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tman Jan 02. 2023

순례자의 시작과 끝 Day 40

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Day 40 이제 어디로 갈까


푹자고 일어나 호텔에서 제공하는 푸짐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순례자 사무소를 찾아 나선다. 순례자 증명서를 받으러 어제 오후에 갔었으나, 입구 바깥쪽까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그냥 돌아왔다. 한두시간은 기다려야할 것 같았다. 증명서를 꼭 발급받아야할 이유는 없다. 종이 쪽지 하나로 내가 걸어온 40여일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증명해 보일 일도 없다. 하지만 학교 졸업장처럼, 다시 들쳐보지 않을 기록일지라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대나무 마디처럼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오전이라 그런지 어제보다 사람이 많지 않다. 내 이름 석자가 씌여진 종이.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걸 받으러 이곳까지 온 사람은 없겠지만, 또 여기까지 와서 이걸 받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소중하게 말아서 동그란 종이 보관함에 넣는다.

증명서를 받아들고 12시 미사에 참석하러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한다. 12시 전인데도 이미 성당 안 좌석은 꽉찼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지금 막 이곳에 도착한 순례자들도 있고, 나처럼 짐을 숙소에 풀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 순례자들도 있다. 잠시 후 나이 지긋한 수녀님이 나와서 고운 목소리로 성가를 부른다. 천사의 목소리가 저럴까. 그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워 일순간 모두가 입을 다문다. 한시간 정도 진행된 미사의 내용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들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미사였을 것이다. 신부님과 수녀님의 마알간 기운이 전해진다.


이제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야 할까.






작가의 이전글 순례자의 시작과 끝 Day 3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