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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ori May 02. 2017

트럼프식 대북 정책과 그 후유증

한반도내 상호 억지력 vs 전쟁 발발 시나리오 

* 이 글은 2017년 4월 위기가 막 끝난 5월 초에 작성된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북한의 행보 및 핵전쟁 시나리오 및 관련하여 2017년 8월 위기 이후 작성한 다음 글도 참고바랍니다. 





냉전이 종식된 1990년 이후 한반도의 여러 위기 상황들은 왜 제2의 한국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았을까. 순간순간의 위기를 넘긴 표면적, 상황 특수적 요인들도 있겠지만 그 바탕에는 한반도에 존재해온 두툼한 상호 억지력 (deterrence)이 있었다. 강력한 방어력으로 구성된 거부억지 (deterrence by denial)는 누가 되었든 전쟁 승리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췄고, 핵/장사포와 같은 보복타격 능력을 통한 응징억지 (deterrence by punishment)은 전쟁 개시 순간 본토 타격을 감수하라는 전략적 환경을 설정해놓았다. 결국 그 막대한 비용과 위험부담이 전쟁의 유혹을 애초에 제거하는 효과를 가졌다. 결정적인 순간에도 전쟁이 논의 과정에서 제외되는 패턴을 보인 이유다.



이론에 머물던 북한 타격 시나리오가 4월 위기 중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이 시나리오는 북한의 공격징후가 아닌 핵완성 방지용 타격이므로 선제타격이 아닌 예방타격이 정확한 용어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과 2017년 4월 위기 


이번 4월 위기는 그 공식을 뒤틀어놓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핵실험 이후 경제 제재"이라는 기존 공식에서 "핵실험 징후시 군사 타격 위협"이라는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대응으로 전환하면서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놓여있다"라며 그동안 금기시돼온 군사옵션을 암시했고, 실제 시진핑과의 정상회담 직전 감행한 시리아 공습, 아프가니스탄 초대형 폭탄 MOAB 투하, 칼빈슨 전단 한반도 파견 등과 같은 (의도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이 군사위협으로 간주할 만한 조치들이 뒤따랐다.


정확한 이유야 판단할 수 없지만 주지하다시피 핵실험은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김정은을 "똑똑한 친구 (a pretty smart cookie)"라던가 "만날 수 있다면 영광이겠다 (If it would be appropriate for me to meet with him, I would absolutely, I would be honored to do it)"라는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제스처까지도 취한다. 당장의 위기는 피한 듯싶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트럼프 강경대응의 여파는 '상호 억지력'을 지탱하던 몇 가지 축을 흔들어놓았고, 때문에 그에 따른 여러 후유증은 우려스럽다.



북미 모두 핵위기 대응의 군사화 함정에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핵위기 대응의 군사화와 의도치 않은 전쟁 (inadvertent war)


첫째, '핵위기 대응의 군사화'다. 이전까지 북한 핵위기는 경제 제재 조치로 대응돼왔다. 그러나 이번 4월 위기를 통해 전격적인 군사적 조치/위협으로 대응법이 전환되었다. 문제는 이것은 2017년 4월 위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군사적 갈등을 감수하겠다는 미국의 signal로 비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핵실험이나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ICBM 실험 등을 앞두고 북한으로 하여금 최고의 군사적 준비태세를 강제케 한다. 더 나아가 '핵위기 대응의 군사화'는 군사전략의 재검토와 평시 군사적 대비 수준의 상향 조정의 가능성도 열어둔다. 작위적으로 결정되는 핵실험 징후에 미국이 언제 어디서 어떤 군사적 조치를 취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북미 모두에게서 군사적 대응 시간이 대폭 축소될 위험이 존재한다.


문제는 군사적 대응 시간이 짧아질수록 군사적 충돌의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성향적으로 공격을 선호하는 군인들의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고, 위기발생시 군사적 대응 시간이 짧아지면서 갈등 상황 (e.g. 발목지뢰, 연평도 포격 등등)을 외교로 통제할 시간 자체가 줄기 때문이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전 군인들의 '공세의 숭배' (cult of offensive)로 인해 공세 위주로 전략이 짜여 러시아의 부분적 동원령 결정이 순식간에 세계대전으로 확전 된 것을 되새길만하다.


전쟁을 피하고 싶은 국가들이 전쟁의 위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닮아가고 있다. 이론과 역사 모두 군사적 긴장 상태에서 군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의도치 않은 전쟁 (inadvertent war) 발발의 가능성을 높인다 말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강박관념은 쌍방 모두 원치 않는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강박관념 강화와 필사적 전쟁 (a war of desperation)


둘째, 이번 위기는 북한의 강박관념 seige mentality 강화 효과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한국에 공격의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에 의견이 갈리지만 공격 이전에 방어가 있는 법이다. 북한은 분명 군사적으로 열세에 있고 압도적인 힘을 지닌 한미동맹이 북한 영토 침범의 의지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확신할 근거가 없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북한을 방어 강박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문제는 강박 상태가 강화될수록 '필사적 전쟁' (a war of desperation)의 유혹이 생긴다는 점이다. 북한은 언제 군사적 도발과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까. 현 동북아/북미 관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때 핵사용은 뻔한 체제 자살 행위이다. 반면 코너에 몰려 미국 공격의 징후가 보일 시 북한에게는 거꾸로 군사적으로 선제공격을 할 합리적 이유가 생긴다. 즉, 미국의 공격으로 시작하는 전쟁은 북한에게 매우 불리하고, 그 패배는 자명하다. 반면 북한 선제공격 시, 승리의 가능성은 여전히 낮지만, 북한이 먼저 타격을 당한 이후 전쟁이 시작되는 것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전쟁에 임할 수 있다. 코너에 몰린 국가에게 "필사적 전쟁"의 유혹이 생기는 이유다. 역시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2차 대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역시 미국의 전격적인 석유 금수령에 코너에 몰린 일본이 펼친 '필사적 전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이유가 있다. 합리적 국가도 코너에 몰리면 승리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상황에서도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핵개발과 예방전쟁 (preventive war)


셋째, 이번 위기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서둘러야 할 근거가 되었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적 조치 행위 및 여러 언사들은 북한 정권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비칠 만했다. 미국의 타격을 막은 요인 중 하나인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을 것이다. 4월 위기는 결국 핵개발을 멈추는 것이 아닌 합리화시킬 근거로 작동할 여지가 더 크다. 핵을 포기하거나 보유하지 못했던 적대적 국가들--그러니까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등--의 비참한 말로가 북한 김씨 일가가 핵에 집착하는 주요 원인으로 의심되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문제는 북한의 핵개발에 가속이 붙을수록 미국의 예방전쟁(preventive war)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핵을 미사일에 실을 수 있는 탄두 소형화와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의 성공적 실험이 남아있는 상태다. 북의 핵위협이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머물다 미국 본토 타격력을 포함하는 순간 북미관계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됨은 쉽게 유추가능하다. 그때 워싱턴에게는 서울 보호를 위해 LA를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딜레마가 주어질 것이다. 이는 미국으로서 매우 곤혹스럽고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와 ICBM기술 확보 이전에 전쟁을 치루는 것이 유리하다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20세기초 독일이 러시아의 성장을 위협으로 보았고 이를 사전제거하기 위해 1차대전이 발발했다는 예방전쟁의 역학과 큰 궤를 같이 한다.



트럼프와 김정은. 4월 위기 이후 달라진 전략적 환경 속에서 어떤 게임을 펼칠 것인가


정리하며... '억지력 vs 전쟁'


정리하자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 정권에서 시도되지 않은 차원에서의 (하지만 엉성하게) 군사적 압박을 가하며 지난 20여 년간 한반도의 상호억지력을 지탱하던 몇 가지 축을 흔들었다. 그리고 전쟁으로의 다양한 루트를 더 열어놓았다. 물론 한반도에는 그 누구도 쉽게 넘을 수 없는 강력한 물리적 억지력이 여전히 작동 중이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고 한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확산 억지력 외에도 수십만에 달하는 미군과 미국인이라는 인계철선(tripwire)이 있다. 전쟁 시작 순간 압도적 힘을 보유한 한미 동맹조차 매우 어려운 전쟁이 될 수밖에 없고, 북한은 정권 생명을 걸어야 하는 전략적 환경이다. 그 물리적 압박선을 넘는 결정은 쉽게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와 안보 이론은 그럼에도 전쟁은 일어난다고 얘기한다. 의도치 않은 전쟁(inadvertent war)이나 필사적 전쟁(war of desperation), 또는 예방 전쟁 (preventive war)이나 선제공격 (preemptive strike), 합리적 국가들이 전쟁을 해야 할 이유는 많고 역사적 예도 여럿이다. 미국의 정책 전환이 의도했건 아니건 그 전쟁에 이르는데 필요한 결정 시간을 줄이고 전략적 고려사항을 간소화시켜 놓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4월발 한반도 위기는 표면적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바탕을 이루는 틀이 흔들렸으며 때문에 기존 셈법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제 막 출범한 정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5월에 출범하는 대한민국의 새 정부는 우선적으로 이 후유증을 관리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은 위기관리 이후에 병행해 나가는 것이 맞는 순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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