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쓰담 Dec 03. 2024

나도 엄마가 싫어

삶이 팍팍한 엄마는 딸이 먼저 건 전화에도 안부를 물을 여유조차 없다. 그저 자신의 힘듦을 쏟아내느라 딸년의 안부 따위는 궁금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한두 번이 아니다. 전화를 걸 때마다 부딪히고 부딪힌다. 그럼에도 엄마니까, 엄마라서 놓지 않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다 잠시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오래 얘기하고 또 얘기했지만 엄마는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을까. 모든 열쇠를 쥐고 있음에도 화살을 돌리는 엄마를 꾹꾹 눌러 참아내다가 결국 한순간에 터져버렸다.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듣던 듣지 않던 상관없었다. 그리고 물었다.

왜 매번 나는 엄마 사정 들여다봐줘야 하고
엄마는 왜 내 사정은 들여다봐주지도 않는 건데



'미안해', '안 할게', '그만해', '슬프다', '일단 알았어'라는 말 뒤에 엄마가 또다시 숨었다. 엄마는 그러면 그만인 줄 안다. 여지껏 그래왔기 때문이겠지. 이제는 다르다.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만하고 싶다. 그저 듣기 싫은 소리로 치부하며 흘려서 얻은 것으로 한동안은 엄마도 잠잠해지겠지. 그런 엄마가 밉고 또 밉다.




언젠가 한 번은 동생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엄마가 언니네가 싫대


암만 자식이어도 어찌 다 좋을 수 있겠나. 결혼한 딸자식네 집이 편할 순 없겠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싫다'라고 할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편하지 않다', '불편하다'는 말도 있는데 굳이? 진즉에 고이 접어 나빌레라였던 서운함은 들지 않았다. 살아보니 서운함과 실망도 기대가 1이라도 있어야 드는 감정이더라. 많은 날들을 보내며 기대를 접고 또 접은 덕분이었겠지.


그래서 있잖아, 엄마. 나도 엄마가 싫어..

라고 적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눈물이 왈칵 올라오는 건 엄마라는 끈은 놓지 않았기 때문인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