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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Dec 11. 2016

바느질하다 말고 딴생각 중......

침선 수필

친정 머머니께서는 아직도

'그 많은 일중에 하필이면 손바느질을 하니,  눈 빠지게......'라는 말씀을 하신다.

내가 만들어 놓은 조각보들을 본 친구들은

'참 예쁘다'는 칭찬과

'눈은 괜찮냐?'는 물음을 같이 한다.

또, 수백 개의 작은 조각들과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바늘땀을 본 사람들은

'이거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느냐?' 고 묻는다.  


불과 십오륙 년 전 즈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요 근래에는 일 년이면 세상이 확 바꾸고도 남을 정도로 빨리 변하다 보니 마치 아주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같이 느껴진다.

한국은 매우 트렌디한 나라이다.

특히 서울은 도시 곳곳이 불과 몇 달 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매 순간 급변하는 곳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실리콘 밸리가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못해 아예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도되고 매일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는 곳이지만,  서울도 그에 못지않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가장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하던 그 시기에 한국에 있었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내 생애 가장 극적인 일들을 겪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와 몇 년을 지내다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일하고 싶었던 그때, 몇 년의 공백기를 지내고 다시 나가보려던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버려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모두들 최첨단 시대의 기술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어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려던 나는, 내가 가진 생각과 경력과는 상관없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한계로 인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내가 아이 기저귀를 채우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놀이터에서 같이 자전거를 타는 동안, 손으로 도면을 그리고, 텔렉스를 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디자인실과 공장을 오가면서 일을 하던 시절은 가버리고,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고 이메일과 핸드폰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시대가 되어있었다.    

직장 다니던 시절 그 흔한 삐삐 한번 사용하지 않고도 잘만 지낼 정도로, 지나친 아날로그 취향을 가진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새로운 용어들만 들어도 겁이 났고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고 일어나면 변해있는,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나 속도를 조금이나마 따라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다.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이 세상이 정말 어디까지 변할 것인지 내가 상상할 수도 없구나…..

잠시만 한눈을 팔면 이해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새로운 일들이 무수히 생기는구나……

공상 과학영화에서나 나오던 그런 일들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버튼 하나로 모든 것들이 너무 손쉽게 복사되고 또 순식간에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아무나 복사할 수 없고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그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래된 천조각을 모으고,  손바느질을 하고,  보자기를 만들게 된,  그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첫날, 조각보 만들기 수업에 등록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그 수업에서 한 가지씩 배워 와서 집에서 손으로 바느질을 하다 보니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일주일이 금방 갔다.

때로는 끼니도 잊고, 때로는 잠을 자는 것도 잊고,  하루에 예닐곱 시간씩 꼬박 손 바느질하는 데에 시간을 들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시작한 조각보 만들기가 지금까지  십 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비단은 물감이고, 바늘과 실은 붓과 같다.

손바느질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경험들, 생각들, 삶의 요소들이 다 바느질로 그리는 그림의 주제가 된다.  

옷을 만들고 남은 비단 조각들을 버리지 않고 이어 만들던 전통 조각보가 그 조각천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모양들이 합쳐진, 의도하지 않은 자유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나는 멀쩡한 비단을 잘라 조각으로 만들어 내가 의도한 형태로 다시 만든다.

그러다 보니 나의 보자기는 가끔

'이게 보자기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전통 조각보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기법은 모두 전통 조각보를 만들던 그 옛날 규방에서 나온 것이다.


몇 달이 걸려, 어떤 때는 아예 해를 넘겨 꼬박 작업을 해 겨우 보자기 한 장을 만드는 이런 일은 효율이나 능률성 같은 가치로 따진다면 정말 답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바느질을 시작한 지 십 년을 훌쩍 넘기고 이 신속하고 급변하는 세상 한 귀퉁이에서 한 땀 한 땀 미련하게 무수한 시간을 보내보니, 알아진 것이 있다.

사람이 어떤 일이든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낼 때, 그 성취도나 결과물의 미적,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바느질을 하면서 보낸 그 많은 낮과 밤들, 그 시간이라는 공간 안에 바늘을 들고 앉아 있었던 나 자신이, 그 시간들이 진정 의미가 있었다.

이제 내 눈에는 창가에 걸린 조각보의 촘촘한 비단 바늘땀들 마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시간들이 보이고, 그 시간들에 끌린다.  

그래서 또다시 비단을 자르고 바늘에 실을 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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