 돌봄을 여성의 영역으로만 다루는 가부장적 가족, 임금격차, 노동계 성차별 및 장애인과 이주노동자들에게 가하는 혐오와 차별의 언행 등. 구조적 성차별이 만연한데 이를 방관하는 정부. 현실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고구마줄기처럼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데 아직도 갈 길은 멀어보였다.
하지만 부스 곳곳마다 활동가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활동가와 시민을 바라보며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맺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거나 포옹을 하거나 환호를 했다.
광장을 보았다. 누군가 깃발을 들자 깃발 아래 사람들이 모였다.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 깃발이 물결치듯 일제히 하늘 위로 펄럭거렸다. 수백 수 천명이 모여 이룬 연대의 물결이다. 옷은 전부 보라색. 보랏빛 물결이 춤을 춘다. 여성들이 수면 위로 나오려고 하자 짓누르려는 세상의 움직임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는다. 수면 위를 뚫고 솟아올라 존재를 드러냈다. 목소리 내면 시끄럽다고 목소리 닫으면 무시하는 모멸과 폭력의 세월을 견딘 그들이다.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는 자리가 생기자 그들에게 생기가 돋았다. 저마다 자리에서 빛내는 사람들이 모이자 연대의 물결은 윤슬처럼 일렁거리더니 한기보다 볕을 느꼈다. 곁이 모여 볕이 되었다. 마음 한 구석에 따스한 온기가 자라는 것 같았다.
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벅차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고 쭈뼛거리던 몸의 긴장이 풀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 무리의 대열에 합류하여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오후에 약속이 있어 거리 행진까지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저들이 세상을 향해 위풍당당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보랏빛 물결이 흐르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라!’
서로 다른 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무대 앞에서 ‘단결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라는 구호를 외치자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광장을 채웠다.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들이 없도록, 홀로 외로워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들렸다.
현실은 여전히 해쳐나가야할 것들로 가득하다. 후원금이 부족하여 행보를 나아갈 수 없는 집단도 있고 그들을 보며 응원하고 관심을 알리는 일은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보탬이 되지 못해서 아쉬움이 가득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피드로 업로드된 행진 영상을 보며 그들은 굴하지 않는 결기가 느껴졌다. 더욱 용기와 응원을 보내고 미약한 도움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돕고 싶어졌다. 메시지를 선포하며 보랏빛 물결을 일렁인 채 위풍당당 행진하는 이들이 더욱 넘쳐 흘렀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