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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주영 Sep 28. 2018

아이와 함께 디지털노마드

시작!

서울 신도림에 둥지를 튼지 4년, 2번째 전세 만료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

미세먼지로 가득한 서울 하늘이 숨이 막혔다.

점점 일상에 매몰돼가는 하루하루가 지치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컴퓨터만 있다면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우리였지만,

‘어디서나’ 일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서울이었다.


빡빡하고 날이 서있는 일상을 전환하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

실험해보고 싶었다.


정말 컴퓨터만 있다면 어디서나 일하면서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가?

아이들과 함께 일상의 소박함을 느끼며 한템포 느리게 살아도 되는가?


그렇게 우리 가족은 전세만료와 함께 캐리어 4개에 짐을 싸고 발리의 우붓으로 훌쩍 떠나왔다.

후훗, 우붓으로 오면 한템포 느리게 여유로운 삶을 살 줄 알았지...

우리가 살았던 아담한 예뻤던 동네의 아담하고 예쁜 카페
아기자기한 모습이 편안했다.

우붓에 와서 어느 것하나 우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볕이 잘 들고 밝아 계약한 집에서는 10개월간 곰팡이와 누수와 싸워야 했고,

미리 알아보고 온 아이들 학교는 정원이 차 보낼 수가 없게 되버려 동분서주했고,

그나마 학교를 보내고 보니, 수많은 공휴일들과 방학 덕분에 등교일이 일년의 절반밖에 안되는 걸 깨닫고서 기함을 했다. 우리는 언제 일하란 말인가.

이 와중에 반쯤 당한 비자연장 사기, 화산분화와 지진등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빼곡히 치고 들어와 혼을 빼놓았다. 


우붓에서 느리고 여유롭게 살 줄 알았는데, 매일 매일 녹초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우붓이 좋았다. 

너무 지쳐 저녁만 되면 나가떨어졌지만 왠지 우붓이 좋아 떠날 수 가 없었다.


하루라도 손 안 가는 날이 없는 집이었지만, 2층 방 창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초록이 한숨 돌리게 했다.

새로 찾게된 작디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은 행복해했고 나 역시 이 학교를 사랑하게 됐다. 

예상치 못한 보스몹 같은 사건 사고들을 처리하면서 우리의 생존스킬이 늘어나고 있다며 시원한 빈땅 한병을 손에 들고 서로의 노고도 치하한다. 

이 곳에 와 새로 만나게 된 이웃들이 우붓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매일 같이 손을 봐야 했던 집, 궃을 일을 함께 해준 꾸뜻아저씨
매일 같이 손 댈 일이 생겼던 집이었지만,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순간 '아 좋다' 라는 마음이 들곤 했다.
대문 옆 꽃나무가 예뻤던 우리의 첫번째 집
언제나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우붓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급할게 없기 때문에 다른 이를 급하게 재촉하지 않는 여유로움.

언제나 아이들에게 미소를 띄며 여유롭게 기다려주는 사람들.

전세계에서 온 장기체류자들과 힌두와 공동체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현지인들의 묘한 조합.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며 나오는 그 독특한 분위기, 관용.


동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힌두의식
길이 너무 막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힌두 의식 행렬이 지나갔다.


새로 오픈한 카페에 신의 축북을 기원하는 의식
이렇게 도로 하나를 막고 힌두의식을 치르는 장면을 보기도 한다.
전세계 채식주의자들이 몰려오는 덕분에, 맛갈나는 채식 요리들도 만날 수 있다.

지난 1년 반동안 그토록 꿈꾸던 '매일 색다른 하루'를 평화로운 우붓에서 전쟁 같이 보내며,

아이들과 함께 디지털 노마드로 산다는 건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흘러가는게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배웠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했음에도,

혹시 아이와 함께 디지털 노마드를 준비하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우붓을 한번 경험해보셨음 하는 이 마음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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