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나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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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년 전 나는 무직이었다.
패션회사를 퇴사 하고 한 달 뒤, UI/UX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학원에 들어간지 얼마 안됐을 때 였다. 그 땐 사실 나에게 UI/UX 디자인이란 어떻게든 이 분야를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맞지 않던 패션 회사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던 내가 꿈꾸는 라이프는, 이제는 조금 웃기고 낯간지러운 단어가 되어 버린 '디지털 노마드'였다. 시공간에 매우 제약을 받았던 나의 이전 직업은, 유연성이라곤 없었다. 새벽같이 출근에 언제 끝날지는 그 때의 상황에 의존해야 했다. 변수가 많아 몸으로 떼우던 날의 연속은 이 삶과 정 반대 방향의 라이프를 꿈꾸게 했다. 그것이 내게는 디지털 노마드였다. 아직 가고 싶고 하고 싶은게 많은 나는 휴가만 바라보며 한국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도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직무. 그게 뭘까, 그 이상적인 디지털 노마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구글링하기 시작했고,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 위한 7가지 직업을 봤다.
'아,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은 디자이너구나. 웹이나 그래픽 디자이너. 그래 나는 이걸 해야겠다. 근데 UI/UX가 돈을 더 많이 받는다던데? 그럼 그거 해야겠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내가 UI/UX에 관심을 갖게 된 시초였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한다니. 뭔가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다짜고짜 회사에는 퇴사를 통보해버렸고 나는 학원을 끊어 놨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조건 2019년 하반기에 해외로 나가야만 한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해버렸다. 아무 대책도 없이, 무조건. 사실 회사다니면서 학원을 다녀 볼 수 있었을 텐데. 혹시나 UI/UX라는 것이 또 나랑 안맞으면 어떡하려고? 대책없이 질러버린 퇴사 통보에 이미 기안까지 결재된 상태였다.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이제 무조건 UI/UX를 좋아해야만 했다. 4년 동안 공부한 패션계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강이 되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백수는 다니던 학원 도중에 또 다른 일을 벌였고 좋은 기회로 발리로 잠시 피신을 가게 됐다. 난생 처음 갔던 발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원격 근무로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던 숀이라는 미국 애한테 이런 저런 신세 한탄을 했다.
"나는 전의 회사를 그만뒀고 이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어. 나도 너처럼 원격근무를 하고 싶어서. 지금 나는 아무 것도 없는 바닥의 상태야.한국에 돌아가서 당장 과제도 해야 되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야 돼. 직업은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숀이 답했다.
'"할 수 있어! 너가 6개월 뒤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너가 나처럼 여기 발리에 와서 살지도 모르는 일이야. 내 눈을 봐봐. (정적) 넌 너가 원하는 뭐든지 이룰 수 있어. 그냥 너가 할 일을 계속 꾸준히 해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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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특이한 애가 다있지, 허경영인가 싶었다. 그리고 6개월 뒤 나는 정말 UI/UX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
그 때는 몰랐는데, 글로 정리하다 보니 숀이라는 애가 했었던 말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깨닫게 되니.. 신기해 해야 되는 건지 그냥 웃어 넘기면 되는 걸지?
물론, 바로 UI/UX 디자인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였다.
디자인 전공도 아닌 나는, 그래도 포토샵과 일러스트는 잘 다루던 의류학과를 나왔기에, 정말 아주 허름한 동네 회사를 친구 소개로 알게 돼서 '재택근무' 단순 디자인 작업을 했고 그게 디자이너로서의 미미한 시작이었다. 집에서 근무하고 시간당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그래도 최소한 내가 꿈꾸던 일은 할 수 있네! 하면서, 큰 회사를 나왔던 허무함을 달래기도 했다.
아무 일이 없던 바닥 상태에서 한 것은 글쓰기였다. UI/UX 디자인이란 것을 알기 위해 여러 강연을 갔다가 글로 정리하고, 인터뷰를 듣고 글로 정리하고, 영상을 보고 글로 정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부터 했다. 브런치에 게시했고 그런 글들을 보고 연락이 오는 곳이 생겼다. 그렇게 조금씩 구독자가 늘기 시작했고 내게도 어떤 기회들이, 제안, 반응들이 소소하게 나마 생겼다.
그러다가 E-Learning 관련 IT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하게 됐다. 게임 UI 그래픽도 만들고, 갑자기 아예 게임을 디자인해달라 해서 잠수함, 보석함도 그리고 여러 귀여운 소스들도 그렸다. 내가 원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프리랜서로 작게 나마 스타트업에서 UX/UI 디자인을 시작해 볼 수 있었다. 이쪽 실무 경험은 전무했지만, 그래도 포트폴리오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나를 뽑아주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테스크를 하듯, 그렇게 이 분야의 맛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한창 주 7일 일할 때 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실제로 해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게 아주 작은 일일 지라도. 그렇게 하나 둘 쌓여 조금씩 내 업무가 인정받고 다룰 수 있는 영역의 범위가 커지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내가 정말 전 회사를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 때의 나를 위로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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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하반기에 해외로 나갈 준비를 했고, 호주를 선택했다.
그 전까지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해외 석사 준비, 해외 인턴 여러 매체 등 현실적으로 내가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두드렸고 결과는 다 좋지 않았다. 사주팔자를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아저씨가 한국에 있으면 하나도 안풀린다고, 무조건 해외로 나가야 된다고 그랬다. 해외로 나가야 반전이 생긴다는 말. 정말 한국에서 내가 시도하는 것이 하나 같이 다 되지 않았다. 대학생 때는 뭐만 하면 척척 잘 붙어서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는데, 정말 암흑 시기인 건지 난 아무 것에도 붙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였다. 아무도 나한테 탈락을 줄 수 없는, 순전히 내가 다 준비하면 나갈 수 있는 비자. 다들 웬 호주에 가는지, 농장에서 일할 거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갑자기 웬 호주를 가냐는 어리둥절. 난 유럽을 좋아해서 당장 유럽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유럽 비자 카드는 나중에 써야되니까, 가장 쉬운 호주를 선택했다. 영어를 쓰는 국가이기도 하고 가족들도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안 갈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감사히도 그동안 일했던 스타트업과 원격근무를 지속하기로 했고, 그렇게 나는 소소하게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를 실현해볼 수 있었다. 10월부터 약간의 실험기를 거쳤는데, 처음에는 일본 여행을 갔을 때 회사와 화상회의를 시작했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화면을 즉각적으로 공유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브리즈번에 도착해서 본격적인 원격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친구 집이 와이파이가 안돼서 작업하던 파일이 날라갔고, 아침 일찍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로 달려가서 작업을 막 하던 나를 보고서는, 아- 그 말로만 듣던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가 시작됐구나. 하면서 이상적이지만은 않은 현실을 실감했다. 그리고 또 퀸즈타운의 에어비엔비에서는 책상도 없어서 침대에 환경을 마련하고 쭈구려 앉아서 회의를 하기도 하니, 아 이거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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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여행을 마치고 브리즈번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의 품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집에서 업무를 하고 회의도 하는 나날이었다. 해외에 있긴 하지만 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가끔 도서관에 가기도 하지만, 집이 제일 편했다. 내 모든 포트폴리오를 영어로 만들고 있었다. 글로벌한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니까. 가끔씩 호주의 회사에 지원도 하고, UX밋업에 나가 보기도 했다. 인비전에서 디자인 성숙도에 대한 강연을 듣기도 했다. 관련해서 브런치에 게시하려고 정리했지만 마무리를 할 엄두가 안난다. 브리즈번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UX 관련 밋업도 있었고 강연 내용도 좋았다. 비록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내가 해외에 있는건지 뭔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밋업을 나가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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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로부터 1년 뒤 지금,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었다.
UX디자이너를 넘어, 뭔가 총체적인 브랜딩을 아우르는 하나의 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아마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는 건 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 몇 년 정도 뒤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 1년 만에 나는 그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고, 플러스 디지털 노마드로서도 살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것이 나의 계약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년에 출시될 글로벌 프로덕트를 멋지게 디자인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나는 현재 시드니에 있다. 시드니는 너무 복잡하지 않을까 싶어 몇 주만 있다가 멜버른으로 가야지 싶었는데, 브리즈번에서 시드니로 10시간 차타고 입성하자마자, 시드니도 너무 좋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시드니에서 몇 개월을 살아볼 예정이다. 그리고 4월에는 미국에 잠시 다녀올 예정이며, 다음엔 다시 멜버른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일할 것이 넘쳐서 제대로된 관광은 하지도 못한다. 관광객 타입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냥 집앞에 잠깐 산책을 나가거나, 또 신나게 놀기위해 어느 날은 하루종일 일만해야 할 때가 많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삶이 이해가 안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자유'다. 시간 관리만 잘 한다면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효율이 가장 잘 나는 시간에 작업할 수 있다. 잠깐 누웠다고 뭐라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에게 압박을 준다. 일을 안하면 미치도록 불안하니 저절로 잘 하게 된다. 나는 이게 매우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패션회사에서 일했을 땐 너무 쓸데없는 것에 삽질을 많이 했다.
사실 아직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삶이 불안정 할 순 있지만 나에게는 이 라이프가 잘 맞는다. 한치 앞이 예측된 삶에는 너무나도 답답함을 느끼는 내 성향 때문이다. 여기서는 모든게 내 선택에 따라 다양한 변수와 함께 정말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 매일 일어난다. 갑자기 알게된 친구랑 브리즈번에서 시드니까지 10시간을 차타고 올줄도 몰랐고, 에어비엔비 호스트가 갑자기 크리스마스 선물로 문앞에 와인을 놓고가는가 하면, 내일은 또 현지인 친구들과 웨어하우스 파티를 가게 되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일하는 것도 사는 것도 즐거운 요즘, 1년 간의 여정을 정리해 보면서, 정말 사람이 상상하던 일을 간절히 원하고 그냥 내가 해야할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정말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내가 이런 문장을 쓸 줄은 정말 몰랐다!) 혹시나 내 여정에 누군가는 희망을 얻어서 묵묵히 해야할 일을 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보내올 수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노마드 디자이너로서 어떤 일상을 보내고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는지, 장단점은 무엇일지, ‘나’라서 들려줄 수 있는 얘기도 많이 남겨보고자 한다. :)
Photo : @_vivishi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