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내일이면 산티아고 도착이다. 오늘 몬테 도 고조 (Monte Do Gozo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5킬로 전 지점)까지 가서 하루를 쉬고 내일 오전 중에 산티아고로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몬데 도 고조까지 가려면 오늘 30킬로를 가야한다. 며칠동안 계속 무리해서 걸은 탓에 컨디션이 좋지않아 걱정이다.
아르수아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길을 나선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날. 긴 여정이 곧 끝난다. 힘들어 멈추고 싶었던 적도 많고, 왜 이곳에 와서 사서 고생인지 싶은 생각이 든 날도 많다. 왜 걷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은 날도 많고, 다른 순례자들에게 물어본 날도 많다. 한달 넘게 걸으면서 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아직 모르겠다. 무언가를 얻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걷기 시작한 것도 아니었으니 그런 부담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 내가 머물던 자리에서 떠나고 싶어서 떠났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걸었다.
어떤 결정으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 선택이 내게 도움이 되었는지 아니면 해가 되었는지 분석하는 일은 중요하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행동을 되집어 생각해 보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의 어떤 선택이나 행동, 경험으로 인한 영향을 명확히 짚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일년, 오년, 십년이 지나면서 그 선택으로 인한 영향이 또다른 경험과 선택 속에서 변화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나 성과가 없다고 조급해하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순례자 길이 내게 단순한 기억으로만 남을 수도 있고, 삶의 한가운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리 알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 그리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것. 그 두가지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일이든, 인간 관계든, 공부든,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어떤 선택이든 그것에 따른 결과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충족될 수는 없다. 결정의 순간에 가진 기대란 언제나 결과보다 한발 앞서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큰 기대보다는 내가 가는 길 위에서, 내가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을 깨달아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이 길을 걷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기대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보는 것, 온몸을 통해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도 걷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걷는다.
발목 통증 때문에 천천히 걷다보니 시간은 이미 오후 네시가 넘었다. 몬테 도 고조까지 가자면 서너시간은 족히 더 걸어야한다. 곧 아메날(Amenal)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순례자 숙소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작은 마을. 길을 건너 마을을 막 빠져나가려는데 길 건너편에 시골 마을과 어울리지 않은 현대식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호텔이란 사인이 붙어 있다. 문 연지 얼마 안된 모습이다. 고급스런 로비와 레스토랑. 산티아고 길 위에서 만난 숙소 중에 가장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계획대로 더 걸을지, 아니면 여기서 하루를 묵을지 고민된다. 우선 방을 보고 결정하자. 빈방이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보니, 여지껏 묵었던 방 중에 가장 좋다. 무척 깨끗하고 커다란 침대. 호텔방 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시골 풍경. 40유로로 조금 비쌌지만 이 정도 시설이면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다. 계속 걷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난 며칠 저녁 늦게까지 무리해서 걸은 탓에 온몸이 뻗기 직전이다. 푹신하고 깨끗한 침대에 누워서 오늘은 푹 쉬어야겠다.
샤워를 마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최고의 요리였다. 작은 마을에서의 마지막 휴식일지도 모를 이 시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이 시간이 곧 끝나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 오늘은 그저 푹신한 침대에서 푹 자자. 다른 생각은 말자.
Distance: Arzua – Amenal (24킬로)
Time for walking: 9:00 am – 5:00 pm
Stay: 호텔
A thing to throw away: 슬리퍼 (샤워할 때나 오후에 동네 구경할 때 신던 쪼리, 이제 신을 일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