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맞은 고생의 서막
처음으로 살았던 집은 보자마자 그래! 여기야 싶어 바로 계약을 했었다.
우리는 집을 구할 때 가장 최우선 조건은 'Nyuh Kuning에 위치한 집' 이었다.
산책이라는 뜻의 '잘란잘란' 으로 유명한 우붓이지만, 우붓은 생각보다 잘란잘란이 쉽지 않다.
시내를 제외하고는 인도가 거의 전무 했으며, 다들 내일은 없는 듯 오토바이와 차를 운전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1년 살기를 하기 전, 우붓에 잠시 한달간 살면서 이 부분이 꽤나 당혹스러웠다.
우리가 상상한 우붓 한달 살이는 매일 아침 아이들과 손 잡고 푸른 논을 보며 '잘란잘란' 하는 거였는데 말이다.
아... 우붓은 안되겠다 싶은 찰날에
우연히 우붓의 몽키포레스트에 맞닿아 있는 'Nyuh Kuning' 이라는 동네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네에 그만 반해버렸다.
길에 버려진 쓰레기가 거의 없이 깨끗하고 질주하는 차가 없던 작고 아담한 동네.
동네 한 복판에 커다랗게 위치한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고 운동장옆 커다란 반얀트리 아래에서는 동네 사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네에 가득찬 꽃나무들 덕분에 좋은 향이 나던 길들.
이 곳이라면 우붓을 즐기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몇 달 뒤 다시 우붓에 1년을 살겠다며 돌아왔고 Nyuh Kuning에 집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문제는,
Nyuh Kuning은 우리한테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가족단위의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동네였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걸어서 슈퍼와 식당, 세탁소 그리고 카페를 갈 수 있는 동네.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운동장이 있는 동네.
수요와 공급 곡선이 한 쪽으로 치우쳤을때 상상 가능한 모든 것들을 이 동네에서 볼 수 있었다.
Nyuh Kuning이 워낙 작은 동네인지라 외국인 대상 렌트하우스가 많지 않았던 뿐더러 렌트비용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잡혀있었다. 하지만 렌트비용 대비 집상태는 매우 안 좋았다.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집 주인들은 굳이 돈을 들여 집을 제대로 짓거나 수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둥 네쪽 만 있고 초가를 겨우 얹은 오두막부터 곰팡이로 뒤범벅이었던 집까지,
몇 나와있지 않지도 않은 집들을 보러 다니며 Nyuh Kuning에 집을 구하는 걸 포기해야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찰나, 바로 우리가 첫번째로 살던 바로 그 집을 발견했다.
곰팡내와 눅눅한 공기로 가득찼던 집들과는 달리 밝은 빛이 들어오던 2층짜리 집.
제대로 된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던 집.
운동장에서 걸어서 30초 거리의 완벽한 위치.
우리는 방 2개짜리면 충분했는데, 별채 하나가 더 딸려 있어 공간이 필요 이상으로 넓은게 걸렸지만,
그래도 Nyuh Kuning에서 이렇게 좋은 위치에 이러한 상태의 집은 구하기 힘들 거란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가격도 매우매우매우 저렴했다.
러시안 가족이 2년을 계약하고 살 다가 직접 살 집을 짓고 나가느라 남은 11개월의 임대 계약을 넘겨받는 조건이었다. 집주인과 직접 재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를 넘겨받는 방식이라는게 왠지 걸렸지만, 우붓에서 통상 이뤄지는 임대 형태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하루를 고민한 후 계약을 하고 이사를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10개월 간의 고생문이 열렸다.
음... Nyuh Kuning 집에서 겪은 걸 어디서부터 나열해야 될라나...
누수 전혀 없다고 하는 러시안 가족의 말을 믿고 이사 들어온지 4일만에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
잠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와서 거실 문을 열었더니 거실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천장에서 비가 좌라락좌라락 새고 있었던 것이다.
거실이 발이 잠길 만큼 물바다가 되고, 이 것때문에 거의 1주일을 고생해야 했다.
비가 연달아 며칠 오는 날이면 벽에 곰팡이가 잔뜩 슬었다.
며칠 연달아 폭우가 내릴 때면 벽에서 아예 물이 흐르기도 했다.
고마운 이웃분이 주신 아이들 동화책도 하얀 책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책을 살려보겠다고, 해가 나는 날에는 책을 닦아 마당에 널어보기도 하고 식초로도 다 닦아보기도 했지만
우리집의 습기를 책들이 도저히 버텨내지 못해 결국 대부분을 버려야만 했다.
나중에 러시안 가족이 창고에 두고간 페인트 통들을 보고서 싹 새로 페인트 칠을 해서 누수 자국과 곰팡이 자국들을 없앤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수와 곰팡이 말고도 수많은 이벤트가 우리를 기다렸다.
부엌에선 틈이 있는 모든 곳에서 바퀴벌레가 기어나와 근 한 달을 바퀴벌레 퇴치에 애를 썼다.
매일 아침 부엌 문을 열 때마다 배를 뒤집고 죽은 바퀴벌레 3~4마리가 우리를 반겼다.
물탱크에 박쥐가 빠져죽은 지도 모르고 한동안 썩은 물로 세수하고 목욕하기도 했고,
녹물이 쏟아지는 온수보일러 덕분에 한동안 온수도 못 쓰고 낮에 해에 물탱크가 뜨거워졌을때 잽싸게 샤워를 하기도 했다.
게다가 너무 오래됐던 집이라 거의 매일같이 수리가 필요했다.
화장실 파이프가 터져 벽으로 물이 흐른다던지, 기와가 떨어져 기와를 수리한다 던지 그런 것 말이다.
이런 수많은 수리들을 집주인이 알아서 해줬으면 참 좋았을려만...
러시안 가족의 임대계약을 인계 받은 거라 집주인은 집을 전혀 수리해주지 않았다. 이미 돈을 2년치 선불로 다 받은 상태인데 수리를 해줄리가 없었던 거다... 하... 이런...
매번 이벤트가 터질때마다 도와줄 사람을 찾던지 아니면 우리가 직접 집을 고쳐야 했다.
그것도 우리의 돈으로 말이다.
뭐 좋게 생각하자면...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 때에는 필요없었던 설비능력을 얻게되어 생존 스킬은 아주 조금 높힐 수 있었다.
그리고 집은 생각보다 너무 컸다. 별채까지 딸렸던 2층짜리 집의 1/3만 쓰고 있었다.
집의 구조가 어린 아이를 키우기에는 너무 불편했다.
부엌이 바깥에 분리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명이 부엌에 있는 동안 한명은 아이들을 봐야했다.
한명이 부엌일을 하면서 아이를 보는 동안 다른 한명이 잠시 작업을 하거나 하는 여유 시간은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둘째가 다니기에 가팔랐고,
2층 복도는 느슨한 철제 난간으로 가드가 되있었기 때문에 아이들끼리만 2층에 있을 때는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또한 하루 이틀이라도 청소를 게을리하면, 집은 도마뱀 똥과 거미들이 먹어치우고 난 벌레들의 잔해들과 물때들이 올라왔다.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듯 했다.
이런 구조 덕분에 '짬짬이 만드는 작업 시간'이 현저히 줄었던 데다가, 심지어 그 짬짬이 난 시간을 집 수리와 청소에 쏟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서 인지, 3개월이 지나자 집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집에 왔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2층 창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예뻤고, 심난하던 부엌도 아기자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다니는 동네 산책이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일을 하기에는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집이었다.
결국 우붓에 더 지내기로 결정한 우리는 새로운 집을 찾기로 했고, 더 이상 볼 집이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집을 찾아 헤맨 후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게 됐다.
여전히 Nyuh Kuning에서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슈퍼에 가고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게 그립긴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이 집에 와서도 전혀 생각치 못한 문제를 겪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자 그럼, 지난 고생을 바탕으로 만든 우붓 집 구하기 가이드를 시작해보자!
예전에 남겨놓은 첫번째 집 고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