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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숙 May 21. 2020

미숙도 완숙도 아닌, 반숙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반숙이 에게.


글 솜씨가 뛰어나지도 않은 내가 글 쓰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우연치 않은 계기로 글 쓸 기회를 얻게 되었고, 정식 작가는 아니었지만 작가 명을 반드시 지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어차피 정식 작가도 아닌데.


당시의 나는 대충 아무 작가명이나 지어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아무 이름이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개명하고 싶었던 이름, 내가 남들의 작가명이나 가수 이름을 보며 ‘우와 되게 특색 있다.’ 하고 생각했던 것이 어떤 것이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죄다 촌스럽거나, 이미 너무 유명한 이름이 되었거나,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묘하다. 아무 이름이나 상관없다고 마음먹은 지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포털사이트에 ‘멋진 이름 짓기’ 라고 검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또 어딘가에 남을 내 흔적이 될 수 있기에 나름 진지해 지기 시작했다. 검색을 몇 시간이나 했는데도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독특하면서 특색 있고, 처음 보면서 의미 있는 아주 어려운 이름을 발굴하고 싶었다. 하지만 ‘멋진 이름 짓기’ 라는 검색 키워드부터가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 오류라면 오류였다.


그렇게 정하지도 못하고 며칠이 흘렀다. 답답한 마음에 급기야 지인 찬스를 쓰게 됐다.


“작가 명을 지어야 하는데, 멋있으면서 의미가 있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그런 이름 없을까?”


내 말에 지인이 지었던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지인이 물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데?”


오. 감탄사가 바로 나왔다. 내게 별 생각 없이 물었던 것 치고 나름대로 예리한 질문이었다. 글을 쓰는 게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지 어떤 글을,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읽었으면 하는지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나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


“네가 고민하는 게 뭔데?”


“있잖아, 왜. 어리다고, 모른다고 하자니 사회에서 바라는 게 많고 그렇다고 다 안다고 하자니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 예를 들면 반쯤 익은 반숙.”


나와 지인은 동시에 박수를 짝! 하고 쳤다. 그렇게 탄생한 내 작가 명은 ‘반숙’이었다.


아쉽게도 어렵게 탄생한 ‘반숙’이란 작가 명은 사용하지 못했다. 글 쓸 기회가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인데, 결국 브런치에 ‘반숙’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게재를 하고 있으니 어쩌면 작가 명대로 애매모호하게 반쯤 이룬 셈이다.


쌩뚱 맞지만 사실 나는 반숙 계란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양한 요리로 재탄생 할 수 있는 날달걀도 아니고, 퍽퍽한 것 자체만으로 매력 있는 완숙도 아니다. 애매하게 물컹하면서도 반쯤 익은 반숙란이 싫다. 이도 저도 아닌, 그렇다 아니다 말하기도 애매한 반숙.


하지만 곧 내가 반숙이며, 이 세상에는 수많은 반숙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기대하기엔 어느 정도 사회에 물들 만큼 물들어 버렸지만, 모든 것을 감당하고도 꿈쩍 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대단히 단단하지도 않았다.


나와 같은 반숙은 겉으로는 다 익어 보이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직 굳지 않은 뜨거운 것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반은 내게 아직도 늦지 않았다며 더 큰 꿈을 꾸라 하고, 남은 사회의 반은 내게 포기하고 현실적으로 살라고 한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하는 사람이며, 누구의 말이 맞고, 내가 나를 떠올릴 때마저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망설이며 하루하루를 혼돈 속에서 보낸다.


어떤 사람은 나와 같은 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청춘이라 부를 수도 있고, 어린애라 부를 수도 있고, 다 큰 어른이라 부를 수도 있다. 전부 다 맞는 표현일 수도 있고, 전부 다 틀린 소리일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아직도 물음표를 품은 채 망설이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나이와 상관없이 반숙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다소 촌스러운듯 하면서 정감 가는 '반숙'이란 이름으로 이 세상 모든 반숙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 내가 겪고 있는 고충을, 슬픔을, 뜨거운 열정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 글을 읽어줄 아마도 반숙일 당신도, 내 일기 같은 글을 읽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반숙은 미숙으로 돌아갈 수 없고,
완숙으로 가는 발전만이 남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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