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2005)
나치 시대판 유관순 여사의 저항과 체포, 처형까지의 순간에 담긴 메시지는 교과서적이다. 진부함의 함정이 도사린 내러티브지만 Sophie Scholl(2005)에는 세련미가 흐른다. 드라마 연출에 용이한 저항, 체포, 처형의 장면은 단조롭고 건조하다. 대신 소피의 체포 직후 진행된 Mohr라는 조사관의 취조에 절반을 할애하는데, 이 시간은 Mohr의 '법'에 기반한 설득과 회유가 소피의 '양심'이 말하는 자유와 저항과 치열하게 충돌하는 시간이다.
"법은 바뀌어도 양심은 바뀌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양심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Mohr는 베르사유 체제와 이의 후유증을 몸소 체감했어야 했던 세대를 대변한다. 히틀러와 나치가 약속한 독일의 영광스런 부활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시대의 산물이다.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했던 시대적 맥락 덕에 이 대화는 소피 숄의 싱거운 승리로 끝나버리지만, 대화의 흐름과 이에 따른 Mohr은 미묘한 심정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반면, 취조가 끝난 후 열린 형식상의 재판은 냉혹한 힘으로 '반역자 소피'를 짓누른다. 소피는 재판장을 향해 "당신이 말하는 위대한 아리안인들은 평화를 원합니다."라고 외쳐보지만, Freisler 법관의 윽박 앞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몇몇 군인들의 고개를 떨구게 했을 뿐 이미 정해진 판결 앞에서 미약하기만 하다.
끊임없이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꾸짖으려면 저항이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시기에 무모하리만큼 당당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라는 정공법이 오히려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사형선고 직후 다시는 집에서 볼 수 없게 된 딸 앞에서 슬퍼하는 부모와의 짧은 면회 scene은 압제, 협력, 무저항으로 얼룩졌던 어두운 시기 속에 빛났던 소피의 고결한 마침을 간결하게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결국 화려한 미사여구적 장치 없이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은 짧고 건조하지만, 끝까지 아름다웠던 이 어린 소녀의 모습은 오랜 여운을 남기고 있다.